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단편집. 정보라작가의 작품을 이제서야 접한 것이 억울할 정도. 뭔가 이런 증오를 가져도 될까 싶을 때 읽으면 대리로 통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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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처음에 생각하게 된 계기는 ‘윤소라의 소라소리‘라는 오디오북 채널을 통해서 왕웨이롄의 ‘걸림돌‘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다.
무엇을 통해서 사회가 변화고 역사가 이루어지나 했을 때 사가들은 보통 통치자의 선택과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기록하고는 한다.
하지만 ‘걸림돌‘은 통치자들이 받았던 압박에 대해 기술한다.
중국현대사에 대해 알고 있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지금의 중국이 있게 한 것은 덩샤오핑의 파격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덩샤오핑이 우려와 반대, 혹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지금 중국이 구가하고 있는 성장과 풍요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걸림돌‘은 덩샤오핑의 선택은 원인이 아니며 또 다른 사회현상의 결과였다고 지적한다. 삶을 위해, 생존을 위해 역설적으로 죽음의 강을 건너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개혁개방은 선언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속삭인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거대한 이데올로기도, 철학도 없었다. 그들은 중국 본토에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혹은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다. 성공하지 못해 죽어간 사람들이 물이 빠진 강하구에 쓸려 내려온 시체로 가득찰 때 도덕적인 정치가라면 어떻게 이를 무시할 수 있을까? 이러한 현상과 이러한 현상을 묵과할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이 함께 만든 결과가 개혁개방이다. 그 때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그 때 죽어간 사람들이 없었다면 개혁개방은 선언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왕웨이롄은 말한다.
이 점이 나에게 굉장히 인상깊게 다가왔고 왕웨이롄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져 걸림돌이 수록된 그의 중단편집 ˝책물고기˝를 읽게 되었다.
사실 모든 책이 그렇듯 사고 한참을 읽지 않고 있다가 다른 책들과의 연상으로 문득 이 책이 생각나 비로소 일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걸림돌을 포함하여 총 5편의 중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소설들은 리얼리즘과 판타지가 혼재된 꽤 흥미로운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는 죄의식과 도피의 감정으로 엄혹한 자연환경 속에 자신의 유폐시키는 사람에 대한 진술문이다. 화려한 중국이 아니라 황량하고 광활해서 한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아마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아내가 느끼는 공포나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물고기‘는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카프카의 변신처럼 어느 날 주인공에게 신체의 변화가 나타나고 이로 인해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내가 공포를 느끼고 주인공의 아내가 그를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변화에 혐오를 드러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지 않고 다른 생명체, 예를 들면 개나 고양이로 변했다면 카프카의 메세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의 변화는 신체 전체가 벌레로 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가족으로 부터 소외되는 박탈감을 경험하게 된다. 카프카의 변신의 순한 버전인데 이런 일이 자신이나 주변인들에게 생겼을 때 보편적으로 인간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다른 현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그 존재에게 가졌던 감정이 유지될 수 있을까??
‘아버지의 복수‘는 어떤 면에서 ‘걸림돌‘처럼 현재 중국의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도 개발붐이 불면서 이른 바 ‘알박기‘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란 이기적이거나 더 많은 돈을 탐내거나 이런 비판적인 측면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버지의 복수는 그야말로 복수이다. 반평생 광둥에서 살면서도 광둥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북방인인 혼자 남아 광둥의 풍경을 지키기로 결심한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쉽게 재단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 의식을 던져 주었다.
‘베이징에서의 하룻밤‘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뭐랄까...젊은 시절 아슬아슬하게 이성과 썸타는 그런 감정을 상기시켰다. 그런데 특정 대상이나 특정 시기에 대한 회상은 결국 이상화되기 마련이다. 아니, 그것이 이상으로 남아 있을 때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일상이 되고 익숙한 것이 되어 버리면 본래 그것이 가지고 있던 힘이 사라져 버리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사람도, 기억도, 감정도. 아마 주인공은 과거의 첫사랑, 혹은 자신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을 영원한 사랑과 결국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이상화된 그 대상이 그 자신에게 주는 삶의 동력이 사라지는 것을 주인공 스스로가 별로 원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재미있었다. 중년이 되어도 다 자기 마음 속에 중2병 하나는 가지고 살아가는 거 아닌가?

중국에 대해 약간의 상식이라도 가진 사람들이 읽는다면 상황을 더 잘 이해할 것 같다.
만약 중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중국인도 개인적이고, 은밀하며, 중2병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 같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중국인은 중국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은 정치적 존재와 완전히 등치되는 것 같다.
중국에 인구만 14억이 넘는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동색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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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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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징팡은 문학과 과학에 대한 소양이 깊은 작가이다.
그녀의 이력만 보아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과학도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물리와 천체물리로 하고 학석사학위를 받고 정작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에는 국가발전개발위원회 산하의 정책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교육사업에 투신하고 있다.
그녀의 이력은 현재 중국 사회의 일면을 연상시킨다.
재능있는 인재가 순수과학과 문학에 투신했다가 국가 기관 산하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사회산업을 한다는 점이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정신이 투철한 중국의 전통적인 지식인이 성향을 느끼게 한다고 해야 한다. 중국 지식인들은 전통적으로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왔으며 그러한 성향을 현재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관계와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중국 지식인의 가치관이 느껴지는 행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와 다르게 그녀의 작품은 개체로서 인간의 판단과 자유를 부각시키고 있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개체성을 인간 본질과 연관시키는 작품들이 <<인간의 피안>>에 담겨 있다. 특히, <당신의 어디에 있지>, <영생 병원>, <사람의 문제>, <인간의 섬>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불합리, 충동이 인간성의 일부분이며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는 무질서와 혼란은 인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전차 안 인간>에서 인간이 파괴에 대항하기 위해 AI에 의지하지만 이러한 의지까지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선택과 판단에 의한 것이며 <건곤과 알렉>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즐겨하는 AI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인간적인 무엇인가를 버리고 상실시키는 것이 아니라 AI가 인간의 이러한 점을 습득하고 수용하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중국정부는 국가빅데이터센터를 건립하고 모든 데이터를 중앙집권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과거 기술적 한계 때문에 판단과 선택을 지방에 분권하던 중국의 정치적 전통이 AI와 빅데이터로 인해 변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통제와 감시에 동원되는 <1984>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중국의 현재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엄습한다.

