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된 왕가위.

아마 내가 전 작품을 모두 본 몇 안되는 감독 중 하나인 거 같다.

청춘의 아이콘이라고 여겨졌던 그가 자신의 작품 인생을 회고 하는 것을 보니 새삼 그도 클래식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왕가위 작품 중 경외해 마지 않는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투게더도 작품을 쭉 나열해 놓고 보니 초기작으로 분류되는 것도 알겠다.

오랜 기간 그의 작품을 따라가며 그의 머리 속을 탐험하는 여행을 해온 터라 이 인터뷰집이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서양음악을 즐겨 삽입하고 평범한 거리를 영화적으로 만드는 능수능란한 기술을 가진 이 감독이 생각보다 훨씬 더 동양인 특유의 가족적인 사고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신뢰하는 배우를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여러 작품에 기용하는 것을 보면 그가 이성적임과 동시에 정서적인 측면의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말이다.

타락천사의 이가흔과 여명이 그와 한 작품 밖에 하지 못한 것도, 타락천사가 왜곡되고 과장된 영상으로 점철된 것도 그와 배우들이 정서적인 신뢰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뜻밖의 수확(?)이었던 것도 재미있는 에피소드 였다.

그의 작품에서 배우들이 특히 아름답게 나오는 이유는 그가 그 배우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기괴한 줌인으로 가득찬 영상을 보면서 이가흔과 여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 번째 흥미로운 점은 그가 걸음걸이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스크린의 화면은 배우의 몸 전체를 보여주기 때문에 배우의 몸, 특히 걸음걸이가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래서 왕가위는 첫 촬영에서 배우에게 걸어보라고 시킨다고 한다. 그 걸음걸이가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자극시킨다고 한다면 그는 과감하게 배우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작품의 내용과 대사, 캐릭터의 설정을 바꾼다.

일부 배우와 스텝들이 속 터져 하는 즉흥 연출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뻣뻣하거나 기성상품 같은 연기를 흉내내는 배우를 만날 때 그는 매우 난감해진다.

그리고 이 예로 그는 또 이가흔과 여명을 거론하다.

타락천사가 가장 실패한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불가하고 그에게 그 두 배우에 대한 평가는 가혹하다. 심지어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기는 했지만 과거로 돌아가 캐스팅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고도 한다.

암튼 배우의 신체를 포착하고 이를 담아내는데 그가 이렇게 집착하는 감독이라는 것을 새삼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그의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는 장면은 바로 인물들이 걷고 있는 때이다. 인물의 캐릭터가 신체를 통해 형상화 되는 순간이다.

