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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평점 :
십 년 전 즈음, 인도의 인력거꾼을 취재한 다큐멘터리인 <오래된
인력거>라는 영화를 봤다. 그 안에는 ‘살림’이라는 인력거꾼이 가난과 싸우며 뜨거운 인도 땅을 맨발로 달리고
있었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온 감독은 인도를 상당히 사랑하는 것 같았다.
인도를 여행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 영화 안의 인도는 내게 가난하고 더러워만 보였다. 류시화 시인은 슬쩍 보면 단지 더럽고 가난하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인도를 오랜 기간 동안, 몇 번씩이나 여행하고 또 여행하며 인도 안에서 신의 나라, 영적인
나라, 행복의 나라를 발견했다. 특히 인도 여행의 백미는
수도승인 사두와의 영적이고 기막힌 대화다. 이 책 말미에는 이 사두의 어록이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인도인들은 성지 바라나시에서 죽는 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긴다. 그래서 많은 노인들이
바라나시에 와서 죽기 위해 나이가 들면 바라나시로 와서 화장에 쓸 장작 값을 구걸하며 머문다. 잔티
초베는 어린 소녀지만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를 따라 바라나시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문다. 가난하고
답답한 생활에 지쳐 항상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여행자인 류시화와 대화하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녀는
몇 년의 게스트 하우스 생활의 마지막에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류시화와 함께 기차에 오른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세상을 찾아 떠났다.
인간의 삶은 어린 시절에 잃어버린 한두
개의 꿈을 되찾으려는 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p. 165)
하루 밤을 지내기 위해 순례자의 집에 들른 에피소드는 아주 인상적이다. 늦은 밤에 도착해보니
넓은 공간에 단 한 명이 자고 있었고 류시화는 그 곳에 짐을 풀었다. 자던 중간에 외로움에서였는지, 자던 사람 옆으로 잠자리를 바꾸었고, 잠결에는 그 사람 가슴에 손을
얹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느 순간 가슴의 손이 툭 떨어졌다. 류시화가 순례자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때로 나는 나 자신이 어떤 경계선 같은
곳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 어떤 얇은 막이 있어서, 약간만 발을 헛디뎌도 어느새 그 막을 뚫고 경계선 저쪽으로 넘어가있다. 그러면
이곳에서의 삶이 노출이 너무 많이 된 흑백 사진처럼 하얗게 지워져 버리는 것을 느낀다.
(p. 213)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구속되고 물질이 풍요로운 생활만을 꿈꾸지만, 인도에는 가난하면서도
영혼과 사랑, 신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다. 영화를 보며 발견하지 못했던 멋진 인도가 이 책 안에
있다.
우리는 다만 행복해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것,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자주 일깨워 줘야 한다는 것이다.
(p. 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