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시대적 사명과 한국신학교육의 개혁
양낙흥 / 예영커뮤니케이션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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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8년 IMF의 시대적 상황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온 나라가 IMF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국가적인 대 혼란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저자는 이것을 일차적으로 설교자들의 선지자적 말씀 선포의 부재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하는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목사들이 시대적 상황과 안목을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시대의 요구에 영합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온통 위로와 축복과 달콤한 회개로의 초청들이다. 어느 곳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온 것을 요구하는 선지자적 외침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은 목사의 시대적 사명에 대한 깨달음을 필자에게 강하게 주었다. 필자도 언급했듯이 목사의 모든 메시지가 선지자적 메시지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시대를 읽는 능력과 시대에 영합하지 않는 신념 그리고 위기의 상황에 대한 바른 인식에 대한 도전을 주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사의 시대적 사명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저자는 한국 신학교육의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학생 전도사 제도의 폐지가 있다. 특별히 이 부분은 필자의 상황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기에 상당한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는 저자의 노력을 생각했을 때 저자의 열정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를 의사와 비교한다. 소위 영혼의 치료와 육신의 치료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의사와 목사의 준비에서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 의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데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 그러나 목사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걸림돌이 너무 많다. 교회가 가만히 두지 않는다. 결국 쉽게 사역에 뛰어들고, 돌아오는 것은 준비의 부족과 육신의 피로, 자질의 부족이다. 물론 교회와 사역에 대한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강도사 3년의 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전도사의 경험이 오히려 교회를 보는 시각을 삐뚤이지게 하거나, 사역에 대한 적당한 준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준비부족이 장차 목사가 된 이후의 사역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가 우려한 대로 목사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필자 또한 신학생 전도사 제도는 하루 빨리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대학원 3년에 대한 학비와 생활비의 문제가 남는다. 물론 저자도 언급했듯이 교회와 노회의 추천으로 신학교가 위탁교육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학교육의 모든 경비는 교회와 노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이 또한 현실적 어려움은 여전히 남는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신학생 전도사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것은 쉽게 변경될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긴 시간을 두고 개교회의 목사들과 교인들의 의식을 전환하는 작업이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신학생 전도사의 위치에 있는 신학생 스스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작 신학생 전도사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신학생 스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낀다면 이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필자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3년의 신학교육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에 학년을 조정하는 것은 시장성의 문제에서 득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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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름으로
헨리 나우웬 지음 / 두란노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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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또 한 권의 귀한 리더쉽에 관한 저서를 읽고 또 읽었다. 한번도 부족해서 두 번이나 정성을 다해서 정독을 했다. 적은 양이어서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읽는 순간 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반영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저자인 헨리 나우웬이 지도자가 쉽게 저지르고 있는 모습으로 제시한 예들이 모두 나의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가슴 조이면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주로 나의 시력이 멈추어진 곳은 제 2장과 제 3장이다. 우선 제 2장에서 나의 개인주의적인 사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단지 저자의 상황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도 계속적으로 나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한 다음에 모든 영광과 박수와 갈채를 받으려 했던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스타가 되기를 원했고,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안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나의 모습이 글을 읽는 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자가 44페이지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나 또한 훌륭한 리더쉽은 우리의 인도를 받는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그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오픈(open)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진정한 목회는 반드시 상호 보완적이어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유명세에서 목회로 가기 위한 방법이 고백과 용서라는 것에 귀한 통찰력을 찾았다. 사실 교육전도사가 뭔데...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지... 답답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제 3장에서는 나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우리 학교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 세상은 온통 힘있는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힘만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굽씬거린다. 이것은 교회의 역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크고 강력한 것은 통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너나없이 힘에 의지하려고 하고, 가지고 있는 힘을 과시하기에 어념이 없다. 비단 이것은 한 사람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조직이나 단체도 동일하다. 특별히 이 점에서 나는 우리 학교가 건물에 의해서 소개되는 것이 안타깝다. 학교를 소개하는 것에는 어디든 학교의 잘 빠진(?) 전경이 빠지지 않는다.

