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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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적이다. 처음에는 어려운 말만 잔뜩 써놓은 심오한 책인줄 알았다. 의미를 깨닫고 나면 문장 하나 하나가 인상깊은 글이다. 짧은 책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몇 번 씩이나 다시 읽었다.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숨겨진 착취 구조에 의해 착취당한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채 착취당하고 있다'는 '자본론'의 생각 구조와 일치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한발 더 나아간 지점은, 현대인은 착취를 당한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더 착취하려고 내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에 소화하기 어려워 몇번이나 곱씹을 정도로 여운이 깊게 남은 책이다. 피로사회를 소화하다가 내가 피로해질 것 같다. 메세지 자체는 간단하다. 모더니즘-면역학적 시대-규율사회로 표현되는 지난 세기와 달리, 현재는 포스트 모더니즘-탈면역학적 시대-성과사회로 이미 변화했거나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지난 시대에 통용되었던 이론들로는 지금 시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현 시대를 설명하고자 하는 헛된 노력들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비판한다. 이 과정에서 언급되는 철학자들이나 이야기들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고 있었다면 훨씬 이해하기 편했을 것 같다. 하지만 철학적 논리와 그에 대한 비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시대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메세지는 충분히 명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저자는 계속해서 우리 시대를 긍정성의 과잉이라고 정의하고, 그에 맞서는 부정성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긍정성의 과잉은 오히려 수동적이다.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능동적 부정성이 필요하다. 스스로 고독에 빠져있을 때 만큼 덜 외로운 것은 없다.​​

​​

 우리는 평소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야기에는 오히려 관심이 없고, 어렴풋이 알고 있던 생각들에 힘을 더해주는 이야기에 더욱 끌리는 것 같다. 안개 속에 있듯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저명한 철학자가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정리해주니, 마치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이 이것이다.'라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저자의 심오한 철학적 생각들을 내가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생각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위험까지 있다. 시대의 확신을 강력하게 뒤집어버린 저자의 통찰력에 그 정도로 강렬하게 감탄하고, 빠져들었다.


 이 문단은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다. 놀랍게도, 저자는 책의 제목인 '피로 사회'를 지적하기 보다는 오히려 '지향'하는 듯 하다. 여기서 말하는 피로란 영감을 주는 피로, 부정적 힘의 피로, 즉 무위의 피로다. 내 생각엔 '우리-피로'라는 말이 가장 멋진 표현인 것 같다. 서로를 향한 '긍정적 피로'를 갖는 사회는 오히려 바람직하다.

 서점에 넘쳐나는 자기계발서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역시 새롭다. 나 역시 자기계발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편이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당신이 이들처럼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실패의 요인을 사회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감추어버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른 시각에서 본다. 역자 후기의 설명을 빌리자면, '성공한 개론서들이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경영자입니다.'라고 말할 때, 저자는 그것을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본가이며 착취자입니다.'라고 읽는다.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작 인간 자신은 소진되고 마모된다.

 이 지점에서 충격은 극대화된다. 시대는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었고, 더 많은 성공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라고 부추긴다.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그 무엇도 될 수 있다고 말하며, '할수 없는 것'은 없다고 한다. 개개인의 주체적인 성장에 대한 시대의 확신은 확고하다. 그러나 이 시대의 자유는 오히려 스스로를 착취할 자유이다. 개개인의 의식 발전이 시대의 변화를 가져 왔다는 확신과 달리, 시스템이 더욱 가속화된 발전을 위해 새로운 의식을 가진 인간상을 제시했다. 우리가 의식의 발전이라 믿었던 시대의 확신들은 사실 시스템의 요구일지도 모른다. '자본론'보다 더욱 교묘하고 은밀해진 착취의 시대에서, 우리는 미처 의식하지도 못한 채 한없이 피로해진다. 비록 자율화된 자기착취의 시대 구조를 벗어날 순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삶의 통찰력에서 현저한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대 구조를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이번에도 역자 후기의 설명을 빌려야겠다. '... 한병철은 시스템이 이상적인 자아가 되고자 하는 개인들의 욕망으로 지탱되고 있다면, 개개인이 그러한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각성하는 데서 비로소 시스템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 성과사회의 압력은 끝없는 성공을 향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 단지 우리가 시대적 피로의 이유를 의식하는 지점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어떤 패러다임 자체가 반성의 대상으로 부상한다는 것은 그 패러다임이 몰락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인 경우가 많다. - P13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P28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 P29

