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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살고 죽고 - 20년차 번역가의 솔직발랄한 이야기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늘 영어를 잘 해야 하고,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거나 영작을 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난 번역과는 전혀 상관 없는 삶을 살았다.
한 번도 번역가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 번역가의 일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제목부터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이 읽어야 할 것 같은 <번역에 살고 죽고>를 읽게 된 것은 권남희 작가의 <귀찮지만 행복해볼까>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권남희 작가의 전작을 읽고 싶어진
것이다.
<귀찮지만 행복해볼까>가 번역가의 일상다반사라면 <번역에 살고 죽고>는 번역과 해석의 차이도 설명하는, 좀 더 번역이라는 분야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책이다. 번역가가 될
사람들에게 전하는 팁도 있다.
권남희 작가가 번역을 시작하던 시기의 일들이 인상적이다. 어렵게 잡은 번역 기회는 화려한
경력이 없어서, 대리 번역으로 이어졌다. 애써 번역한 자신의
결과물을 남의 이름으로 내는 일이 여러 번. 스스로 기획을 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번역서를 내고 나서도
자리를 잡기 까지는 오래 걸렸다. 일이 떨어질 까봐 안절부절 못하던 나날들이 이어지고, 그마저도 번역료는 원래가 그리 높지 못했다. 20년차 A급 번역가의 월 수입이 대기업 신입 사원의 높은 연봉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수입만 놓고 보자면 전혀 매력적이 될 수 없는 일이, 권남희 작가에게는
천상의 직업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번역하는 책이 항상
흥미진진하고 좋은 책일 수는 없겠지만, 번역할 때마다 작가의 작품과 매번 사랑에 푹 빠져, 열광하며 번역하는 모습에서.
번역의 실제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해석과 번역의 차이에서 비로소 번역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해석이라면 그 언어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좀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다듬는 일이 필요했다. 어쩌면 외국어보다
국어를 더 공부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권남희 작가는 파랗다, 푸르스름하다, 퍼렇다, 등등의 같은 뜻을 가진 단어를 적어서 외우기까지 했다. 우리말로 해석해놓으면 잘 읽히지 않고 어색한 한국어가 되는 말들의 조각을 원래 한국어였던 것처럼 부드럽게 다듬는
일이란.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 보인다.
번역과는 인연이 없는 삶이지만, 번역가의 일상과 번역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그의 글은 ‘가나다라’만
알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가독성 좋고 쉬운 글이기 때문에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번역가를 꿈꾼다면, 번역의 장점과 단점, 번역을
하며 알아두어야 할 것과 번역가가 세상에 부딪히며 겪어내고 이겨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번역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번역이란 것을 들여다 보는 재미를 선사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