저자는 61페이지에서 성숙은 자신이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기꺼이 이끌려 갈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인상적이 말을 했다. 나의 삶에서 종종 다른 사람의 인도를 받기를 꺼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경우가 생각이 났다. 그럴 때면 자존심이 막 무너지는 것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과 지배력의 리더쉽이 아니라 무력과 겸손의 리더쉽이라는 저자의 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현장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망각하고 만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할 때 반드시 이러한 리더쉽의 덕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리더쉽을 가지기 위해서 신학적 성찰에 대한 훈련을 강조한다. 지금 나는 이러한 작업에 들어서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현실에서 대충 학업을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끊임없이 지도자로서 현실의 문제를 예수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따르는 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이것을 인도를 받는 자들이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함으로 많은 성도들이 고통을 받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에 대한 관심과 폭넓은 이해를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평생의 작업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기쁨으로 이 일을 감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매일 매일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맺는 말에서 지적한 대로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리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기도하는 지도자, 연약한 지도자, 섬기는 지도자의 덕목의 나의 성향으로 굳어져서 나와 동역하며 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 아름답게 성장하고 변화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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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목회 믿음의 글들 165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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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목회>는 이재철 목사가 주님의 교회를 개척하고, 제나바 한인교회로 떠날 때까지의 10년의 목회사역에 대한 회고록이다.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이 목사님이 자신의 목회를 '회복의 목회' 라고 명명한 이후에 회복되기를 원했고, 회복되었던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2부에서는 이 목사님의 목회 의 모델이다. 이 목사님은 창세기 2장 8절∼17절을 회복의 모델로 삼았다. 그러면서 7가지 구체적인 회복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3부는 구체적으로 이 목사님이 주님의 교회에서 실천했던 목회에 대한 정체성이다. 무엇보다 이 부분은 한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를 원했던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의 철저한 자기 수련의 모습이 엿보인다. 4부에서는 예배당 건물을 소유하는 것을 처음부터 원치 않았던 주님의 교회가 이후에 정신여고 강당을 건축하게 된 배경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5부에서는 퇴임을 앞두고 퇴임이후에 닥쳐올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들을 피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회복의 목회'의 성경적 모델이었다. 이 목사님은 창세기 2장 8절∼17절을 모델로 삼았다. 그것은 에덴으로의 회복이다. 그리고 본문을 중심으로 7가지의 회복의 모델을 찾았다. 다른 어떤 것 보다 필자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3부에 다룬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분이다. 이 목사님은 철저하다 못해 처절할 정도로 자신이 세운 목회의 원칙에 충실한 실천가였다. 그가 실천한 원칙을 가만히 살펴보면, 목회자는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철저히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사무실 문을 잠그지 않는다는 것, 손수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 문 밖까지 나가서 인사하는 것, 자동차를 탈 때의 원칙, 심방 때의 자리 배석, 당회와의 관계... 등은 이러한 그의 자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좀더 맑은 정신으로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 점심을 거르는 노력도 기꺼이 치른 이 목사님의 정신에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또한 필자의 목회 사역에 귀한 지침을 제시한 부분은 3부 5장 '목회자는 자기관리자' 부분이다. 33가지의 자기 관리 원칙이 그것이다. 원칙에서도 이 목사님의 바른 목회 가치관과 자신을 철저하게 죽이고 성도들을 세우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원칙들 가운데서 필자의 관심을 끈 부분은 이러한 것이다. '새벽기도회가 끝난 다음에 집에 가서 자지 말라', '교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목회자이어야 한다. ... 연기를 통해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는다', '자신이 행하지 못하는 것은 교인에게 요구하지 말고, 교인들에게 설교한 것은 무조건 실행하라', '명단을 작성할 때에 교인들의 이름을 먼저 쓰고, 교역자의 이름을 제일 말미에 넣어라', '하관예배까지 다 끝난 후에는 유족의 집까지 따라가서 위로의 기도를 드려라', '좋은 설교는 그 전체의 내용을 한 문장 혹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목사 시절에 세계문학전집 한 질은 반드시 읽어라', '목회자는 자기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중단 없이 정진해야만 한다' 등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문제는 필자의 사역에 이러한 것들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 또한 평생 목회사역을 위한 지침서를 작성하고자 한다. 물론 그 내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첨가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필자의 연구실 앞에 항상 부착해서 계속적으로 확인하고 실천하고 수정할 것이다. 이처럼 <회복의 목회>는 필자에게 많은 교훈과 감동을 주었다앞으로 필자의 목회사역에 귀한 지침 역할을 할 것이다. <회복의 목회>는 성경적 교회 만들고, 철저하게 성도를 섬기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 사람의 목회자의 노력에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리게 만든다. 필자의 사역가운데 이러한 목회의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경주하여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하여 성도들의 전 생애가 회복되는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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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든 디 피 외 지음, 오광만 옮김 / 성서유니온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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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필자의 친구 어머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얼마나 사모했든지(?) 두통으로 고생하는 친구에게 성경을 베고 잘 것을 요구했다. 아마도 친구의 어머니는 성경을 굉장히 아낀 나머지 성경이 병을 치료하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조금은 지나 친 비유이지만,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며,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성경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애를 쓴다. 그러나 성경에 조그마한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본 사람이라면, 성경은 실상 이해하기에 그리 쉬운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 고든 D. 피와 더글라스 스튜어트가 공저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원제목; How To Read The bible For All Its Worth) 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귀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전반적인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개론서의 약점으로 각 성경의 하나하나를 모두 설명하고 그에 따른 석의와 해석학적 전제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각 그룹별로 성경이해에 대한 설명을 아주 탁월하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본서를 저술함에 있어서 하나의 큰 맥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이 '오늘날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알기 이해서는 먼저 '당대의 의미'(What it meant), 즉 처음 그 계시를 받았던 옛 독자들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정확히 이해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전제를 가지고 성경의 거의 모든 부분에 이러한 실천을 하고 있다. 필자가 놀란 것은 심지어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 까지 당대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평소 본인이 생각하던 생각과 동일한 것이라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를 그대로 밝으면서 성경의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러한 작업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자료들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좋은 참고 서적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필자에게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자료는 너무나도 유익하다. 특별히 부록에서 다루고 있는 주석에 대한 소개는 참으로 유익하다. 또한 저자는 친절하게도 석의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들이 제시한 예를 모두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필자의 사고의 빈약성으로 저자의 논지를 따라갈 수 없던 것도 많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성경 적용의 예는 성경의 이해에 귀한 통찰력을 허락해 주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단점은 지적하고 싶다.

