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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이라는 책
알렉산다르 헤몬 지음, 이동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8월
평점 :
뉴스를 즐겨보지 않는 나는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서 어디서 들어본 듯할 뿐이지 거의 무지했다. 세상에
많은 전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크게 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들고 나서는 구글에
보스니아 내전을 찾아보게 되었다.
알렉산다르 헤몬이라는 보스니아 출신 작가의 일생 이야기인 <나의 삶이라는 책>에는 실향민이 되어 사는 괴로움과 슬픔, 아픔이 녹아있다. 사실 헤몬은 자진해서 난민이 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한 달
간 문학 교류에 초청받아 간 사이 사라예보는 포위되고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막혀버렸다.
사실 고향에 남아 전쟁의 포화 속에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끔찍했다. 집에
총알과 포탄 구멍이 숭숭 뚫리고, 저격수가 골목 골목에 배치되어 민간인을 학살하여, 골목을 겁에 질려 달려 나가야 하고, 먹을 것이 부족해 모두가 비쩍
말라갔다.
전쟁을 피해 미국에 머물 수 있는 것만 해도 행운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는
그때까지 일구었던 모든 삶의 터전을 잃었다.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쌓아온 경력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고, 그의 유년을 함께한 오랜
친구와 친척들을 만날 수 없고, 그의 이발소, 카페, 식당, 도서관이 모두 불타버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삶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하층민의 직업을 갖고 생계를
꾸려나가며, 고향 친구들과 하던 축구를 낯선 사람들과 용기 내 어울려 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두던 체스를 카페의 낯선 이방인들과 둔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의 이발소, 카페, 식당, 도서관을 만들어갔다.
강아지도 키우고, 체스도 두고, 축구를 하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도 펼쳐졌지만, 그 안에는 모두 전쟁의 상흔과 잔상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는 실향민이었고 고향에서 하던 것과 똑 같은 것을 미국에서 했지만 삶은 이전 같을 수 없었다.
사라예보에서 라디오를 진행하고 글을 쓰던 그는, 미국에서 모국어로도, 영어로도 글을 쓸 수 없는 기간을 견뎌내고, 드디어는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에 시련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는
다시 일어선 것이다.
사라예보의 삶의 터전은 모두 파괴되었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힘겨운 삶이었지만 그의
이 기록은 보스니아 내전의 생생한 현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우리는 상관 없는 먼 나라의 일이라고
치부하기 보다, 우리는 그의 글을 읽어야 한다. 보스니아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세상에 한 권 존재해야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