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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들
조르조 아감벤 지음, 윤병언 옮김 / Critica(크리티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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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학자의 통찰, 사유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있지만, 뭔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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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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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 아마도

우리는 여행을 떠나리라는 것.

누군가를 만나기도 할 거라는 것,

특히 나 자신과 만날 거라는 것.

고독 속에서도 관계를 형성할 거라는 것,

조금은 성장할 거라는 것.

다시 돌아와 일상을 살아갈 거라는 것,

아마도, 언젠가

다시 떠나게 될 거라는 것.

 

  ‘여행산문집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책은 여행이 아니라 산문에 방점에 있을 수도

  그게 김연수만의 장점일지도.


 


여행이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여행을 통해 나는 비정함을 익혔다. 눈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토록 찬탄하던 곳과 작별하는 법을 알게 됐으니끼. 이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친구처럼 지낸 이들과도, 또 아꼈으나 잃어버린 물건과도 아무런 미련 없이. 이젠 알겠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이 삶의 원리를 배웠다는 사실을(31쪽).

떻게 이렇게 비슷할까? 그건 아마도 모든 인간의 소망과 꿈은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망과 꿈의 운명도 대개는 비슷하다. 멀리서 바라볼 때 라스베이거스가 신기루처럼 우리를 유혹하는 까닭은, 결국 내게는 패배할 운명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소망하고 다시 꿈꾸는 일이 바로 인간의 일이기 때문이리라(47~8쪽).

모든 게 다 사고 싶어서 하나도 못 사는 결정장애자가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면, 그럼 무엇을 살 것인가? 그건 마치 인생의 질문처럼 느껴졌다. 모든 삶을 살 수 없다면, 그럼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래서 나는 연필을 사기로 했다. 연필은 내게 가장 겸손하면서도 가장 큰 변화를 이끄는 도구이기 때문이다(67쪽).

과연 오늘은 어떨까? 불빛이 보이는 그 순간, 너무 기쁘다.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세상이란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내가 궁금한 건 인간이란 어디까지 긍정적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지옥도 정겨워질 때까지가 아닐까(115쪽).

조직은 인간을 난쟁이로 만든다는 것, 고독은 우리의 성장판이라는 것,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해야 할 일을 할 때 인간은 자기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는 것(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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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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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신작 문맹은 자전적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1956년 헝가리 혁명을 피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이주한다. 20대 초반의 그녀에게는 젖먹이 딸이 있었고하나의 가방에는 기저귀 등 아기용품이다른 하나의 가방에는 사전이 들어있었다고 한다어떻게 문자와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담으로 시작된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알아챌 새도 없이완전히 우연한 방식으로 독서라는 치유되지 않는 병에 걸린다(12).”

그녀의 글에 대한 애정은 모국어의 상실로부터 깊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모국어와 적어敵語” 편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렇게 해서 스물 한 살의 나이로 스위스에그 중에서도 전적으로 우연히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나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게 된다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전투내 평생 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 내가 프랑스어로 말한 지는 30년도 더 되었고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나는 프랑스어를 말할 때 실수를 하고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쑬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52~3).”

모국어인 헝가리어에서 멀어진 채 적어(敵語)인 프랑스어를 배운다필사적으로 작가가 된다그녀 자신은 난민이었다. “사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사회적 사막문화적 사막혁명과 탈주의 날들 속에서 느꼈던 열광이 사라지고 침묵과 공백우리가 중요한어쩌면 역사적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나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고향에 대한 그리움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따른다(89).” 사막에서 벗어나고 그리움에서 놓여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을 썼다그렇게 작가가 되었을 터이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 나의 책, 나의 삶, 나의 작가로서의 여정에 대해.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97~103쪽)."

"빈에 도착한 우리는 우리를 신고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는다. 거기, 경찰서에서, 나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젖병을 물린다. 아이는 먹은 것을 토한다. 경찰들은 우리에게 난민 센터의 주소를 주었고 우리를 무료로 거기까지 데려다줄 전차를 알려준다. 전차 안에서, 옷을 잘 차려입은 부인들은 내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준다. ……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또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라는 사실이다(79~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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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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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알 수도 없이 아득하지만냉소는 쉽게 침범한다.

타인의 슬픔에 닿기는 지난하지만타인의 냉소에는 쉽게 물든다.

요즘 태도가 곧 본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문제는 그 태도는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

변화를 목표로 삼는 공부는 그래서 헛된 희망과도 같은 것.

그러므로 나의 공부는 대체로 슬픔이라는 것.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27쪽).

어떤 책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려면 그 작품이 그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자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38쪽).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낸 사람만을, 바꾼다(47쪽).

