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스민, 어디로 가니?
김병종 글.그림 / 열림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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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노령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보면 어쩔 수 없이 끝을 생각하게 된다. 점점 사물을 잘 못 보고, 소리도 잘 못 듣고, 그렇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던 녀석이 차츰 걷는 게 느려지고 반응이 무뎌지고, 잠이 더 많아진다. 앞으로 얼마나 같이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마음을 매번 다잡지만, 우리집 노령견 '똘이할배'를 보면 노화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오랜시간 함께 있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누군가의 책이 보이면 무조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떠나갈 것을 생각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보다는 떠나간 녀석의 빈 자리를 어떻게 채우는 지가 궁금해서랄까. 동병상련을 느낄 수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자스민 어디로 가니?> 속 자스민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작가인 김병종은 이미 세상에 없는 자스민을 생각하면서 에세이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은 자스민에게 보내는 편지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절필을 선언했던 그가 마음을 돌려 글을 쓰고 싶었다고 이야기한 것부터가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자신도 자스민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힘겹게 고백하는 듯 했다. 떠난 지 3개월이면 무엇이든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작가는 쉽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사람만큼 소중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던 녀석을 떠나보내기엔 함께 한 세월과 추억들이 너무도 많아서 말이다. 아마도 1년이 지난 어느날에도 문득 생각이 날 테다. 이렇게- 

 

야심한 밤에 무심코 의자 아래를 보는 경우가 있다. 거기 늘 앉아 있던 녀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면 한 줄기 엷은 바람 같은 것이 가슴으로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역시 늦은 밤 거실 탁자에 혼자 나와 앚아 와인을 조금 마실 때 치즈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다가 탁자 아래 발치 쪽을 무심코 보는 때도 있다. ....없구나, 하고 확인할 때면 역시 가볍긴 해도 바람 한 줄기가 탁자에서 가슴으로 휘익 불어온다.

 

책은 내 생각과는 달리 자스민과 행복했던 기억들로 주를 이뤘다. 작가는 자스민으로 인해 어린시절의 추억에도 놀러 갔다, 잠시 현실을 잊기도 했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스민의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어느 집이나 있는 투닥거림은 애교로 봐주자면 말이다.) 그러다 자스민이 온 지 15년이 되었을 때부터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의 "잘 가라 자스민"이 여섯 글자를 보면서는 대성통곡을 했다. 우리집 똘이할배가 죽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나 서러웠다. 자신과 유대가 강했던 작가의 둘째 아들이 군대에 가 있는 사이 하늘로 가버렸기에 둘째 아들 방을 보면서 눈을 감지 못했다던 이야기가 비단 남 이야기 같지만은 않아서다.

 

대체 나고 죽는 것은 무엇일까. 생명 있는 것의 소멸은 왜 이다지도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으로 남는 것인가.

자스민, 얼어붙은 땅으로 내려가는 너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꽃 피는 새봄이 와도 돌아올 수 없는 너,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는 너.

잘 가라, 자스민.

 

이 부분은 몇 번을 봐도 울컥한다. 이 짧은 글을 옮겨적는 와중에도 눈물이 떨어진다. 이건 아마 노령견을 키우고 있는 누구나가 느낄 감정-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에 대한 슬픔 혹은 그대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위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절절하게 적은 책은 아니지만 사랑받고 있던 자스민을 보던 기분은 썩 괜찮았다. 이 녀석은 사랑받고 있으니 잘 되었구나, 생각이 들면서. 우리 똘이할배는 언제쯤 내 곁을 떠나게 될까 생각해보면 또 슬프다. 할배도 우리 곁에 온지 13년이 넘었다. 아직까지 왈왈거리며 짖는 목청이 여전한 걸 보면 뜬뜬함은 어떤 개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 같아 안도가 되지만, 할배가 떠난 뒤 겪을 슬픔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가끔씩 할배가 잠을 잘못자서 다리만 절어도 가슴이 철렁하곤 하니까 말이다.

 

나는 작가처럼 이렇게나 담담하게 떠나보낼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언제까지나 내 옆에 머물러줬으면...하는 생각만 하고 싶다. 왜 <TV 동물농장> 같은데 보면 나오는 25년동안 건강하게 살고 있는 반려견들의 이야기도 있으니까. 조금더 곁에 머물러줬으면 하는 마음, 계속 내 가족이었으면 하는 마음. 너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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