멀티태스킹이라는 시간 및 주의 관리 기법은 문명의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퇴화라고 할 수 있다. - P30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 P32

순수한 활동성은 그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연장할 뿐이다. 진정 다른 것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려면 중단의 부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 P49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 ... 그것은 그러니까 우리의 피로가 아니었고, 이쪽에는 나의 피로가, 저쪽에는 너의 피로가 있는 꼴이었다. - P66

"접근을 허락하는 피로, 만져지고 또 스스로 만질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피로." 그런 피로를 통해 비로소 머물러 있는 것, 한곳에서의 체류가 가능해진다. - P68

한트케는 오히려 "우리-피로"라고 말한다. 이때 나는 너한테 지치는 게 아니라, 한트케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너를 향해 지치는 것이다. - P71

탈진의 피로는 긍정적 힘의 피로다. 그것은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간다. 영감을 주는 피로는 부정적 힘의 피로, 즉 무위의 피로다. - P71

어떤 목표를 달성했다는 느낌은 자아 감정의 고양을 위해 의식적으로 "회피"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목표를 달성했다는 느낌 자체가 결코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 P89

개성을 확장하고 변형하고 새로 발명해야 한다는 명령이 그 이면에서 우울증을 초래하는데, 그러한 명령의 원천은 정체성과 관련된 상품이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자주 바꾸면 바꿀수록 생산은 더욱 큰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 P99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 그것은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 P103

외적 지배기구의 소멸은 강제구조의 제거로 이어지지 않고, 다만 자유와 강제의 통합을 가져올 뿐이다. 성과 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 자본주의 시스템은 더욱 가속화된 발전을 위해 타자에 의한 착취에서 자기 착취로 전환한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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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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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발표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다. 나온지는 꽤 되었지만 미뤄두다가 최근에야 읽었다. 이 책은 특별히 여러 국가에서 동시 출간되었는데, 근 3년간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작품 중에 국내로 번역된 작품은 세 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발매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대부분 예전 작품들이다. 다만 그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를 다작을 하는 작가로 오해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것 같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소원을 이뤄주는 녹나무, 그리고 그걸 지키는 파수꾼에 대한 이야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이 책 역시 마음에 들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보다는 재미가 부족했다.

 일단 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체가 간결하고, 소설이라는 특성상 금방 읽을수는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녹나무의 비밀을 아는데까지 전개가 조금 답답한 감이 있다. 녹나무의 비밀이라는 것에 대해 엄청난 궁금증을 자아내는데는 실패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녹나무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단숨에 재미있어진다. 그렇지만 그것도 거기서 끝. 각각 나름의 메세지가 있지만 엄청난 감동이 있는 것은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치밀한 연결성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그냥 각각의 이야기로 끝이다.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한다면, 허무맹랑할 수 있는 판타지적 설정을 자연스럽게 소설 안으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경천 동지할 마법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신기한 과학 원리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신비한 나무이다. 사실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비사실적인 설정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집어 넣는 능력 덕분에, 말이 안되는 이상한 설정이 오히려 그럴듯하다. 처음엔 소설이었다가, 읽다 보면 동화가 되는 느낌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녹나무가 실제로 있다면 어떨까. 나는 무슨 소원을 말할까? 나는 녹나무에 소원을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 그런 녹나무를 만날 때를 위해, 부끄럼 없는 솔직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이란 허세를 부리는 사람보다 그런 게 없는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법이니까요. - P188