이런 상황에서 하오징팡이 <인간의 섬>에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질서가 아니라 불확실성과 감성이 폭발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긍정적으로 그린 점은 매우 흥미롭다.

하오징팡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함께 만드는 교육>이 국가에 충성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국민교육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관이 반영되고 하향식의 통일 교육이 아닌 참여와 숙의로 수행되는 교육이기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그녀가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정신세계를 파괴하지 않는, 합리와 효율로 무장한 존재에게 우리의 정신세계를 의탁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행복을 찾는 인간성을 가진 사람들이 중국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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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부터 중국 SF소설의 약진에 대한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류츠신의 삼체가 휴고상을 받은 것은 나로서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아마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에서 상을 받은 것 만큼의 충격이었다.
그리고 바로 삼체를 찾아 읽어 보았는데 중국적 상황과 SF의 상상력을 함께 결합한 흥미로운 성과물이었다.
마치 60년대 SF가 미소냉전을 주요 배경으로 하는 것처럼 문화대혁명 기간의 과학에 대한 경시와 비이성적 군중운동이 주인공의 ˝다죽여버려!˝ 심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중국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그러다가 또 잊고 지냈는데 작년인가 하오징팡이라는 소설가가 류츠신에 이어서 휴고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연속 2년 수상이라 뭔가 신기하기도 했고 내가 그 소식을 미처 알지 못했기에 좀 놀랍기도 했다.
당시에는 다른 책을 읽고 있어서 계속 미뤄두고 있다가 지난 주에 한 번 읽어 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하오징팡의 소설은 류츠신과는 조금 다른 결로 흥미로웠다.

하오징팡의 소설에서는 인간의 감성적인 면과 혼란함, 복잡함이 더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휴고상을 수상했다는 <접는 도시>의 상상력은 혀를 내두르게 하였다. 인간의 노동력 수요가 줄어 들면서 쓸모없는 인간의 노동력은 긴 시간 수면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너무나 신박해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계급과 신분은 문학을 구성하는 흥미로운 요소인데 이를 공간 세계의 굴절과 연결시킨 작가의 상상력은 까무러칠 정도의 신기한 상상력이 난무하는 SF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인간 세계에서 공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터라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현의 도시>와 <화려한 한가운데>는 ‘강철족‘이라는 외계인이 침공한 이후의 지구를 다루고 있는데 이 강철족은 신기하게도 음악과 과학을 보호하고 장려하며 이러한 장기와 특기를 가진 지구인은 보호하고 정치적, 군사적 저항만을 무력화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세상이 다분히 현재 중국을 상기시킨다는 점을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오징팡이 이 소설은 여러모로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주극장>과 <고독학 병실은>은 가상세계, <마지막 남은 용감한 사람>은 클론 복제와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의 미래상을 <삶과 죽음>은 사후의 세계, <아방궁>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상상을, <곡신의 비상>은 우주개발을, <선상요양원>은 과학자의 우울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하오징팡은 SF의 다채로운 소재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물리학 석사학위와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력 때문인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지식을 풍부하게 소지하고 있다는 점도 작가가 SF세계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무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오징팡은 훌륭한 자질을 타고난 작가가 좋은 환경에서 풍부한 지적 체험을 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선례같다.

요즘 중국문화계의 암담한 현실을 보면 인류의 미래를 긍정하기 어려워지는데 하오징팡같은 작가를 보면 저 나라가 또 그렇게 끝간 데 없이 흑화되겠냐...싶은 암울함에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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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 - 천상에서 해피 투게더
이상용.이지훈 외 지음 / Media2.0(미디어 2.0)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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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 좋아한다고 했더니 빌려달라고 말도 안했는데 빌려줘서 뭔가 의무감에 읽은 책.
사실 그의 삶은 영화와 음악을 통해서 알면 그걸로 충분하다도 생각하는지라 굳이 이런 류의 책을 찾아 읽어 보지 않았는데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18년이 되어 버렸기에 뭔가 알고 있는 척 글을 써대는 사람들의 글도 비교적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솔직히 세월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확실한 커리어에 대한 무력감이 그가 몸을 던진 이유라고 단정한 듯 말하는 몇몇 대목은 그럼에도 불편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이 사람들도 아쉽고 슬픈 마음에 뭐라도 답을 얻고 싶은 거겠지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도 생기고.

장국영이 세상을 떠나고 그를 기념하는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두 달 만에 후다닥 나온 책이다. 난 그의 죽음을 둘러싼 그 어떤 논란에도 관심이 없어서 이 책이 사실로 적시하고 있는 사실들이 여전히 사실인지, 혹시 변한 건 없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래도 몇몇 글은 매우 공감하며 또 새롭게 인지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문일평의 장국영 in <영웅본색>, 이지훈의 장국영 in 왕가위의 <아비정전> <동사서독>, 장국영 in 대중영화 <천녀유혼> <인지구><금지옥엽>은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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