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 1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진화를 묻다 The Tangled Tree - 다윈 이후, 생명의 역사를 새롭게 밝혀낸 과학자들의 여정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미경 외 옮김 / 프리렉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처드 도킨스,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한 번 쯤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데이비드 쾀멘? 리처드 도킨스에 비하면 상당히 낯선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 번역 출판된 그의 저서는 이 책 <<진화를 묻다>>를 포함하여 6종이나 된다. 그의 책이 꾸준히 출간된다는 것은 (판매량은 둘째 치고) 쾀멘의 글이 유익하며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솔직히 말하면 난 데이비드 쾀멘의 애독자다. <<도도의 노래>>에서 생태학, 섬생물지리학, 진화론을 흥미진진하면서도 독특하게 풀어가는 그의 글 솜씨에 반한 이후로 그의 책들을 (<<신의 괴물>> <<야생에 살다>> <<신중한 다윈씨>>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찾아 읽었고, 단 한 권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책 <<진화를 묻다>> 또한 기대 이상일 거라 확신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진화를 묻다>>는 그의 다른 책들처럼 넓은 의미에서의 생물학을 다루고 있다. 물론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진화론, 계통분류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등 다루고 있는 학분 분야가 넓긴 하다. 그러나 지레 겁먹지 마시길, 친절한 쾀멘씨는 다른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자가 질겁하지 않도록 전문적인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으면서 해당 분야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더해 다른 과학책에서 찾기 힘든 그의 독특한 서술 스타일은 생동감을 더한다. 그가 세계 곳곳의 다양한 과학자들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 나눈 생생한 대화와 경험담은 흥미 로울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을 관통하는 단어는 원제(‘Tangled tree’)가 보여주듯이, 바로 나무. 다윈이 진화의 비밀을 스케치한 그의 생명의 나무(그가 처음 만든 말은 아니다)에서 시작한, 생명의 계통을 나타낸 도식으로서의 나무의 형태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과학의 발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면서 최근의 과학적 발견에서 생명의 나무가 갖는 의미와 한계를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다윈이 주인공인 책이 아니다, 오히려 엑스트라에 가깝다. (다윈이 궁금하다면 그가 주인공인 진화론자와 한 인간으로서의 초상을 묘사한 쾀멘의 <<신중한 다윈씨>>를 읽어보시길) 주인공은 바로 칼 워즈.

 

  칼 워즈, 진화와 생명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박테리아, 진핵생물에 이은 생명의 세 번째 역(domain) 고세균을 발견한 인물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기서 끝. 이 책의 새로운 점은 다윈이나 윌리스 같은 더 유명한 인물이 아닌 칼 워즈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그를 중심으로 생명의 역사와 계통을 연구하는(연구했던) 가장 유명하기로는 내공생 이론으로 잘 알려진 린 마굴리스에서부터 태반 형성에서 바이러스의 역할 밝혀낸 최근의 티에리 하이드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생명의 나무는 가지들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제 각각 뻗어나가는 보통의 나무가 아닌 가지들끼리 얽히고설킨,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tangled tree’임을 보여준다(그것을 나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총 7부 중 생명의 계통과 종의 구별의 한계, 종으로서의 인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 5,6,7부가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충격적이었다. 박테리아 사이에서의 수평유전자 전달의 다양한 형태들, 인간 게놈의 8%를 차지하는 레트로 바이러스, 인간의 몸에서 공생하는 수많은 박테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종의 구별이 가진 한계를 생각하게 만들며, 인간은 여러 생물군의 공생의 결과, 다시말해 모자이크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다게 해주었다.

 

  고세균을 추가하여 고전적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생명의 나무를 완성시킨 칼 워즈를 중심 줄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생명은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을 넘어서 서로의 DNA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과학적 발견에 칼 워즈 자신도 얼마간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생명의 나무를 끝가지 포기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죽음은 이제 그러한 생명의 나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책의 부제(a radical new history of life)처럼 이제 생명의 역사는 급진적이고 새로워졌음이 분명하다.