우선, 역시나 이 책도 석의에 보다 큰 강조점을 둔다는 것이다. 저자는 계속적으로 철저한 석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석의는 '당대의 의미'를 찾는데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해석과 적용에 대한 부분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리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석의에 대한 부분에서는 큰 유익이 있었으나, 해석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뜬구름을 잡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어떻게 읽은 것인가>는 성경이해에 대한 중요한 안내서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본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설교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본인은 저자들이 제시한 전제에 입각해서 일평생 본인의 설교사역을 해나갈 것이다. 참으로 작금의 교회 상황은 아모스 선지자가 전한 말씀과 같이 바른 말씀이 없어서 황폐해져 기갈에 빠진 형편이다. 지금도 바른 말씀이 전해졌을 때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감격 속에 예배당 문을 나서는 성도들을 많이 발견한다. 문제는 바른 말씀의 선포이다. 이것만이 성경적인 설교를 듣지 못해 아사직전(?)에 있는 한국교회 성도들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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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 교회 이야기
릭 워렌 / 디모데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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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고 있다. 지난 대선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듯이 한국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는 10년 안에 교회 안에도 거세게 불어닥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교회들은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다가오는 세대를 섬기면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21세기 목회를 준비하는 필자에게 있어서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며, 가슴 와 닿는 것이다. 릭 워렌의 『새들백교회 이야기』는 이러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본서는 워렌이 새들백 교회의 개척부터 시작하여 교회를 건강하게 이끌기 원했던 모든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이것은 실로 탁상공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목회의 전 경험의 소산이며, 철저한 성경 중심주의 원칙의 결과이다.

그의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철저한 성경중심의 목회 철학이다. 그는 교회의 목표는 성장이 아니라 건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말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철저하게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이렇게 말한 그가 찾은 성경의 건강한 교회는 사도행전 2장의 예루살렘 교회이다. 저자는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새들백 교회의 목적을 찬미, 선교, 소속, 성숙, 사역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것은 예배, 전도, 교제, 제자훈련, 봉사의 개념으로 확장된다. 필자는 이와같은 저자의 생각을 통해서 두 가지 점에서 큰 도전을 받았다. 우선, 목회 철학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 비전이다. 이것은 영원히 변함 없는 성경에 대한 권위를 더욱 증대시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철저하게 목회자 자신의 생각에 의한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목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다음으로, 균형 잡힌 목회에 대한 생각이다. 사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의 비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목회의 한 분야에(예를 들어서, 제자훈련, 청년 사역, 어린이 사역, 전도사역...) 국한되는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회가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어느 한가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필자의 경우 사역하는 교회의 형편에 따라 사역의 강조점이 다른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단기적인 목회 관심 분야가 정해진다. 그러나 목회는 균형 잡힌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불신자들의 대한 관심이다. 책을 읽는 동안 필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고신의 많은 교회가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릭 워렌의 진단에 의하면, 고신은 전통에 이끌려 가는 교회이다. 특별히 불신자에 대한 생각은 더욱 그리하다. 한국 교회는 일차적으로 불신자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그렇게 성장하던 한국 교회의 성장이 멈추어 버린 지 오래다. 이제는 교회들끼리 교인 이동시키기 경쟁을 벌리고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교회가 성장한 것이 진정한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루빨리 불신자들의 눈에 맞추어서 모든 것을 생각하는 교회로 체질이 바뀌어야 한다. 심지어 거기에는 예배실의 실내 온도도 적용된다. 이러한 불신자에 대한 생각은 필자의 목회 사역에 또 하나의 가이드 역할을 할 것이다.

릭 워렌은 21세기 목회에 대한 귀중한 책을 제공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필자의 전 목회사역에 큰 빚이 아닐 수 없다. 교회는 성경적 목적에 이끌려 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균형 잡힌 사역을 하게 하며, 불신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지금 까지 한국 교회는 열심히 앞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교회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변할 수 없는 것이기에 성경의 분명한 목적으로 돌아가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때 한국 교회의 제 2의 부흥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날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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