이 두껍고 무거운 인터뷰집은 왕가위의 팬이라면 반드시 소장해야 하는 아이템이다. 아마 이 인터뷰집을 통해 당신이 그의 영화를 통해 인지하게 되었던 실타래의 다른 한 쪽을 그가 잡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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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왕가위.존 파워스 지음, 성문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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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된 왕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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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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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노는 도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책의 제목을 통해 보건데 그는 도시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한 것은 도시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도시 혹은 도시적 삶이라고 특징짓는 것 자체가 도시를 다른 무엇인가로 규정하는 것이고 도시는 그 이전 인간이 생계를 위해 1차 산업에 종사하던 삶의 모습과 구별되기 시작한 상징이다. 상업과 교역, 여행자들, 소비와 사치, 부유함과 빈곤함, 악습과 발전, 정착과 이주가 공존하는 도시와 도시적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와 대착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착점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형성되어 융합되고 사라지고 잊여지는 것이다. 특별함은 지나왔던 과거나 경험, 알고 있던 도시, 몸에 익숙한 풍습을 통해 인식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과거나 경험, 지나왔던 도시, 익숙한 풍습이 다시 소환되어 기억되고 의미가 발굴된다. 그러나 칼비노는 이러한 발굴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은 형성과 동시에 과거가 되고 다시 새로운 구별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되어 사라진다. 폴로가 새로운 도시의 발견은 결국 떠나온 곳에서 기원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며 현재가 존재하는 순간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과도 . 책을 읽다보면 칼비노가 추상적인 관념의 연결뿐만 아니라 도시와 도시 사이의 네트워크와 공통된 특성의 공유에 주목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칼비노에게 도시란 특별하면서 특별하지 않는 것, 한 인간의 삶과 그리고 인간 세상의 노정 그 자체인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를 관찰한다는 것은 삶의 과정과 인류사와 연결되며 그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노정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20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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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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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미는 검사라면 법으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탄탄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나 실제 현실에서 법은 완전하지 못하며 법 망을 통해서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따라서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 마쓰쿠라가 자신의 법망에 들어오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법은 결국 정의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곧 정의이다. 따라서 법을 어기더라도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행위가 아니다. 잘못은 오히려 범죄자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모가미는 정의를 실현하게 위해 법을 어기기로 한다. 그것은 뚜렷한 증거없이 참고인을 압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증거조작, 급기야는살인까지 자행한다. 하지만 그는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범죄자를 처벌하려고 했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젊은 검사인 오키노는 강직한 모가미 검사를 동경하여 검사로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점차 모가미의 행위가 적법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적법하지 못한 행위는 그것이 불의를 처벌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옳지 못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이 정의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모가미에 대항하기로 한다. 그리고 모가미의 불법행위가 세상에 알려지는데 일조하여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모가미를 동정하는 사람들은 모가미의 고뇌와 고통, 그의 결단에 공감한다. 오키노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그가 불의에 대항해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저지하려는 용기를 높이 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가미는 불법적인 수단으로 악인을 처단했지만 오키노는 정의로운 방식으로 악인에게 면죄부를 주고 비열한 기회주의자에게 이용당한다. 정의로운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 젊은 법조인은 자신이 넘어야 하는 큰 산이 모가미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부딪힌 것은 바로 ‘정의’라는 벽이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사실 모가미의 범법행위를 밝히기 위해 오키노가 선택한 방식도 결국 범법행위 였다. 그 자신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법을 어긴 것은 마찬가지 이다.
법의 허점을 잘 알고 있는 모가미는 결국 그 자신은 법을 어기는 방식으로 밖에 정의를 실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는 그렇기 때문에 젊은 오키노를 응원한다. 자신은 결국 이런 방식으로 밖에 할 수 없었지만 오키노가 언젠가는 법을 어기지 않고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된 세상에서는 오키노의 방식으로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변화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키노의 방황은 그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시즈쿠이 슈스케는 정의를 실현하는 두 검사의 시선을 교차해서 진중하게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모가미가 살인을 결심하는 과정도, 오키노가 동경하던 모가미에 대항하기로 결심하는 과정도 작은 변화들을 짚어가며 천천히 진행된다. 좀 더 스피드하고 집약되어 진행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p.s 기무라 타쿠야가 모가미로,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오키노로 캐스팅 된 동명의 영화가 곧 개봉한다. 두 사람 캐스팅이 너무 적절해서 기대된다.

https://youtu.be/pZRs-HmSt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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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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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중에서도 고전물을 좋아한다.
고전이라기 보다는 근대 시기, 과학수사나 부검같은 것이 사용되고 있지만 DNA나 미생물 검사 같은 하이테크한 수사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이런 시기의 추리소설을 배경으로 하면 수사관도 범인도 운신의 폭이 늘어나고 스토리 안에서 각자의 기술을 “이야기적”으로 풀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생활경계가 무한대로 확장된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다보면 인물 간의 관계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많은데 적당히 현대화된 시기의 인물관계는 이 또한 그저 가지고 있는 환상일 수도 있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상호작용 하는 정도가 더 높은 것 같다.
지금이야 같은 집에 살면서도 각자 다른 사회적 영역에 속해있어 관계의 밀접성이 과거보다는 떨어지는 것 같아 가정에 대해서도 관계의 뒤틀림에서 벌어지는 모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현대적인 공허함이 스토리 몰입을 방해한달까?
아마 이것이 내가 근대시기의 추리물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다.
이와 손톱은 근대물이라 등장인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도 루가 얼굴도 본명도 모르는 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은 보다 더 확장되고 개방된 사회를 무대로 하고 있다.
추리에서 범인에 이르는 과정이 우연과 가정에 기대고 있기 때문인지 탄탄한 트릭을 가지는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무에서 유를 찾아가듯 범인을 실체해가는 과정이, 즉 현실적 관계로 링크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달까.
그리고 그 관계가 일방적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연유도 까닭도 모르고 있다는 데에서 트릭이 완성된다.
따라서 밸린저의 이와 손톱은 여전히 ‘이야기’에 방점을 둔 고전적인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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