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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해석 - 그리스도인의 삶, 영성
정성국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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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일 설교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한 중형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동기 목사의 말이다. 설교의 부담이야 모든 목사들이 똑같이 가지는 것이지만 그 동기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신대원 시절 자신을 가르쳤던 교수님께서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담임목사로 부임한 초기에는 월요일마다 어제 있었던 설교에 대한 비평이 담긴 메일을 보내셨다고 한다. 칭찬과 격려의 말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주 내용은 해석의 오류를 교정하는 것이었단다. 가뜩이나 설교의 짐이 큰데 교수님까지 그러시니 동기가 참 안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의 신대원 시절을 추억해도 비슷한 생각이 스친다. 교수님들의 마음이야 백분 이해한다. 제자들을 잘 가르쳐서 앞으로 그들이 맡게 될 교회가 바른 전통과 신학 위에 세워져야하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다름을 틀림으로 이해했고, 정통을 떠나서는 큰 일이 날 것으로 가르치셨다. 오해는 마시라. 모든 교수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며, 그들의 수고와 노고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니. 다만, 너무 틀에 박혀 신선한 창의력이 들어갈 공간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직 신학교 교수가 그것도 아주 가슴 따뜻한 방식의 성경 해석서를 출간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신학적 소양 따위는 전혀 없지만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여 묵상하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의 선의의 해석오류를 변호하기 위해서 쓰였다(9p). 그래서 배운 자들이 풍기는 지적 교만이나 업신여김은 찾아 볼 수 없고, 기복적 신앙이 아닌 이상 모든 해석은 의미가 있다며 일반인들의 해석을 권장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밑도 끝도 없는 해석을 말하진 않는다. 저자는 줄곧 해석의 프레임을 강조하는데, 4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교이야기로 성경 해석의 가장 큰 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쓰여 졌기에 그 목적에 근거한 해석을 해 보자는 말이다. 둘째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야기틀이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 사셨던 예수님을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인간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셋째는 지금 여기에 임한 미래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틀이다. 미래에 갈 그 나라를 지금 여기서 어떻게 구현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신앙 공동체 이야기틀이다. 우리의 묵상과 해석이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지평까지 확대됨을 말한다. 즉 공동체로서 교회의 부르심에 대한 고민이다.

4가지 해석 프레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경 해석으로 발전하는 지 샘플이 없음은 아쉽다. 그런 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구체적이고 많은 사례를 들어주었으면 프레임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더 좋았을 것 같다.