... 태어났을 때 제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죽을 때 뭔가 하나라도 지니고 있다면 제가 이긴 겁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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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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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삼국유사' 이야기로 시작한다. '삼국유사'를 다시 보게 하는 매력적인 설명이 인상적이다. '삼국사기'에 정설로 채택되고 버려진 이야기, 야사들을 모아놓은 재미있는 책이 삼국유사라는 것. 야사는 항상 정사보다 은밀하고 흥미롭다. 최태성은 그 짧은 설명만으로 삼국유사를, 그리고 '역사'를 재미의 영역으로 단숨에 인도한다. 그리고 때로는 놀라운 이야기로, 때로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역사의 의미를 현 시대에 비추어 해석해낸다. 이 책에서 최태성은,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짧게 끊어진 특강, 혹은 유튜브 클립으로 역사 이야기를 듣는 느낌의 책이다.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잘 알려진 정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 흥미로운 야사가 어우러져 있어 재미도 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는 통찰도 공감이 많이 된다. 역사는 평소 관심이 적은 분야라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지금까지 내가 읽은 역사 관련 책 중에서는 가장 훌륭한 것 같다. '억지로 배우는 역사'에 숨이 막혔던 경험이 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최태성의 역사 이야기에 이끌려 가다보면, 어느새 역사를 살아가며 숨쉬고 있는 본인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관점을 바꾸어 주었거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을 좋은 책으로 본다. 저자는 역사라는 과목의 편견을 얘기하며 '아무래도 급변하는 21세기에 굳이 옛날 일을 찾아서 공부하는 게 미련해 보이긴 하나 봐요.' 라고 밝힌다. 역사를 대하는 나의 인식이 바로 그랬다. 앞만 보고 달려가도 모자랄 시간에 '굳이'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다시 공부해야 하는가 싶었다. 나 역시 역사를 그저 시험을 위한 '도구'로 봤었기에, 거부감이 든 것이 사실이다. '역사 의식'을 강요한다는 것이, 무분별하게 국가에 충성하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구시대적 발상으로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를 그저 과거 사실의 집합으로 본다면 역사는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의 '쓸모'는 사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나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다. 그것이 진정한 '역사 의식'이다. 이 간단하고도 명확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역사를 그저 쓸모없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책을 읽으며 역사의 진정한 쓸모를 고민하는 순간, 역사에 대한 불편함은 어느새 사라진다. 역사는 훌륭하고도 든든한 참고서가 된다.​

 역사는 사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데 고민이 들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고싶어한다. 관련 사례들을 찾아보기도 한다. 역사는 우리가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례'이자, 적은 노력으로 들을 수 있는 '경험담'이다.​


 저자가 나와 같은 교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훨씬 더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오늘을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제목의 제일 마지막 섹션이 그랬다. 작가의 생각이 대부분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해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뜻밖에도 '온라인에서의 관계'에 대한 경험이 언급되어 있어,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온라인 수업을 하는 지금의 우리 교사들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섹션 중에서도 가장 공감되는 저자의 말은 이것이다.  

'나의 중심을 잡는 것 만큼 주변 관계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관계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눌 수 있는 도움을 주자고 매일 다짐합니다. ... 저의 삶에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매일 다짐한다'라는 부분만 빼면 근래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의 삶에 함께 해준 사람들, 그리고 역사의 진정한 '쓸모'를 알게 해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역사가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은 착각이고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합니다.
- P6

내가 내뱉는 말과 지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살펴볼 수 있다면 선택은 한결 쉬워질 겁니다.
- P66

알고 보면 창조가 아니라 조합이에요. 하지만, 달리 보면 조합을 통한 창조이기도 합니다. - P109

최초의 기술이나 최고의 기술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향력입니다. - P116

역사를 공부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내 옆에 있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시대를, 상황을, 입장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겁니다. - P145

도처에 갈등 요인이 널려 있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는 당면한 문제에 나의 온도를 몇 도로 맞출 것인지 조절할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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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살리는 회복적 생활교육 - 관계와 공동체를 살리는 회복적생활교육, 교육을 회복하다! 학교를 살리다!
김민자.이순영.정선영 지음 / 살림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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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살리는 회복적 생활교육


 

