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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평점 :
미국은 오랫동안 기회의 땅이자 민주주의의 땅이었다. 부유한 민주주의와 오래된 민주주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의 증표였다. 하지만 저자들은 아니라고 한다. 민주주의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헌법,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소수의 지배를 위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국의 다인종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고, 트럼프의 재선은 그 증거인 듯하다. 솔직히 이 책은 공포스럽다. 미국 이야기라면 구경하듯 읽을 수 있겠지만, 그게 한국이라면? 트럼프는 갔지만, 트럼피즘이 남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초래한 심각한 헌법 위기는 이제 끝났지만, 우리는 그 4년을 예외로 치부하기보다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326쪽).” 저자들은 이 책을 쓰는 동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시 돌아왔다. 나의 공포보다 그들의 두려움이 더 크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대통령을 탄핵했지만, 미국은 그마저도 어려울 듯하니까.
민주주의 규범이 구부러질 때
미국은 왜 민주주의의 느림보가 되었을까? 트럼프 시대는 왜 예외가 아니라 상례(常例)가 되었을까? 민주주의라는 도구는 극단주의자나 반민주주의자의 손에 들어가 구부러질 때 위험하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규범은 단순하다. 누구든 선거에서의 패배를 받아들여야 하고, 누구에게든 다시 경쟁이 주어져야 한다. 이 단순한 규범이 무너지면 안 된다. 백인우월주의 규범과 인종 평등, 흑인 투표법은 미국의 역사에서 대립해 왔다. 누군가의 우월한 지위와 누군가의 권리가 대립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적·반민주적이다.
어쨌거나 정치는 집단의 정동을 껴안거나 이용하면서 대변한다. 이때 ‘충직한 민주주의자(loyal democrat)’는 세 가지를 준수한다. 선거 결과를 존중하고,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거부하고, 반민주주의 세력과는 단호히 거리를 둔다. 이 규범을 어기는 자들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이다. 이들은 부정선거나 기울어진 운동장 등의 주장으로 자기편의 정서를 살금살금 자극하고, 규범에 균열을 내고, 법을 구부러뜨린다. 저자들은 헝가리의 오르반 정권에서 미국 건국의 역사까지, 수정헌법에서 최근의 정세까지, 노르웨이의 헌법 개혁에서 미국의 사법심사, 필리버스터까지 뚫고 톺는다.
선거에 패배한 세력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했고(2021년 1월 6일), 전 세계가 경악했다. 돌아온 트럼프는 그들을 사면했다. 그전에 공화당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종용했고, 시위자를 살해한 17세 청년 리튼하우스를 옹호했다. 트럼프는 그를 초청하기도 했다. 한밤중 발표된 계엄을 옹호하던 세력은 우두머리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에 난입했다(2025년 1월 19일). 내란 전후의 일들은 우리 모두 겪었고, 겪고 있다. 우두머리-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정치세력)-지지자 연합이 만들어진다. 연합으로 극단주의자가 득세하면서 소수의 지배가 가능해진다. 독재는 비루하다(Banalite). 상투적 민주주의가 독재를 부른다.
선의의 기획이 무너질 때
미국 헌법은 1787년 만들어졌고, 최종 개정은 1992년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선의를 가지고 헌법과 수정조항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정치와 타협의 결과물이었다. 헌법 자체를 신성화, 종교화하는 것이 곤란한 이유다. 무엇보다 건국 초기와는 영토와 인구 구성, 도시화 측면에서 크게 달라졌다. 저자들은 상원, 선거인단, 대법원, 선거제도를 구체적으로 예시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소수에 의해 독재화된 사례를 흥미롭고도 무섭게 들려준다. “민주주의는 숫자의 게임이다(248쪽).” 다수결에 의해 지배해야 하지만 소수의 권리도 보호하고 인정해야 한다. 다수결주의 너머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들이 도리어 변화를 가로막고 소수의 독재를 옹호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타협과 양보, 차선책의 역사를 흐릿하게 만들어, 반민주적으로 변질된 제도를 견제와 균형을 위한 제도로 신봉하도록 한다. 무엇보다 이 제도들은 정치세력에게 스스로 교정할 기회를 앗아간다. 제도가 가진 허점만 이용해도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는 트럼프에게는 행운이지만, 미국의 민주주의에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탄핵과 고발에 찬성한 소수의 공화당원은 은퇴했거나 2022년 선거 이후에 열린 예비선거에서 모두 패했다. 당내 반대파는 사라졌다.
다수결주의와 반다수결주의에 대해서만 생각해도 이 책이 주는 시사점은 상당하다. “민주주의는 몇몇 핵심적인 반다수결주의 제도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반다수결주의 제도가 지나치게 만연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미국이 처한 국면이기도 하다.”(216쪽) 수정헌법 2조는 미국인에게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보장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총기 소지에 반대한다. “총기 소유의 비중이 높은 20개 주의 인구수는 총기 소유 비중이 낮은 20개 주 인구수의 1/3에 불과하다. 그러나 총기 소유 비중이 높은 주들은 낮은 주들과 동등한 상원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과잉대표 문제는 필리버스터와 더불어 상원을 총기 규제 입법의 무덤으로 만들고 있다(271쪽).”
민주주의 규범이 수호될 때
민주주의는 어제 내린 눈(雪) 같다. 눈이 내릴 때는 모두에게 아름다움과 희망을 주지만, 내린 눈은 누군가 치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끄러지고 더럽다. 태양에 의해 눈이 녹기를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폭설이거나 동토의 땅이라고 상상해 보라. 민주주의는 스스로 교정한다? 모두가 선의와 의지를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교정할 기회도 법과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정부의 권한과 법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반민주 세력을 ‘축출하고’,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것”(330쪽), 전투적·방어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현재의 미국에서? 회의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단 없이 요구하고 그 요구를 아이디어화하는 것!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때, 우리는 변화를 이룰 수 없다(344쪽).” 내린 눈을 치우려고 하고 치워져 있어야만 구체적인 전략으로 제시한 ‘투표권 확립하기’, ‘선거 결과가 다수의 선택을 반영하도록 만들기’, ‘지배하는 다수의 힘 강화하기’가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미국의 역사도 잊지 않는 것이 좋겠다. 노예제도 폐지에 반대했던 정치세력은 지금의 민주당이었다. 그들은 인두세와 읽고 쓰는 능력 시험, 재산 및 거주증명 요건처럼 헌법에 명시적으로 위배되지 않는 새로운 조항들을 독창적으로 고안해 내던 흑인해방의 방해자였다. 지금이랑 완전히 다르다.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역동성과 의지일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는 그 미래를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 한국의 길을 걸을 것인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은 “결함과 보완책이, 그리고 문제와 해결책이 내재해 있는 입헌정치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정치적 화합을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게 하는 역사상 최고의 정체”라고 했다. 모두에게 유산이 상속되었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이다. 민주주의 규범은 무엇이며, 무엇이야 하는가를 중단없이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