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흥분 - 98일간의 기록 마이 리틀 트래블 스토리
유지혜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스물 셋 즈음의 난, 취업 준비와 졸업 준비 외에는 다른 것을 할 여유도, 생각도 없었다. 중고생 때는 꿈이 대학생이 되어 유럽 여행을 가는 것이었지만, IMF 이후의 대학생들의 생활이란 토익 점수를 얻고 자격증을 따서 스펙을 쌓는 것 이외에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내 주위 누구도 유럽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다들 방학에도 학원에 다녔다.

그러나 여기, 다들 고시를 준비해 공무원이 되거나, 스펙을 쌓아 대기업에 가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98일간 유럽을 여행한 젊은이가 있다.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비를 모아, 친구를 꼬셔서 로마로 갔다. 그리고 그 여행은 피렌체로, 파리로, 바르셀로나로 이어졌다. 항상 돈이 없어서, 저가 비행편을 타고, 호화스런 식사보다 샌드위치나 즉석밥으로 식사를 때우는 형편이더라도 두 젊은이는 유럽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친구를 만들고 함께 식사를 하고 파티를 하기도 했다. 에코백에 노트와 펜만 넣고는 카페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밖의 사람들을 쳐다 보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이 책에도 실려 있다.

내 속에서 자꾸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는 무엇이었는지. 아니라고 꾹꾹 눌러도 새어나오는 운명 같은 마음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떠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p. 249)


여행이 끝나고, 지인이 숙박을 해결해주어 다시 한 번 여행을 떠나는 기회를 잡았다. 런던, 다시 파리, 다시 런던. 그러나 여비가 부족해 여행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버텼다. 기발하게도 유럽에서만 살 수 있는 잡화를 사서 멋진 여행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한국에 판매했다. 상당히 인기가 많아 여비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노동에 시달리고 여행이 곧 삶이 되는 피로를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 병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 혈액이 모자라는 상태에서 수혈을 받고, 간신히 회복하고 나서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여행의 끝이 결국 병이 되고, 계획했던 여행은 갑자기 중단되어야 했지만, 젊음의 이 경험이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98일간 보고 듣고 느끼고 한 것은 그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 김연수
(p. 13)


가볍고 감각적인 필치로 이 여행을 기록하고, 여행자들의 사진을 곁들인 이 에세이를 읽다 보니, 내 스물셋 즈음이 생각났다. 도전하는 아름다운 청춘과 그 시절에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욕망하는 젊음이 이 책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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