내게 작품의 깊이란 곧 ‘인간 이해’의 깊이다(201쪽)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이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217쪽).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단편적인 정보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어떤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 트위터에, 각종 소문 속에 그들은 있다.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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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 교육변화의 새로운 의미와 성공원리
마이클 풀란 지음, 이찬승.은수진 옮김 / 21세기교육연구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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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풀란Michael Fullan은 교육개혁의 실패가 진단(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과 실행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그 괴리를 극복할 수 있는 성공사례도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다. 변화를 위한 성공의 열쇠는 공유된 의미이다.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The new meaning of educational change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성공의 열쇠를 다차원적으로 풀어가는 해설서이자 변화를 만들어내는 전략서(戰略書)이다. 첫 장에서 교육변화 역사의 간략한 소개를 다루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교육변화를 위한 전략과 전술은 풍부하지만, 그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맡기고 나는 세 가지로 재구성해보았다. 일명 교육변화를 위한 돌고도는(循環)’ 지침.

 

교육변화의 다면성 이해하기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교육변화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그간의 실패에서 간과되었던 것이 의미(meaning)’이다. 교육변화의 의미란 무엇인가? 변화를 둘러싼 일반적인 문제, 교사 개개인의 주관적인 의미, 객관적인 교육현실, 그리고 변화의 공유와 일관성 등 다면적인 측면에서 교육변화의 의미를 살피고 있다. 우선, 학생의 학습이 변화되어야 하는데, 문해력 혹은 학습력 향상이 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이를 위한 변화의 세 측면은 내용(학습자료)-방법(교수법)-신념이다. 풀란은 의미라는 관점에서 신념교수법학습자료를 분리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73)고 말한다. 분리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무엇을 먼저 실행할 것인지, 예상할 수 있는 문제들을 역동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테면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한 교수법(NPDL)’에 대한 신념이 방법을 바꾸고 방법이 내용을 바꿀 수도 있고, ‘깊이 있는 학습의 결과(6Cs)’가 학습자료를 바꾸고 바뀐 자료가 교수법을 바꾸고 바뀐 교수법이 신념을 바꿀 수도 있다.

풀란이 서술하고 있는 순서와 글을 쓰는 나의 서술 순서가 다르다. 책의 서술은 아무래도 단면적정태적이라 변화의 다면성과 역동성을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의 장점은 이런저런 교차에 있다. 경험과 생각, 이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상상력이 작동한다. “구조적 변화는 빈번히 일어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교사들이 자신의 신념과 관습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문화를 바꾸는 것”(55)이다. 변화를 선도할 주체는 교사이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실행에 문제가 생겼다면 변화의 도입 방식이며, 특히 교사들이 더욱 깊이 있는 질문을 하고 지속적인 학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회”(60)를 제공하지 못했던 탓이다. 추진되는 변화가 가치 있다고 믿을 이유가 없고 인센티브도 없다면 변화의 대가는 클 수밖에 없고 변화 자체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변화에 대한 다면적인 이해와 심층적인 실행이 변화에 필수적이라는 신념이 필요하며, 이 신념은 공유되어야 한다.

학교개혁은 왜 실패했을까? “너무도 많은 개혁가들이 정답을 알고있기 때문에 실패했다. 성공적인 변화의 실행자는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성공이라는 것은 단순히 옳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옳고 그른 것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지닌 집단과 개인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80).” 2장은 특히 교육부장관이나 교육감, 정책입안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 많다.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교육리더들은 문제를 거론하는 데에서 의미를 찾고, 사람들을 참여시켜 해결책을 찾는 데에는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아 왔다. 위기에 대한 진단과 비판만으로 학교는 바뀌지 않는다. 변화의 현상학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개혁이 단지 최신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닌 문화를 바꾸는 작업”(31)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뻔한 이야기, 뻔뻔한 이야기를 바꾸는 힘-실행

 

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대체로 뻔한이야기에 가깝다. 누구나 잠시라도 학교교육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학생이었거나 학부모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교육을 둘러싼 이야기는 뻔히 아는 이야기가 된다. 아울러 교육은 당위와 규범, 성장과 미래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뻔한 이야기가 된다. ‘사랑으로 교육하자거나 평등하게 교육하자거나 하는 식이다. 그래서 교육의 변화는 어렵고 교육변화의 의미를 생각하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되기도 한다. 아울러 교육은 심심치 않게 뻔뻔한이야기가 된다. 누구나 학교를 경험했거나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반교육적이라고 할 만한 교사와 학교장을 만나게 되고 불공정하기 그지없는 숱한 교육정책과 교육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뻔한 이야기는 쉽게 뻔뻔한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각개전투를 벌이고 각자도생을 모색한다. 한국은 이런 현상이 훨씬 심각하다.

