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 인류의 생존을 이끈 선택과 협력의 연대기
앨리스 로버트 지음, 김명주 옮김 / 푸른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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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저자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저자 앨리스 로버츠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에서는 꽤나 유명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국왕립연구소이 주최하는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이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강연하는(1977년 칼 세이건, 1991년 리처드 도킨스, 1997년 이언 스튜어트) ‘christmas lecture’2018년 연사로 참여하였을 정도로 과학자로서 인지도가 매우 높다. 한국의 신문지상에서도 2018(책 소개가 아니라) 흥미로운 실험(시도?)으로 한 번 소개된 적이 있다. BBC의 요청으로 재구성한 완벽한 인체의 모습을 만든 것인데, 앨리스 로버츠가 자신의 몸에 이 모델을 적용한 앨리스 2.0’ 입체 모형은 꽤나 흥미로운 모습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관련 기사 :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849422.html)

 

  평소 과학책을 즐겨 읽는 편으로 여러 저술가들 중 앨리스 로버츠는 믿고 읽는, 꽤나 선호하는 작가이며 한국에 출판된 책(총 다섯 권)은 모두 소장중이다. 현재 한국에 소개된 책들은 주로 해부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그 중 집에 한 권쯤은 두고 읽어 볼만한 백과사전인 <<인체 완전판>>은 이 두꺼운 책을 혼자 어떻게 썼을까 싶을 정도이며, 완성도 면에서도 압권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생 인류의 탄생과 이동을 추적한 <<인류의 위대한 탄생>>에서 보여준 인류학자로서의 면모를 더 좋아하는데, 그녀의 매력적인 서술 스타일과 뛰어난 필력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번 책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는 후자에 속한다. 직접 현장을 누빈 개인적 경험과 과학적 엄밀함사실 충실성의 훌륭한 조화는 이번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저자는 우리가 길들인(또는 서로를 길들인) 생물 종 10가지, ‘, , , 옥수수, 감자, , , , 사과, 인류를 소개하고 있는데(‘인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의아할 수 있으나, 그 의문은 마지막장을 읽어야 해소할 수 있다), 주로 유전학과 고고학을 두 축으로 이 야생 생물종들과 인간의 길들임의 과정을 설명한다. 자칫, 지루한 과학적 설명이 될 수도 있었을 그 과정을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서술하는 앨리스 로버츠의 수려한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는 과학적 엄밀함에서 나오는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세계를 누빈 현장 연구에서 나온 풍부한 경험 덕분으로 보인다.

 

  늑대 가까이 가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야생늑대곁으로, ‘가 된 늑대의 행동에 인간과의 유대를 형성하는데 밑바탕이 되었을 무언가를 알아보기 위해. 그리고 결국 발견한다. 늑대에게서 볼 수 있는 개의 형질인 호기심, 꼬리 흔들기, 개처럼 짖기를. 이 뿐만이 아니다. 칠레에서 직접 준마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이야기를 통해 말의 길들임을, 중국 남서부의 광시좡족자치구의 계단식 농업 지역에서 했었던 모 심기를 회상하며 전하는 쌀의 작물화 과정 및 GMO 농산물 이야기 등 앨리스 로버츠가 세계 곳곳에서 직접 경험한 이러한 이야기는 서술에 재미와 풍요로움을 더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결론에 설득력도 더한다.

 

  저자는 길들임이라는 가축화와 작물화의 과정이 단순히 인간이 의도한 일방적인 과정이 아님을 매 장마다 강조하고 있다. 2장에서 이 과정을 연인의 만남이라는 매력적인 비유로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밀 작물화의 느리고 복잡한 역사는 거의 로맨스 소설의 줄거리와도 같다. 연인으로 발전

      하게 된 주인공... 그 만남이 그들 안의 뭔가를 일깨웠다. 그들은 함께 춤을 추기 시작

      한다. 함께 성장한다. 인간 문화는 밀을 수용하기 위해 변하고, 밀은 인간에게 더욱 매

      력적인 모습으로 변한다(113쪽에서 인용, 일부 생략).

 

  우리가 보통 가지고 있는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이므로 인간은 자신의 입맛대로 다른 종을 길들였다는(길들인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은 생태계 안에 존재하며,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의존한다. 길들이는 과정은 인간 자신도 길들여지는 과정, 공생과 공진화의 과정인 것이다. 마지막 장(‘인류’)에서는 이를 뚜렷이 보여준다. 성체 포유류는 락타아제 분비가 되지 않아 보통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우유를 잘 마실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소를 길들이며 우유를 얻는 과정에서 얻은 자연 선택의 유전형질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인간이 매개하는 자연선택을 통해 소의 DNA를 바꾼 것은 물론이고, 우유를 마심으로써 결국 자연선택이 우리에게 작용하는 방식을 바꾼 것이다. 결국 길들임은 쌍방 과정인 것이다.

 

  기존 인식을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바꾸어 놓는다는 측면에서 훌륭한 대중과학서 임이 분명하다. 기본 생물학 지식만 있다면, 쉽게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 책의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있다. 저자는 서술 과정에서 농산물 유전자 조작 문제, 야생종과 인간의 공존 문제 등 앞으로 더욱더 중요시 될 쟁점들을 슬며시 제시한다. 이 문제들 모두 종의 길들임과 그 활용, 생물의 다양성과 보호라는 이 책의 전체 주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 주체가 워낙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어, 개별 쟁점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에 모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저자가 강조하듯이 우리의 운명이 다른 종들의 운명은 불과분의 관계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에 동의한다면 이 책은 꼭 읽어야 할 역작임이 분명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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