본 서의 또 다른 매력은 해석학의 흐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답게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신앙 선배들의 해석과 부록으로 유대인들의 성경 해석도 알려주고 있다. 이것을 통해 성경 해석은 결코 개인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지금은 터부시하는 알레고리적 해석마저도 의미 있는 해석임을 말한다. 그렇기에 성경 해석의 소양도 없고, 문외한이라고 해도 그들의 해석도 일리가 있음을 강변한다. 그가 결론에서 강력하게 외치고 있듯 해석과 묵상의 기술적인 질문이 연약자들이 말씀의 식탁으로 나오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312p). 성경은 모든 이에게 열려있기 때문이다. 가슴 따뜻한 신학자의 말에 위로와 자신감을 갖게 된다. 내 해석도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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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편견
랜돌프 리처즈.브랜든 오브라이언 지음, 홍병룡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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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쾌함과 안도감이 공존하는 책이다. 통쾌함이라 함은 평소 바울에게 품었던 의아함이 공증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저자가 1장에서 언급한 얼간이 같은 바울은 평소 나또한 가진 생각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겠다고 우기는 바울에게 성도들 역시 성령의 지시를 받아 그곳으로 가지 말라고 뜯어 말린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가? 성령님이 다르게 역사하실 일은 없고, 그렇다면 어느 한 부류는 자의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새벽기도 설교 시간에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슬쩍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본 서는 예수님 다음으로 신적 권위를 가진 바울에게 딴지를 건다. 위치를 조정하여 우리와 성정이 같은 인간계로 바울을 끌어 내린다. 자칫 보수적인 신앙 색깔을 가진 이에게 이런 접근은 불경하게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울도 사람이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인간 바울을 생각하며 성경을 해석할 때 전통적 해석에서 발견하지 못한 더 풍성하고 새로운 이해가 가능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 서는 바울의 말이라면 덮어 놓고 네, 네 하던 이들에게 다양한 바울의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렇게 말하면 본 서를 금서로 여길지 모르겠다. 사실 필자도 처음에는 이것으로 인해 살짝 염려했다. 하지만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책을 덮는 순간 안도감에 휩싸일 것이다. 제목이 <바울과 편견>이다. 편견 보다는 오해가 더 맞을 듯하다. 저자가 말한 바울의 편견 리스트는 8개는 사실 바울을 오해해서 발생한 일이다. 무슨 오해인가? 1세기 바울을 21세기 시각으로 해석해서 생긴 오해이다. 바울의 말을 문맥을 떠나 해석해서 생긴 오해이다. 그 시대 배경과 문화를 알지 못하여 생긴 오해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 서는 대단히 탄탄한 성경해석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물론 교회 밖의 사람들이 성경해석 방법을 알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런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르는 소리라며 무시하지 않는다. 따뜻하게 경청하여 그들도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차근차근 대화를 이어가면서 그건 시대를, 문맥을, 배경을 몰라서 생긴 오해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바울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본 서와 같은 접근법이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뉴욕 한 복판에서 팀 켈러 목사가 하는 방식처럼 말이다. 성경이라는 당위를 말하기 전에 그들의 질문을 따뜻하게 경청하고 공감한 후에 탄탄한 성경적 해석으로 무장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말이다. 이 일은 두 저자가 잘 해줘서 고맙고 감사하다.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저작 <성경과 편견>도 빨리 읽고 싶어진다. 이렇듯 시대의 질문 앞에 당황하지 않고 성경적으로 대답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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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일주일
김영봉 지음 / 복있는사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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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사역한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안식년을 가게 되셔서 4개월 정도 주일 설교를 한 적이 있다그때 나의 온 신경은 주일 설교로 조준되었다책을 읽어도신문을 봐도심방을 해도 주일 설교에 어떻게 써 먹을 수(?) 있을까에 몰두했다한번은 토요일 밤이 되었는데도 설교문을 완성하지 못해 끙끙 앓은 적이 있다지금도 그 때를 회상하면 아찔하다그렇게 4개월 강단을 맡은 이후에 나는 한없이 겸손해졌다그리고 고백했다목회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한 교회에서 은퇴하신 목사님들을 존경하리라~

   이렇듯 목회자에게서 설교는 짐이다어떻게 설교를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완주할 수 있을까이런 고민을 하는 목회자들에게 김영봉 목사의 <설교자의 일주일>은 더 없이 고마운 선물이다저자는 10년의 신학교 교수의 경험으로 신학적 내공이 풍성하다그래서 그의 글은 천박하지 않다그렇다고 적절성이 없다고 단정하지 마시라이후 오랜 목회의 경험으로 인해 팔딱거리는 현장감도 갖추고 있다무엇보다 글과 삶이 일치하기에 그의 글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김영봉 목사는 이 책에서 설교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토스파토스로고스)에 근거하여 접근하고 있다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관통하는 단어는 비밀이다저자는 비밀로 설교를 풀었다설교자가 먼저 비밀을 이해하고성도들에게 잘 전달하여그들도 비밀을 더 사모하여결국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도록 하는 것이 설교라고 말한다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비밀 맡은 자를 덧붙여 이해해야 한다그러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설교는 비밀 맡은 자의 에토스가 있어야 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에토스(인격인품됨됨이)가 먼저 나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75p). 어떤 사람이 말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따라서 설교자는 설교 하는 행위 이전에 먼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설교자로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이 비밀을 경험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103p) 여기서 필자가 강한 도전을 받은 부분이 있다저자는 찬송가 420장의 2절 가사 널 보는 이마다 주 생각하리를 부를 때 마다 정말 그렇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말이 아닌 모습으로 설교하는 자가 되고 싶다.