 책을 읽은지는 꽤 됐는데, 깜박 잊고 서평을 쓰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책의 느낌만 기억이 날 뿐, 읽고 난 후의 생각들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읽으면서 중간중간 메모해놓은 문장들을 중심으로 기억을 떠올려 서평을 써볼까 한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정의와 실제를 잘 정리해 놓은 책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유행'하는 교육 방법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단 비판의 눈으로 먼저 바라보는 편이다. 거꾸로 교실이든, 하브루타 토의토론이든, 프로젝트 수업이든, 마치 그것만 잘하면 어떤 학생이든 잘 가르칠 수 있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불편하다. 비록 그 방법론들이 스스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일단 어떤것이 유행한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강의 몇 번, 혹은 책 한두권 정도 읽어보고는 때론 별거 아니란 듯이, 때론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따라다니는 '일부' 선생님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다.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 방법이나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교사와 학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좋으면 사실 교육 방법이나 기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반대로 관계가 좋지 않다면 그 어떤 완벽한 교육 도구와 기술들을 가져와도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어떤 교육 방법론이 '유행'한다 싶으면 일단 부정적 감정을 갖고 살펴보는 편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도 역시 그랬다.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부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그저 단순한 '기술'이나 '방법론'이 아니다.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주는 새로운 철학이자 패러다임이다. 그래서 하워드 지어는 '회복적 정의는 약도가 아니라 나침반이다.'라고 표현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관계'를 잘 맺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우리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관점의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 내가 회복적 생활교육을 다른 교육 방법론들과 달리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게 느낀 것들을 간단히 정리해보려 한다.
 첫째, '되돌려주기'가 중요하다. 되돌려주기란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가 이해한 것을 나의 언어로 다시 상대방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긍정적 효과가 있다. 상대방은 내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되고, 상대방의 감정과 요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문제를 객관화 하고, 관계의 회복에 이를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다. 단지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 뿐인데도, 그 효과는 엄청나다.
 둘째,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얘기하는 것은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날 뿐이다.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내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I-Massage(나 전달법)의 원리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셋째, '써클'이라고 하는 형태 자체가 중요하다. 센터피스를 가운데에 두고, 책상이 없이 서로 둥글게 마주보고 있는 써클이라는 형태. 형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회복적 생활교육을 경험해본다면, '써클'이라는 형태 자체가 갖는 커다란 힘이 있다. 단지 써클을 만들어 앉는 것만으로도 회복적 생활교육의 준비 단계로 들어서는 느낌이 든다. 써클을 만들고 나서 첫번째 활동은 '초대'단계이다. 이는 이미지를 머리 속에 그려 내는 것이다. 잠깐 말을 멈추고, 안내자의 안내에 따라 머리속에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 만으로도 문제 해결을 위한 마음가짐이 만들어진다. 이후 이어지는 '써클' 활동에는 명상, 공동체 놀이, 토의하기, 표현하기, 경청하기 등 다양한 활동이 통합되어 있다.
 넷째, '평화적 압력'의 개념이다. 개인적으로는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개념이고, 어쩌면 회복적 생활교육의 핵심일 수도 있다고 본다. 평화적 공동체가 갖는 구성원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력. '이 공동체는 이런 공간이고,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행동 강령을 폭력적, 지시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스며들게 하는 압력이다. 평화적인 공동체가 갖고 있는 평화적인 행동 강령, 그것을 행하도록 하는 평화적인 압력. 그렇기 때문에 회복적 생활교육이 적용될 수 있는 튼튼한 하부 구조를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평화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작업이다. 이 개념은 앞으로 조금 더 연구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어떤 좋은 교육적 방법도 성공 여부는 결국 '관계'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관계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회복적 생활교육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결국 교사와 학생간의 믿음이 없다면 관계는 좋아질 수 없고, 아무런 문제 해결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서두에서 말했듯, 최근에 유행하는 여러 가지 교육적 방법론 중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그것은 회복적 생활 교육이 그저 기술이 아닌 철학이고, 관점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쁘지 않게 추천할 수 있을 책이다.


회복적 정의의 아버지인 하워드 지어(Howard Zehr)는 ‘회복적 정의는 약도가 아니라 나침반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회복적 정의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하나의 철학이자 패러다임이다. - P12

왜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1학년이 가장 착하고, 교육을 가장 많이 받은 6학년이 가장 안 착한가? - P42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빅터 프랭클 - P93

어떤 시인은 우리가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고립과 외로움으로부터 치유된다고 했다. - P100

