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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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는 마음>이라는 책에서 박준 시인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의 책이 시집으로서는 드문, 큰 인기를 끌었지만 시집으로는 돈을 벌 수 없었다며 스타 시인 답지 않게 소탈한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문학을 한다는 그의 인터뷰를 읽고 박준 시인에게 빠져들 즈음 그의 산문집을 만났다.
에세이를 정말 좋아해서 제일 많이 읽는 것이 한국 작가들의 에세이인데, 시인의 에세이는 결이 달랐다. 에세이이지만 시어 같은 산문들의 향연이었다
.

환절기를 지나며 나는 더 아팠어야 했는데, 아프지 않으려 하지 말고, 일을 접어두고 병원에 가지 말고, 따듯한 물을 많이 마시지 말고, 구깃구깃한 약봉지를 뜯어 입에 털어 넣지 말고, 밀린 걱정들을 떠올려가며 더 아팠어야 했는데.
(p. 30)


평소에 취미로 좋은 글을 필사하곤 하는데, 이 책 전체를 필사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 차 올랐다. 산문집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몰랐다. 그 아름다운 글을 노트에 빼곡이 적고 싶어졌다.
그는 이 산문집에서 자신과 가족, 친구와 지인들에 대해서도 역시나 소탈하게 털어 놓았다
.

신기한 것은 낯설고 새로운 환경을 싫어하는 내가 직장을 옮길 때만큼은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안정적으로 잘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삶을 한순간에 뒤엎어버리곤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나면 어김없이 책과 노트북을 챙겨 여행을 떠났다.
더없이 정적이고 모험을 싫어하는 내 성격을 바꾼 것이 바로 이 여행이다
.
(p. 126)


시를 짓는 일이, 숱하게 사라지는 것들을 작품에 쓰기 때문에 유서를 쓰는 것 같다는 이 작가는 기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일을 거절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없이 우울해지는 이 생각을 품에 안은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문집과 시집으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 든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p. 157)


박준 시인의 모든 저작을 다 읽어보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작가가 한 명 더 생겨서 기쁘다. 그의 글을 씹어 읽는 날들은 더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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