 

  이 글의 시작처럼 도킨스와 쾀멘을 다시 비교하고자 한다. 둘 모두 탁월한 저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글 스타일은 상당히 다르다. 도킨스는 직설적이고, 쾀멘은 은은하다’. 누군가 나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과학책 한 권만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도킨스가 아닌 쾀멘을 추천할 것이다. 그의 책은 독자로 하여금 은근히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면서 그의 주장에 서서히 발을 담그게 되고 어느 순간 공감하고 동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 인류의 생존을 이끈 선택과 협력의 연대기
앨리스 로버트 지음, 김명주 옮김 / 푸른숲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저자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저자 앨리스 로버츠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에서는 꽤나 유명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국왕립연구소이 주최하는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이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강연하는(1977년 칼 세이건, 1991년 리처드 도킨스, 1997년 이언 스튜어트) ‘christmas lecture’2018년 연사로 참여하였을 정도로 과학자로서 인지도가 매우 높다. 한국의 신문지상에서도 2018(책 소개가 아니라) 흥미로운 실험(시도?)으로 한 번 소개된 적이 있다. BBC의 요청으로 재구성한 완벽한 인체의 모습을 만든 것인데, 앨리스 로버츠가 자신의 몸에 이 모델을 적용한 앨리스 2.0’ 입체 모형은 꽤나 흥미로운 모습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관련 기사 :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849422.html)

 

  평소 과학책을 즐겨 읽는 편으로 여러 저술가들 중 앨리스 로버츠는 믿고 읽는, 꽤나 선호하는 작가이며 한국에 출판된 책(총 다섯 권)은 모두 소장중이다. 현재 한국에 소개된 책들은 주로 해부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그 중 집에 한 권쯤은 두고 읽어 볼만한 백과사전인 <<인체 완전판>>은 이 두꺼운 책을 혼자 어떻게 썼을까 싶을 정도이며, 완성도 면에서도 압권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생 인류의 탄생과 이동을 추적한 <<인류의 위대한 탄생>>에서 보여준 인류학자로서의 면모를 더 좋아하는데, 그녀의 매력적인 서술 스타일과 뛰어난 필력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번 책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는 후자에 속한다. 직접 현장을 누빈 개인적 경험과 과학적 엄밀함사실 충실성의 훌륭한 조화는 이번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저자는 우리가 길들인(또는 서로를 길들인) 생물 종 10가지, ‘, , , 옥수수, 감자, , , , 사과, 인류를 소개하고 있는데(‘인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의아할 수 있으나, 그 의문은 마지막장을 읽어야 해소할 수 있다), 주로 유전학과 고고학을 두 축으로 이 야생 생물종들과 인간의 길들임의 과정을 설명한다. 자칫, 지루한 과학적 설명이 될 수도 있었을 그 과정을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서술하는 앨리스 로버츠의 수려한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는 과학적 엄밀함에서 나오는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세계를 누빈 현장 연구에서 나온 풍부한 경험 덕분으로 보인다.

 

  늑대 가까이 가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야생늑대곁으로, ‘가 된 늑대의 행동에 인간과의 유대를 형성하는데 밑바탕이 되었을 무언가를 알아보기 위해. 그리고 결국 발견한다. 늑대에게서 볼 수 있는 개의 형질인 호기심, 꼬리 흔들기, 개처럼 짖기를. 이 뿐만이 아니다. 칠레에서 직접 준마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이야기를 통해 말의 길들임을, 중국 남서부의 광시좡족자치구의 계단식 농업 지역에서 했었던 모 심기를 회상하며 전하는 쌀의 작물화 과정 및 GMO 농산물 이야기 등 앨리스 로버츠가 세계 곳곳에서 직접 경험한 이러한 이야기는 서술에 재미와 풍요로움을 더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결론에 설득력도 더한다.

