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작가수첩
이응준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낙서를 즐겨 하곤 했다. 좋아하는 펜으로 고급 종이 위에
그냥 하루의 일상을 끄적이기도 하고, 고민을 찌그려 놓기도 하고, 기쁜
일을 구구절절이 써 놓으면, 특별히 다른 취미생활을 하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스르르 풀렸다.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종이 위에 다 풀어놓고 나면 어느 정도 기분이 회복되었다.
이응준 시인도 짧은 글을 쓰는 것 같다. 나처럼 스트레스를 풀려는 목적이라기 보다는 글을
쓰기 위한 초석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와 같이 시시콜콜한 낙서가 아닌, 단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다.
책 안에는 반려견인 이름이 토토라는 시츄를 무지개다리로 보내고, 다시 유기견인 시츄를 반려견으로
삼아 똑같은 토토란 이름을 지어주고 동거하는 이야기부터, 파시즘에 관한 논의, 한국의 현 세태에 대한 이야기, 정치에 대한 염세적인 논평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많은 이야기들은 유머러스하고, 파시즘이나
현 세태에 대한 논의는 무겁기도 했다. 또한 시인 자신의 슬픔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을 때는
어둡기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병 간호하다 임종을 맞고, 자식이
없고 친척도 없어 토토와 고독하게 생활하는 천애고아 처지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한 없는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은 희망을 말한다.
지난겨울은 혹독했으나,
우리가 무조건 삶을 견뎌야 하는 이유.
봄.
지금의 봄과 또 사라졌다가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다시 찾아올
봄.
(p. 66)
또한 삶에 부서지고 깨어진 상처를 사랑한다.
상처와 흠집을 좌절과
핸디캡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능력과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지혜롭고 멋있기 때문이다. 어떤
삶도 어떤 물건도 상처가 나고 흠집이 생긴다. 낡고 바래진다. 구멍이
나고 꿰맨 바늘 자국이 남는다. 이것을 미학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강자의 태도다. 강자의 유머다, 강자의 패션이자 자기 합리화가 아닌 실제로 아름다운
전투력이다.
(…) 나는 낡은 나 자신과 낡은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p. 132)
이런 문구를 발견하고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에게 이 내용을 발췌해 손편지를 썼다. 이응준의
비범하고 담담한 단상에, 내 가족이 치유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