풀란이 3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변화의 잘못된 동인과 올바른 동인역시 뻔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뻔하다는 것은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확한 지적이고 비판이지만 이미 많은 교육학 관련 서적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점에서 뻔한 이야기이다. 이 뻔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바로 교육변화이다. 풀란의 장점은 동인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동인과 실행을 위한 지침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제시하는 6가지 지침은 고려사항일뿐 절대적인 교리는 아니다. 그가 권면하는 지침을 사유하고 실천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시스템”(106)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변화의 새로운 의미는 바로 이것이라고 풀란은 말한다. 나에서 우리로, 나의 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내 아이와 내 학생에서 우리 아이로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속감이 생기고 연대가 형성되며 교육의 공적 의미가 되살아날 것이다.

우리에게 풀란이 말하는 공유된 의미, 공유할 만한 의미가 있는가? 미국에서는 학습 자체가 중요한 목표가 되지만 우리도 과연 그런가? 학습 자체를 강조하면 분명 한편에서는 생후 몇 개월부터의 학습과 경쟁을 내세우며 반대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교육정책이 전적으로 대학입시를 이렇게저렇게 바꾸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교육변화가 아니라 교육의 의미 자체가 공유되기 힘든 사회문화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러한 문화와 사회심리를 변화시켜야만 교육변화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진실로개혁이 아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기에 개혁이든 변화든 교육은 매우 복잡한 사안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교육계 내부의 개혁과 변화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교육은 정치경제사회문화와 개인과 집단의 심리를 아우르는 복잡한 사안인 것이다. 풀란의 권면을 기억하자! “‘가진 지식을 의심하면서 동시에 가지고 있는 지식을 실천으로 옮길 용기를 잊지 말라(168).” 뻔한 이야기를 바꾸는 힘은 실행이다. 개선이란 당신이 근무하는 환경 속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역할 그 이상”(214)을 말하며, 이것이 교육변화의 새로운 의미의 핵심이다.

 

학교문화를 바꾸는 힘-교사

 

사회문화의 변화와 학교문화를 변화시키는 일은 공진화(共進化)해야 한다. 교육변화의 열쇠는 교사에게 있으며, 그들이 가진 실행의 힘과 역량이 변화의 잣대가 된다. 풀란은 개혁가들의 집념이 계획에서 실패하는 주요 이유라고 말한다. 바뀌어야 한다는 개혁가의 집념과 변화의 절차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이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계획이 실행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변화의 현상학을 참여자 중심으로 옮긴 것”(160)이다. 무엇보다 계획이란 실행자를 빠져들게 하는 것이어야 하지 계획자의 주장이어서는 안 된다. 교사집단을 독소로 보기보다는 해독제로 보아야 사회-학교-개인, 개인-학교-사회의 공진화는 가능하다.

그동안의 학교개혁이 실패한 주요요인의 하나는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했던 탓이 크다. 그와 같은 시각은 풀란이 말하는 중요한 정보원을 놓치는 일이다. “현장의 실행자들은 정책입안자들이 갖지 못한 정보를 갖고 있다. 리더들이 연대와 협력의 문화를 통해 현장과 소통하지 않으면 그 정보를 접할 수 없는 것이다(170).” 정보원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주도할 동력도 잃게 하며, 심지어 각종 태업으로 변화를 저지하는 세력이 될 수도 있다. 학교현장에서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교사들이 현 상황을 바꿀 만한 충분한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느냐와 관련되며, 교사들에게 함께 한다는 의미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의미는 동기부여를 촉진하고 노하우는 쌓여서 지속적으로 문제해결을 가능”(79)하게 할 것이다. 교사들에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원한다는 압박보다, “우리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게 하라.

무엇보다 교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학생들을 직접 대면하고 교육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풀란의 책이 가지는 장점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풍부한 레퍼런스에도 있다. 특히 오늘의 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다룬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우리 아이들은 우리 교육이 가진 핵심적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교사는 중요한 교육변화의 주체일 수밖에 없다. 1975년에 나온 로티Lortie교직사회나 그로부터 10년 후에 나오고 있는 굿래드Goodlad, 로젠홀츠Rosenholtz 등의 연구는 교직의 현실과 교사의 인식을 다루고 있는데, 상황은 더 나빠졌지만 변하지 않은 측면도 여실히 보여준다. 교사에게 가장 큰 보상은 학생의 학습이며 자부심도 학생의 성장이다. 시간이 더 주어지면 교실관련활동에 집중하겠으며, 불만사항은 시간부족과 업무흐름의 방해라고 응답했다. ‘자율적인 고립이 강화되고, ‘정체된 학교의 모습이 노골화되고 있지만 교사들의 기본 인식과 어려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왜일까?