   다음으로 설교는 비밀 맡은 자의 파토스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파토스가 필요하다먼저 설교자의 내면이 은혜로 세례 받는 경험이 우선한다저자는 그것을 복음적 파토스라고 불렀다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체험과 변화가 구체적으로 설교자의 삶에서 있어야 하고계속해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또 하나는 회중에 대한 공감이다저자는 이것을 회중의 파토스라고 부른다결국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기 위해서 회중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고공감적으로 접근할 때 소위 말해 들리는 설교가 가능해 진다.


   마지막으로 설교는 비밀 맡은 자의 로고스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설교학을 말할 때 다루는 내용이 나온다중요한 것은 실제 설교 준비 과정에서 배운 대로 하느냐는 것이다비밀 맡은 자로서 진중하게 성경을 대하고진지하게 사색하고엄중한 심정으로 준비하는 모든 과정의 비밀을 볼 수 있다무엇보다 저자가 실제로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을 시연해 줌으로 설교 준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그리고 주석과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책을 읽는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저자의 말처럼 설교는 무거운 영예이다서론에서 저자가 고대한 대로 나도 남은 설교 사역의 기간을 비밀 맡은 자로서의 에토스파토스로고스를 가지고 완주하고 싶다저자가 책을 닫으며 기도한 것을 나의 기도 제목을 삼고 싶다. “저희의 사역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교회의 권위를 회복하며설교의 품격을 회복하도록 붙드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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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공부를 위해 필요한 101가지 철학 개념
켈리 제임스 클락 외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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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철학이다.

켈리 제임스 클락 외 2, 101가지 철학 개념도서출판100, 2017를 읽고.

 

목사에게 있어 주된 공부는 신학이다. 그런데 신학 공부를 실제로 가능케 하는 기초는 철학이다.” 설교비평으로 유명한 정용섭 목사가 신작 <목사공부>에서 한 말이다. 그는 신학을 그렇게 공부한 목사들이 신학의 세계로 침잠하지 못하는 이유를 철학에 대한 몰이해로 잡았다(목사공부, 183p). 반론을 펼 새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가 말하는 철학 이해는 고대를 시작으로 중세를 넘어 근대에 이르는 거대한 철학사를 공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말마따나 철학적 사유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신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다닌 신학교에는 쾌나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학부 과정에 이렇게 좋은 교수 밑에 완벽한 철학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신학교가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명분은 좋았다. 학점이 짜기로 유명한 교수님이니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고, 그러면 홀어머니의 고통이 과중되니 할 수만 있으면 빠지자. 그래서 필수를 제외한 선택은 요리조리 피해 나갔다. 이것이 패착이었다. 그 이후 철학은 내게 늘 부담이다.

   어디 나만 그럴까? 철학을 제대로 공부했던 그렇지 못했던 모든 설교자들은 매주 사유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 매주 쓰는 설교문이 사유의 결과이다. 좋은 사유가 좋은 설교문을 낳는다. 그러니 철학적 사유가 턱없이 부족한 나로선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나의 실력 없음을 주께 회개한다. 다시 철학으로 안내할 수 있는 책은 없을까? 이 어려운 일을 켈리 제임스 클락, 리처드 린츠, 제임스 K. A.가 해 냈다. 바로 나 같은 자를 위해 <101가지 철학 개념>이 나왔다. 간단하지만 이 책에 대한 두 가지 장점과 한 가지 단점을 밝힌다.

   우선 이 책은 간편하다. 철학하면 두껍고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을 떠올린다. 그래서 철학과 친해지기가 어렵다. 하지만 본 서는 개념을 중심으로 핵심을 농축했다. 물론 그렇다고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다. 출판사 대표가 삽지에서 고백했듯이 난이도가 있고, 배경지식이 없는 나로서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너무 길고 장황하여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을 법한 나에게 이런 구성은 퍽 고맙다.