 

  저자는 길들임이라는 가축화와 작물화의 과정이 단순히 인간이 의도한 일방적인 과정이 아님을 매 장마다 강조하고 있다. 2장에서 이 과정을 연인의 만남이라는 매력적인 비유로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밀 작물화의 느리고 복잡한 역사는 거의 로맨스 소설의 줄거리와도 같다. 연인으로 발전

      하게 된 주인공... 그 만남이 그들 안의 뭔가를 일깨웠다. 그들은 함께 춤을 추기 시작

      한다. 함께 성장한다. 인간 문화는 밀을 수용하기 위해 변하고, 밀은 인간에게 더욱 매

      력적인 모습으로 변한다(113쪽에서 인용, 일부 생략).

 

  우리가 보통 가지고 있는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이므로 인간은 자신의 입맛대로 다른 종을 길들였다는(길들인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은 생태계 안에 존재하며,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의존한다. 길들이는 과정은 인간 자신도 길들여지는 과정, 공생과 공진화의 과정인 것이다. 마지막 장(‘인류’)에서는 이를 뚜렷이 보여준다. 성체 포유류는 락타아제 분비가 되지 않아 보통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우유를 잘 마실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소를 길들이며 우유를 얻는 과정에서 얻은 자연 선택의 유전형질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인간이 매개하는 자연선택을 통해 소의 DNA를 바꾼 것은 물론이고, 우유를 마심으로써 결국 자연선택이 우리에게 작용하는 방식을 바꾼 것이다. 결국 길들임은 쌍방 과정인 것이다.

 

  기존 인식을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바꾸어 놓는다는 측면에서 훌륭한 대중과학서 임이 분명하다. 기본 생물학 지식만 있다면, 쉽게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 책의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있다. 저자는 서술 과정에서 농산물 유전자 조작 문제, 야생종과 인간의 공존 문제 등 앞으로 더욱더 중요시 될 쟁점들을 슬며시 제시한다. 이 문제들 모두 종의 길들임과 그 활용, 생물의 다양성과 보호라는 이 책의 전체 주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 주체가 워낙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어, 개별 쟁점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에 모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저자가 강조하듯이 우리의 운명이 다른 종들의 운명은 불과분의 관계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에 동의한다면 이 책은 꼭 읽어야 할 역작임이 분명하다.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이로운 생명 - BBC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나다
브라이언 콕스.앤드류 코헨 지음, 양병찬 옮김 / 지오북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생물(또는 생물학) 관련 책이야 두루 읽어보기도 하였고, 아직 읽진 않았지만 소장하고 있는 책도 다른 과학 분야(물리, 화학, 지구과학) 관련 도서보다 많은 편이다. 때문에 생물 관련 책은 되도록 사지 않으려고 하는데, 유독 이 책은 단번에 눈에 띄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두 사람 때문이었던 듯하다.

 

   첫 번째 인물은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브라이언 콕스’. 이 책을 포함하여 국내에 출판된 그의 저서 다섯 권 중 경이로운 태양계』 『인간의 우주는 이 책과 마찬가지로 BBC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쓰여진 저서로 얼마 전 인간의 우주를 재미있게 읽으며 그의 이름을 외워둔 터였다. 두 번째 인물은 이 책의 역자. 역자는 과학책 전문 번역가인데, 정확한 번역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가 번역한 책들은 번역의 질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훌륭하다.

 

