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사랑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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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손에 잡은 소설이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손석춘이란 언론인이 쓴 소설이라는 점, 또하나는 마르크스라는 낡은 시대의 유령을 소재로 불러내었다는 점이 내 관심을 끌었다. 간만에 잡은 소설을, '밤을 패며' 읽었다. 이제는 유령이 되어버린 마르크스의 사랑! 더더욱 그 사랑이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그래서 더욱 그 반대세력의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혹은 그의 지지자들에게도 허무와 낭패감을 선사한 그 사실을 이 소설은 뒤집는다. 일단 이 소설은 재미있다. 그 주제가 다소 낡았다해도(혹은 우리사회에서 한번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것이라해도) 낡은 것의 새로움과 재미를 솔찬히 주며, 아울러 이 소설을 통해 손석춘의 '커밍아웃'도 들을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당당하게 커밍아웃하고 있다면?!

책장을 넘기며, 책장을 넘길수록 이게 실화가 아닐까, 현실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마르크스와 데무트의 사랑, 특히 데무트의 헌신과 희생적 사랑도 현실의 일이었고, 주인공 한민주 역시 손석춘이라고 종종 착각에 빠지곤 했다. 작가는 나의 이런 착각에 대해 이미 소설 속에서 답하고 있다. '소설은 삶의 현실 속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탐색입니다. 우리가 어떤 소설을 놓고 실화인가 아닌가 논쟁을 벌이는 게 의미없는 까닭입니다. 소설은 그것이 책이라는 존재로 탄생하는 순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실재가 되지요.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소설이 어떤 현실, 또는 삶의 어떤 진실을 드러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254).' 실화이든 온전히 소설이든 그건 중요치 않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현실, 삶의 진실은 이런 것이 아니였을까?

스스로 진보라 믿는 자들이 현실의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마르크스가 희망했던 세상을, 사람을, 인류의 내일을 열어가자는 것은 아닐까. '모든 인간이 자신의 개성을 다채롭게 꽃피우는 걸 가로막는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것, 바로 그게 혁명(303)'이라는 것은 아닐까. 아직도 우리에게 그 혁명의 역사적 과제가 남아있다는 사실 아니였을까.그리고 그 혁명의 젖줄이 되는 것은 바로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확신 아닐까. 이미 자본의 가치가 삶과 사랑에 최상의 척도가 되어버린 우리시대, 그 꿈마저 잃어버린 우리세대에게 낡은 사랑, 낡은 가치를 통해 사람과 사랑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자는 메시지는 아닐까? 그래서 그의 소설을 덮으면, 내 영혼은 차갑게 타오름을 느꼈다. 작가의 말처럼, 신문은 인화성 강한 메시지를 주지만, 오늘 그의 소설은 영혼을 차갑게 달군다.
이제 언론인이라는 작가에 대한 각인은 어느새 소설가로 자리매김한다. 요즘 보기 드물게 우리말에 대한 애착이 강한 작가임을 소설 곳곳에서 발견하는 것 또한 이 소설을 읽은 작은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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