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를 묻다 The Tangled Tree - 다윈 이후, 생명의 역사를 새롭게 밝혀낸 과학자들의 여정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미경 외 옮김 / 프리렉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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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한 번 쯤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데이비드 쾀멘? 리처드 도킨스에 비하면 상당히 낯선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 번역 출판된 그의 저서는 이 책 <<진화를 묻다>>를 포함하여 6종이나 된다. 그의 책이 꾸준히 출간된다는 것은 (판매량은 둘째 치고) 쾀멘의 글이 유익하며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솔직히 말하면 난 데이비드 쾀멘의 애독자다. <<도도의 노래>>에서 생태학, 섬생물지리학, 진화론을 흥미진진하면서도 독특하게 풀어가는 그의 글 솜씨에 반한 이후로 그의 책들을 (<<신의 괴물>> <<야생에 살다>> <<신중한 다윈씨>>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찾아 읽었고, 단 한 권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책 <<진화를 묻다>> 또한 기대 이상일 거라 확신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진화를 묻다>>는 그의 다른 책들처럼 넓은 의미에서의 생물학을 다루고 있다. 물론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진화론, 계통분류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등 다루고 있는 학분 분야가 넓긴 하다. 그러나 지레 겁먹지 마시길, 친절한 쾀멘씨는 다른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자가 질겁하지 않도록 전문적인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으면서 해당 분야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더해 다른 과학책에서 찾기 힘든 그의 독특한 서술 스타일은 생동감을 더한다. 그가 세계 곳곳의 다양한 과학자들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 나눈 생생한 대화와 경험담은 흥미 로울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을 관통하는 단어는 원제(‘Tangled tree’)가 보여주듯이, 바로 나무. 다윈이 진화의 비밀을 스케치한 그의 생명의 나무(그가 처음 만든 말은 아니다)에서 시작한, 생명의 계통을 나타낸 도식으로서의 나무의 형태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과학의 발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면서 최근의 과학적 발견에서 생명의 나무가 갖는 의미와 한계를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다윈이 주인공인 책이 아니다, 오히려 엑스트라에 가깝다. (다윈이 궁금하다면 그가 주인공인 진화론자와 한 인간으로서의 초상을 묘사한 쾀멘의 <<신중한 다윈씨>>를 읽어보시길) 주인공은 바로 칼 워즈.

 

  칼 워즈, 진화와 생명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박테리아, 진핵생물에 이은 생명의 세 번째 역(domain) 고세균을 발견한 인물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기서 끝. 이 책의 새로운 점은 다윈이나 윌리스 같은 더 유명한 인물이 아닌 칼 워즈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그를 중심으로 생명의 역사와 계통을 연구하는(연구했던) 가장 유명하기로는 내공생 이론으로 잘 알려진 린 마굴리스에서부터 태반 형성에서 바이러스의 역할 밝혀낸 최근의 티에리 하이드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생명의 나무는 가지들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제 각각 뻗어나가는 보통의 나무가 아닌 가지들끼리 얽히고설킨,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tangled tree’임을 보여준다(그것을 나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총 7부 중 생명의 계통과 종의 구별의 한계, 종으로서의 인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 5,6,7부가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충격적이었다. 박테리아 사이에서의 수평유전자 전달의 다양한 형태들, 인간 게놈의 8%를 차지하는 레트로 바이러스, 인간의 몸에서 공생하는 수많은 박테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종의 구별이 가진 한계를 생각하게 만들며, 인간은 여러 생물군의 공생의 결과, 다시말해 모자이크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다게 해주었다.

 

  고세균을 추가하여 고전적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생명의 나무를 완성시킨 칼 워즈를 중심 줄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생명은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을 넘어서 서로의 DNA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과학적 발견에 칼 워즈 자신도 얼마간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생명의 나무를 끝가지 포기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죽음은 이제 그러한 생명의 나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책의 부제(a radical new history of life)처럼 이제 생명의 역사는 급진적이고 새로워졌음이 분명하다.

 

  이 글의 시작처럼 도킨스와 쾀멘을 다시 비교하고자 한다. 둘 모두 탁월한 저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글 스타일은 상당히 다르다. 도킨스는 직설적이고, 쾀멘은 은은하다’. 누군가 나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과학책 한 권만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도킨스가 아닌 쾀멘을 추천할 것이다. 그의 책은 독자로 하여금 은근히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면서 그의 주장에 서서히 발을 담그게 되고 어느 순간 공감하고 동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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