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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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친구 중에 번화가를 걷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저 명동이나 동대문 등을 걷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길래 한 번 따라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이렇게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비교적 최근에 생긴 일이며, 여전히 여성의 산보는 어렵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플라뇌르. 도시에서 발견되는 한량. 빈둥거리는 구경꾼. 그러나 이 단어에는 여성형이 없다. 여성형으로 만든다면 플라뇌즈가 되겠지만 이 단어의 뜻은 슬랭으로 안락의자의 일종이다.
남자들은 도시든 숲이든 거리든 마음대로 거닐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여자들이 혼자 밖에 나오기만 해도 평판을 망쳤다. 보호자와 함께 다녀야 했으며 지붕이 있는 마차를 타고 숲을 돌아다니는 정도만 허락되었다. 특히 상류층 여성은 거리에 나와서는 안 되었다. 심지어 파리에서는 외부에서 여자 5명 이상이 모이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다. 런던에서는 남자 교수와 학생들만 잔디밭 위를 걷거나 혼자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여성의 산보는 어렵다. 관찰 당하는 역할에서 관찰하는 역할로의 전환이 얼마나 힘든지. 여자들은 여전히 도시의 거리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걷고, 거리에 나가 영화를 찍고, 전쟁 지역의 일상을 글로 남긴 여자들이 있었다. 우선 이 책의 저자 로런 엘킨은 뉴욕을, 파리를, 런던을, 베네치아를, 도쿄를 걸었다. 그리고 역시 그 거리를 걸었던 여성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쫒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 거리 곳곳을 걸었다. 그곳을 사랑했다. 또한 글을 쓸 소재를 얻기도 했다.

또한 길 위에서 내 다리를 움직이는 것 말고 아무 수고도 들이지 않고도 런던에서 끝없이 나를 매혹하고 자극하는 놀이나 이야기나 시를 얻는다.
(p. 111)


조르주 상드는 예술에 관심 있는 청년들과 함께 거리를 마음대로 걷기 위해 남자 옷을 입었다.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주지 않았고 아무도 내가 변장을 했다는 것을 몰랐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아무도 나의 흠을 찾지 않았다. 나는 거대한 군중에 묻힌 하나의 원자였다.
(p. 169)


겔혼은 종군 기자로 세계를 누비며 전쟁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미시적으로 보도했다. 배급받은 빵을 떨어뜨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하루 종일 조심하면서 다니는 가장. 집으로 걸음을 재촉하다가 포탄이 터져 아이의 목에 쇳조각이 박힌 것을 망연히 바라보는 할머니. 그도 여자가 종군 기자로 프랑스를 방문하는 것이 금지되어, 가려던 곳에 가지 못하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고 종군 기자로 살았다.
여성이 하릴없이 도시를 산보하는 것이 아직도 어색한 이 편파적인 세상에서, 그럼에도 도시를 걷고 사랑하고 예술을 한 여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오늘은 나도 도시를 걷는 플라뇌즈가 되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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