갈등은 해결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야.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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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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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제목 그대로다. 페미니즘 이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의 원래 직업이 연예인 이었다는 사실이 조금 특별할 뿐이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방법론에 대해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냥 페미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저자가, '배우고 싶다', '싸우고 싶다'라는 일념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해 가는 성장기를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직도 생각보다 일본 사회가, 특히 연예계에는 전통적 성 인식이 깊게 박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기에 현재 우리나라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저자가 비판한 정도의 성 인식은 이미 넘어서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 책이 출판된 시기를 보니, 그럴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만 해도 성 역할 인지에 있어 페미니즘적 생각이 깊게 파고들어 온 것은 그렇게 오래 돼 보이지 않는다. 페미니즘이란 말이 대중화 되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누구나 그 용어를 쓸 수 있는 때가 되었지만, 아직도 일상 속에서부터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우리나라가 조금 더 낫다고 여기는 이유는 그저 내 직업이 의무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꾸준히 받아야만 하는 직업이고, 그런 교육을 해야만 하는 직업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의무로라도 관련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나 역시 나의 부족한 성 평등 의식 자체를 인지하지조차 못했을 것 같다.
 어쨌든 무엇보다 중요한건, 페미니즘이 남녀의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 싸우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에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고, 페미니즘적 아이디어를 어떻게 우리 사회에 건강하게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자세는 필요하다. 페미니즘이 그저 여자들만의 학문이 아닌 이유다. 그리고 내가 부족하나마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유다.
 하지만 위의 내 의견과는 관계 없이 이 책은 아쉬움이 있다. 내용이 전혀 어렵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잘 읽어지지 않는다. 글에도 나와 있듯, 문장이 좋지 않거나 혹은 저자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을 쓴 것 같은 느낌이다. 대학에서 공부를 해서인지, 논문 같은 문체로 일상을 쓰려하니 어색한 느낌이다.
 게다가 거의 신앙에 가까운, 특정 인물-우에노 지즈코-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과 믿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물론 저자가 서문에서부터 밝혔듯, 저자의 롤모델 자체가 '우에노 지즈코'이고, 이 책은 그를 '따라잡기'한 것이므로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럴 거면 이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우에노 지즈코라는 교수의 논문을 읽는게 더 나을 것 같다.​
 보통 전투적인 사회과학적 이론들의 특징인가 싶지만, 말의 힘에 대한 지나친 믿음 역시 불편하다. 말이 세계를 표현하는 도구인지, 말을 통해 세계가 구성이 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결론 내려지지 않았다. 나는 전자의 의견에 가깝고, 이 책의 저자는 후자에 가깝다. 분명히 머리 속에서는 상상할 수 있으나 말로는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우리가 '언어'로서 이름붙이지 못한 그 무언가는 단지 '말'이 없기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일까. 이 책에서 이정도까지 나아간다면 비약일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부분에서 저자와 나의 인식이 크게 엇갈려 불편함이 생긴다.​
 내가 직접 구매한 책이지만, 사실 시대가 너무 급변하고 있어 현재의 인식과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다. 저자가 성장해가면서 그런 태도는 점차 사라지긴 하지만, 페미니즘을 그저 '싸움'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태도도 아쉬웠다. 무엇보다, 본인을 너무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던 작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자에 대한 이런 아쉬운 감정이, 결국 책 전체의 이미지를 지배했다. 시도는 좋았으나, 내가 기대한 책은 아니다. 아쉬움이 남았다.


이 책 속의 소중한 글


 

 p.53


'본능'이라는 말에 속박되면 안 된다. '본능'만큼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말은 없다. 본능이라는 말은 벗어날 수 없다는 암시를 걸기 때문이다.

 

 p.113

 

어떤 글이 '난해'하다면, 이는 그저 문장이 좋지 않거나 글쓴이 자신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을 썼기 때문이다.

 

 p.158

 

젠더론을 배우는 것과 젠더에서 해방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p.182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p.193

 

역사학은 앞선 이들이 저지를 과오를 볼 수 있게 해준다.

 

 p.215

 

집중은 감동에 대한 집착이다.

 

 p.263


폭넓은 지식을 쌓으면 어떤 사람의 말이 그저 '신념'일 뿐인지 '논리'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

 

 p.265

 

눈앞의 틀을 의심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이론을 구축하는 사람과 틀을 의심하고, 틀에 이의를 제기하고, 틀을 부수면서 그 너머로 나아가려는 사람이 서는 자리는 저절로 달라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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