변화가 그만큼 지난한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교사는 학생들을 앞에 둔사람이다. 학생에게 교사의 영향력이 큰 만큼 교사들의 교직생활에 학생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들도 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열망이 있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은 교사도 많다고? 물론 그럴 것이다.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어떤 직업군에나 있는 쓰레기정도이지 교사집단에 특별히 더 많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건 당신이 가르치는 일을 모르거나 별 것 아닌 일로 취급하기 때문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라. 특히 정책입안가나 교육관료나 학교장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교육변화는 아예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교사를 성인답게대접하고 그들의 일은 인정하고 지원하라.

학교문화를 바꾸는 것은 조직 전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습조직으로의 변화가 요청되는데 전문학습공동체(PLCs)’가 핵심이다. “근본적인 개혁의 핵심은 시스템 전체를 참여”(201)시키는 방향이어야 하지만, 그 참여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교사들의 동기와 유능감은 동료들과 초점(내용)이 있는 협력과 우수한 리더십 아래 있을 때 극적으로 변화하며, 집단의 신뢰는 학업성취도의 향상도 가져온다고 연구결과들이 말해주고 있다. 수업의 질도 교사 개인의 과업이 아니라 집단의 과업인 것이다. 물론 풀란은 전문학습공동체를 혁신안이나 프로그램처럼 실행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학교문화를 만들고 시스템이 변화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원하고 장려하되 간섭은 최소화하라!

이제 전문학습공동체는 부차적인 위치에서 주요 개혁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풀란의 생각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전문학습공동체는 성찰적 대화, 실행을 통해 배운 내용의 공유, 공동체 전체가 학생의 학습에 초점두기, 협업, 규범과 가치의 공유”(206)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아울러 학습과 협력을 통해 구축된 신뢰가 다시 이러한 요인들을 촉진할 것이다. 이러한 순환의 과정을 통해 협력하는 조직으로 변화할 것이다. 협력의 힘은 강하고 인간은 본래 협력하는 존재였으며 교육은 협력의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할 의무가 있다. 공진화는 상호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아울러 교사들은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 평생학습자로 거듭날 것이다. 교직에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 자본은 확대될 것이 다. 이들이 경력을 쌓아 교장이 된다면, 그들이 다시 학습선도자로서의 역할을 선도할 것이다. 교장직을 맡은 사람이 학습선도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선도자로 성장한 교사가 교장이 되는 것이 여러모로 교육적일 수 있다. 그들은 권위적이지 않으면서 권한을 적재적소에 실행하는 리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교육청이나 장학사가 필요한 중간리더십(LftM)’도 마찬가지다. 전문학습공동체에서의 역할과 경험이 교장(학습선도자)과 교육청(중간리더십)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이제 통제의 중심(locus of control)을 정부나 교육부에서 중간 지자체와 지역단위로, 지역에서 단위학교와 교사에게로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순환의 과정이 교육 시스템의 변화일 것이다.

 

시작을 위한 당부 한 가지

 

진정한 위기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람들의 개인 및 현실 간의 관계에서 발생”(75)하는 것처럼 신뢰 역시 그렇다. 교육구성원들 사이의 신뢰는 존중, 역량, 타인에 대한 배려, 정직하고 높은 도덕성”(199)의 요소를 구성한다. 혁신과 변화에 필요한 것은 내용이지만 내용이 채워지면서 그 조직과 문화는 혁신성을 담보하게 된다. “혁신(innovation)과 혁신성(innovativeness)이라는 단어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혁신을 새로운 프로그램의 내용에 비유한다면 혁신성은 조직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역량에 비유될 수 있다(35).” 교육변화의 현상학과 다면성을 이해한다면, 그 이해를 바탕으로 뻔한 이야기를 넘어 공유된 의미를 실행할 수 있다면 변화는 가능하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거나 역량을 발휘할 교사가 있다. 아울러 (교육현장에서 조금 멀리 있는) 우리가 할 일은 교육’, 교육이라도 좀 공적으로 생각하자. ‘우리 아이들의 위해서다! 공적인 마인드로 이 책을 읽고, 가급적이면 세부 주제를 잡아 이야기하자. 그것이 시작이다. (당신이 만약 교육현장에 있다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상상력은 거의 무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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