   이번 책 또한 내용, 구성, 번역 모두 만족스러웠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다큐멘터리 5부작을 각각 1개의 장으로 구성해놓았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1, 2장은 물, 태양, 에너지를 중심으로 생명의 본질 및 생명을 이루는 물리, 화학 법칙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3~5장의 주제는 생명의 다양성과 경이로움으로, 차례대로 생명의 다양한 크기(크기의 과학), 감각기관의 진화(, ), DNA와 진화를 기초로 이룩한 생명의 다양성을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브라이언 콕스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책도 사진이 풍부한데, 거기에 인포그래픽도 추가되었다. 사진의 해상도 및 질이 굉장히 뛰어난데, 개인적으로 4장 감각기관의 진화에서 인간 귀의 내부 세포들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진들은 입을 딱 벌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생명 다양성이 풍부한 자연환경을 보유한 세계 곳곳의 사진들을 보며 흡사 그곳들을 여행하는듯한 기분이 들었으며, 가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는데, 브라이언 콕스의 글 또한 다큐멘터리의 촬영 현장의 생동감을 잘 전달하는데 한 몫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점을 한 가지 언급고자 한다. 이 책은 여타 생물 책과는 다르게 물리, 화학(정확하게는 생화학), 지구(우주)과학 관련 내용을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물 탐구를 다루며 원자들의 공유결합을, 에너지를 다루며 초신성 폭발의 의미와 ATP합성 과정을, 생명 구성의 기본 원소인 탄소에 대해 다루며 탄소 순환을 얘기하고 있는데, 관련 지식이 부족할 경우 어렵고 지루할 수 있으나, 조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생명에 대한 이해를 보다 풍부히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진지한 독자라면 좌절하지 않고 완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해당 부분을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경이로운 생명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내가 느끼기로는) ‘경이로운 생명의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광대한 우주에서 한 낱 점에 불과한 지구이지만, 또한 생명체가 사는 유일한 행성일리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십억 년 전 시작된 생명과 지금의 경이로운 다양성을 보여주는 지금의 생명들은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다. 풍부한 도판 및 그림과 함께한 즐거운 독서였다. 이 책의 기반이 된 5부작 다큐멘터리는 책과는 다른 즐거움을 주지 않을까 싶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보고 싶다.

 

* 추천도서

- 저자는 감사의 글에서 닉 레인 박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는데, 언급된 그의 책 생명의 도약은 물론이고 미토콘드리아, 바이털 퀘스천모두 이 책의 기본 뼈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닉 레인의 저서는 총 4권이 번역되어 있는데, 나머지 한 권은 산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몸 오류 보고서 - 쓸데없는 뼈에서 망가진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온갖 결함들
네이선 렌츠 지음, 노승영 옮김 / 까치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모 스테릴리스(불임의 인간)

주위에서 난임불임으로 고생하는 부부를 본 적 있는가? 나 또한 미혼이었을 때는 전혀 관심없었던 문제였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보니, 주위 부부들(친적, 지인) 중 그러한 인생의 싸이클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알게 된 두 사례만 들어보겠다. 첫 번째, 친구가 쌍둥이를 낳았다고 했다. 요즘 쌍둥이가 흔한 이유가 배란 유도술 때문이라는데 혹시나 해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친구는 대번에 그렇다고 답했다. 두 번째, 몇 년째 난임,불임으로 고생하는 부부를 알고 있다. 이런 저런 검사를 무지 받았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단다. 결국 시험관 아기로 (그것도 운 좋게 한 번에) 임신에 성공하였다(축하!).

난임, 불임으로 아이를 가지지 못한 사례, 모르긴 몰라도 내 주위 사례만 이 정도니 아마 보다 흔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이런 고통을 겪을까? 저자 네이선 렌츠는 인간 몸의 갖가지 오류들을 다룬 이 책에서[4장 호모 스테릴리스(Homo sterilis, 불임의 인간)]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시도한다. 저자는 한 마디로 대답한다. ‘인간 신체의 오류와 결함때문이다. 다시 말해 애초부터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정자와 난자의 생산에서 태아의 생존에 이르는 전체 생식 과정은 인간 생 식계 통의 온갖 설계 결함을 보여주는 문제들로 가득하다(134p).

