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평점 :
나에게 고전이란, 특히 동양의 고전이란 고답적인 옛사람의 말과 글 정도로만 인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 고전 읽기가 잘못된 탓임을 신영복의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고전 읽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는 데에 있으며, 서양고전 읽기에만 친숙한 세대에게 동양고전 읽기를 권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전 읽기가 텍스트 읽기에 그친다면, 그것은 옛사람 역사에 남은 훌륭한 성현의 말일 뿐이다. 하지만 저자의 고전독법은 우리 현실에 대한 되돌아봄에서 시작되고, 미래에 대한 내다봄으로 향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저자가 제시하는 길은 사회경제적 배경과 사상사의 관계를 조망하는 것이다. 사상이란 그 시대와 시대의식을 반영한다. 사상을 만들어낸 시대를, 역사를 우리 현실에 접속하고 있다. 우리 현실과의 접속을 통해 자기반성과 성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며,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허위의식으로부터 삶의 진정성으로’ 나아가자고 한다. 우리 삶의 결에 깊숙이 침투한 상품미학과 자본주의의 무지막지한 공세를 어떻게 떨쳐 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우리 사회의 선善과 미美, ‘목표의 올바름과 과정의 올바름’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고전 읽기를 통해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우리 삶의 결에 침투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는 미시적 실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삶과 사회구조의 관조觀照를 통해 나오는 비전과 전망,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意志(praxis)를 묻는다. 저자의 고전독법은 어떤 세상 어떤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묻는, 문명독법이다. 새로우나 오래되고 선한 문명의 창조를 위해,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하방연대’를 제시하고 있다. ‘여럿이 함께 하는 즐거움’이란 연대와 공존, 약자에 대한 인정과 배려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적 연대를 위해 개인에게, 나에게 요구되는 것은 ‘반구제기反求諸己’일 것이다. 나를 돌아봄, 자기반성이 우선이며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라고 말한다. 인성이란 내가 맺고 있는 관계망이다. ‘인성은 이웃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 시대의 아픔을 주입함으로써 만들어가는 것’이다. 성현들의 소리를 되새기며 내 삶을 되돌아보고 내다본다. 내 삶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내 삶의 행복은 간결함과 간소함에서 온다. 동양고전에서는 인仁, 의義, 도道, 겸애兼愛, 소요逍遙, 관계關係, 자연自然 등으로 표현되지만 결국 참된 행복이란, 참된 삶의 길(道)이란 자유에 있다. 자유에 이르는 길은 존재론적 사고와 삶이 아니라 관계론적 사고와 삶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동양고전 독법이 전해준다. 소유보다는 존재가 자유이며, 존재론적 사고보다는 관계론적 사고가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
『강의』는 역사를 돌아봄, 사회를 돌아봄, 나를 돌아봄을 통해 어떻게 살아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회, 좋은 역사와 함께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좋은 사회, 좋은 역사를 창조해 내는 것 역시 좋은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과거지사를 전하는 것만으로는 스승이 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의 고전독법은 문명을 되돌아보고 내다보는 비판적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의 동양고전 독법은 그래서 나에게 오래된 미래로의 여행이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여행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당신에게 열린 길(讀法)은 분명 나와 다른 길이지만, 어딘가에서 우리는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