   다음으로 이 책은 변증적이다. 본 서는 저자들이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철학의 모든 내용을 다루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신학 공부를 위해 필요한 철학 개념이다. 따라서 하나하나 곱씹다보면 철학이 신학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다. 신학이 익숙한 나 같은 사람에게 신학이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김용규 박사가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에서 줄기차게 철학과 문화의 혼합으로 나온 신학을 얘기할 때 강한 거부감과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사실이다.

   따라서 본 서를 읽다보면 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해석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요즘 핫한 기독교변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사고가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사고를 낳고 그 사고가 하나의 견고한 틀을 제공하는 사유의 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고스란히 현재로 이어져 더 다양한 생각을 노출하는 시대정신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쉬움을 들라면, 순서의 무질서이다. 첫 번째 개념인 계몽주의로부터 마지막 흄까지 순서 배열의 통일성이 아쉽다. 시대순도 아니고, 생각의 연결도 아니다. 물론 유사하거나 관련 있는 개념을 위한 표시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차라리 철학책답게 시대 순으로 개념을 배열하여 철학의 발달을 보여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무튼 철학 갈증을 위한 좋은 책이 출판되어 기쁘다. 이 책이 시발점이 되어 더 깊은 철학적 사유를 경험하고 싶다. 이 또한 교회와 그분의 영광을 위한 일이니. 다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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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 - 개정판
김기현 지음 / 복있는사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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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3번 읽었다. 처음은 김기현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어 그의 책을 모조리 수집하여 닥치는 대로 읽었을 때이다. 다음은 내가 아비를 잃은 나이인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들을 보며 다시 고난의 문제를 떠올리며 하박국을 설교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번에 새롭게 나온 개정판이다. 그러고 보니 성경 다음으로 동일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것이 <하고노>가 된 셈이다.

    먼저 <하고노>는 체험적이다. 고통의 문제라면 루이스가 떠오른다. 그는 고통을 귀먹은 세상을 깨우는 하나님의 확성기라고 얘기했다. 그랬던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에 <헤아려 본 슬픔>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원망의 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남의 고통은 고상한 언어로 말할 수 있어도 정작 자신의 문제가 되면 상황은 역전된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아버지의 부재, 목회의 현장에서 겪는 고통을 경험했기에 고난당하는 이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경험했기에 고통하는 이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묘사한다.

    다음으로 <하노고>는 인간적이다. 저자는 내가 고난을 좀 안다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다. , 고통을 단순화하여 간단하게 도식하지 않는다. 바로 고통의 유익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는 하박국은 물론이고 예레미야, 심지어 예수님까지 동원하여 고통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민낯을 들추어낸다. 신정론에서 말하는 대로 덮어놓고 하나님을 변호만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는 1그대, 고난에 직면하거든이다. 감히 하나님을 의심하고, 그분께 항의하라니. 허나 그것으로 인해 고통의 회복이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하노고>는 도전적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적 성찰, 하박국서의 성경적 연구, 폭넓은 독서의 힘이라는 세 가지 재료를 잘 버무려 멋진 걸작을 만들었다. 저자는 고통하는 이의 주특기인 신세한탄, 넋두리만 늘어놓지 않는다. 고난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고난을 도대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고난이 변장된 축복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 묻는다. 저자의 말마따나 그날이 오면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미래이니 지금 이 순간 <하노고>를 들고 곱씹으며 걷다보면 고통마저도 노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고통 때문에 나도, 성도들도 아프다. 또 계속 아플 것이다. 하지만 아팠지만 끝내 믿음으로 일어선 하박국이 있었기에, 그 과정을 잘 정리하여 소개해 준 저자가 있기에 고통의 길은 그리 힘들지만은 않을 것 같다. 고통으로 눈물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모든 이에게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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