진화의 무계획성

저자는 생식 과정에서의 다양한 설계 결함을 설명하는데, 특히 정자와 난자에 대한 설명은 대단히 재미있다(특히 정자). 정자는 인체 세포 중 가장 작은 축에 들지만, 빠르기는 으뜸인데,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위해서 헤엄쳐가야 하는 거리는 17.5cm 라고 한다.(성인 손바닥 한뼘 정도) 그런데 이는 정자 몸길이의 3,000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길이지만 이 속도라면 45분만에 나팔관까지 도달 가능하다. 그런데 아뿔싸! 정자는 왼쪽으로 회전하지 못한다. 정자는 코르크스트루(corkscrew)라는 추진 시스템을 가졌기 때문에, 편모를 좌우로 흔들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 나선 방향으로 꼬리를 돌려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헤엄친다. 때문에 나팔관까지 도달하기 까지는 45분이 아닌 사흘이라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물론 극소수의 정자만이 목표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설계의 결함 외에도 낮은 운동성, 기형, 낮은 활력, 정액의 산도나, 점도에서의 비정상 등 저자의 표현대로 오만 가지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불임,난임의 원인인 정자의 문제 외에도 건강한 난자를 배란하지 못하는 것, 인간의 배란이 완전히 은폐되어 있다는 것, 정자와 난자가 수정을 하였다 해도 염색체 이상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유산(모든 유산의 최대 85퍼센트) 등 다양한 사례들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에 더해 출산 과정에서 호모 사피엔스 만이 겪는 문제(좁은 골반과 태아의 커다란 두개골), 엉뚱한 곳에서 시작된 임신으로 인한 사산 등 설계 결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식 전반의 문제를 꼼꼼하게 짚어낸다. 이러한 문제는 진화의 무계획성에서 기인한다.

진화는 계획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는 무작위적이고 엉성하고 부정확하며 무정하다(152p).

인간 진화와 설계 오류 - 반회후두신경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신체의 무수한 결함들(시신경 원반 맹점, 부비동, 반회후두신경, 십자인대 등등) 중 인간의 진화가 무작위적이고 계획적이지 않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은 반회후두신경이 아닐까 싶다. 뇌의 정수리 근처에서 시작되는 반회후두신경의 축삭(뇌의 명령을 전달하는 다발)은 후두 근육(말하고 노래할 수 있게 하는 근육)에 연결되는데, 그 신경은 뇌와 후두가 있는 윗목 사이의 몇 센티미터에 걸쳐 연결되어 있지 않고 가슴과 목을 에두르는 바람에 길이가 세 배로 늘어나 있다.

 

이런 비경제적 설계의 이유는 바로 진화에서 찾을 수 있다. 반회후두신경은 옛 어류에서 처음 생겼으며 모든 척추동물이 공유하고 있는데, 어류에서는 뇌와 아가미(후두의 조상)를 연결하고 있다. 어류의 반회후두신경은 뇌에서 아가미까지의 직진 경로에서 심장에 연결된 큰 혈관들 사이를 통과하는데, 이 혈관들은 포유류의 갈라진 대동맥에 해당한다. , 어류가 포유류, 인간으로 진화함에 따라 반회후두신경은 모든 척추동물의 대동맥 아래를 지나가게 된 것이다(그리고 길이가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기린의 경우는 5m에 달한다).

우리의 미래와 과학

이 책에는 위의 사례들 외에도 신체의 설계 결함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들을 다루는데, 현재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인 DNA 중 쓸모없는(또는 의외의 역할을 하는) DNA를 연구하는 정크DNA, 유전자 결함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질병들, 뇌의 결함에서 비롯되는 갖기지 편향과 오류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 이쯤 되면 정교하고(아름다울 정도로) 신기한 작동 원리를 보여주는 우리 몸이란 생각에 균열이 많이 생겼을 것이고, 우리 신체가 결함투성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인간이 위대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신체의 결함을 극복할 수 있는 과학의 능력을 강조한다. 인류의 미래는 과학에 달려 있다.

결함을 극복할 수 있는 과학이나 인류의 능력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라...인류는 생물학적 수단만 가지고서는 결코 빙기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슬기도 필요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슬기가 절실히 필요하다(288p).

인간의 결함을 밝혀준(밝혀줄) 것도 과학이고 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과학이다. 과학의 능력은 곧, 인간의 능력이다. 믿고 읽는 역자의 역자후기 중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고자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온갖 결함이 위리의 위대함을 입증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모든 결함 때문에 인간이다(29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 1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