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다. 페미니즘 이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의 원래 직업이 연예인 이었다는 사실이 조금 특별할 뿐이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방법론에 대해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냥 페미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저자가, '배우고 싶다', '싸우고 싶다'라는 일념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해 가는 성장기를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직도 생각보다 일본 사회가, 특히 연예계에는 전통적 성 인식이 깊게 박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기에 현재 우리나라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저자가 비판한 정도의 성 인식은 이미 넘어서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 책이 출판된 시기를 보니, 그럴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만 해도 성 역할 인지에 있어 페미니즘적 생각이 깊게 파고들어 온 것은 그렇게 오래 돼 보이지 않는다. 페미니즘이란 말이 대중화 되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누구나 그 용어를 쓸 수 있는 때가 되었지만, 아직도 일상 속에서부터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우리나라가 조금 더 낫다고 여기는 이유는 그저 내 직업이 의무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꾸준히 받아야만 하는 직업이고, 그런 교육을 해야만 하는 직업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의무로라도 관련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나 역시 나의 부족한 성 평등 의식 자체를 인지하지조차 못했을 것 같다.
어쨌든 무엇보다 중요한건, 페미니즘이 남녀의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 싸우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에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고, 페미니즘적 아이디어를 어떻게 우리 사회에 건강하게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자세는 필요하다. 페미니즘이 그저 여자들만의 학문이 아닌 이유다. 그리고 내가 부족하나마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유다.
하지만 위의 내 의견과는 관계 없이 이 책은 아쉬움이 있다. 내용이 전혀 어렵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잘 읽어지지 않는다. 글에도 나와 있듯, 문장이 좋지 않거나 혹은 저자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을 쓴 것 같은 느낌이다. 대학에서 공부를 해서인지, 논문 같은 문체로 일상을 쓰려하니 어색한 느낌이다.
게다가 거의 신앙에 가까운, 특정 인물-우에노 지즈코-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과 믿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물론 저자가 서문에서부터 밝혔듯, 저자의 롤모델 자체가 '우에노 지즈코'이고, 이 책은 그를 '따라잡기'한 것이므로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럴 거면 이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우에노 지즈코라는 교수의 논문을 읽는게 더 나을 것 같다.
보통 전투적인 사회과학적 이론들의 특징인가 싶지만, 말의 힘에 대한 지나친 믿음 역시 불편하다. 말이 세계를 표현하는 도구인지, 말을 통해 세계가 구성이 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결론 내려지지 않았다. 나는 전자의 의견에 가깝고, 이 책의 저자는 후자에 가깝다. 분명히 머리 속에서는 상상할 수 있으나 말로는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우리가 '언어'로서 이름붙이지 못한 그 무언가는 단지 '말'이 없기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일까. 이 책에서 이정도까지 나아간다면 비약일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부분에서 저자와 나의 인식이 크게 엇갈려 불편함이 생긴다.
내가 직접 구매한 책이지만, 사실 시대가 너무 급변하고 있어 현재의 인식과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다. 저자가 성장해가면서 그런 태도는 점차 사라지긴 하지만, 페미니즘을 그저 '싸움'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태도도 아쉬웠다. 무엇보다, 본인을 너무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던 작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자에 대한 이런 아쉬운 감정이, 결국 책 전체의 이미지를 지배했다. 시도는 좋았으나, 내가 기대한 책은 아니다.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