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트 피크닉
김민서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우선 작가를 본다. 꽤 예쁘다. 거기다 나이도 어리다. 85년생인데 2007년에 등단했다. 세상에, 23살에 소설가란 이름을 달았다니. 취직을 하기 위해 입사 지원서를 들이밀거나,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다시한번 고민하거나, 혹은 자신의 전공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일하기 위해 이곳저곳 기업체를 알아보는 나이에 벌써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으며 그곳에서 인정을 받았다니....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어디서나 이런 인간이 한 두명 쯤 있다. 그게 좀 샘난다. 샘나지만 어쩌라. 우선 읽어나 보자. <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를 쓴 작가니까 그래도 읽을 만 하겠지. 괜히 읽고 난 후 본전 생각나게 만들면 좀 화날 것 같다.

 

작가가 말한다.

"찰라의 간극에 갇혀 있다는 감각,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세계에서의 피크닉은 삶의 고민들과 미루고 싶은 결정들에서 잠시나마 자유롭게 만들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문장이 영 매끄럽지 않다. 삶의 고민들과 미루고 싶은 결정들을 잠시나마 잊고 인물들을 자유롭게 해 주고 싶었다는 뜻일게다. 좀 더 쉽게 쓰면 안될까. 괜한 트집을 잡는다.,

 

제목은 또 이게 뭔가. 에어포트 피크닉이라니. 에어포트는 공항이고 피크닉은 소풍이니까, 공항소풍이라는 말이 되겠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좀 짜증이 나려고 한다. 왠지 재미없을 것 같다. 그냥 단순하게 한국말로는 할 수 없었던 걸까. 어울리지 않게 공항소풍이 뭐야, 에어포트 피크닉도 그렇다. 어쩐지 소설 제목 같지 않고 인문학 서적의 냄새가 폴폴 풍긴다. 왜 공항에 대한 이런 저런 일을 해석해 놓은 책 말이다.

 

궁시렁 거리며 책을 넘긴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인물소개를 해야 하는데. 인물이 많다. 영국에 입양된 한국인 청년 제임스. 어릴 때 입양한 아이가 있는 한국인 중년 여자 엘리베스 김. 그녀는 현재 미국에서 은행지점장으로 일한다. 프랑스의 괴수영화전문 감독 기욤그린과 그의 금발의 젊은 부인 헤더와 십대 딸 줄리엣, 모델이 되려고 프랑스로 날아가려는 십대 크리스티나, 공항 안내 직원 호주, 한국전 참전용사인 노인 해리. 그외 배낭객과 곱슬머리 청년 등, 이 사람들이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유럽행 항공기가 결항되자 인천공항에서 노숙하면서 부딪치는 이야기다.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기 보다는 각자 자신만의 세계 안에 있던 인물들이 서로를 지켜보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보여진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참 잘썼다. 라는 생각이 든다. 참 재미있다, 와는 별개로. 사람들의 심리는 잘 나타났고 엄살 떨지 않는다. 불행한 일도 결국 마음 먹기 아니겠는가, 라는 강한 긍정이 깔려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다. 다 저마다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슬픔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힘이 되준다. 가족들은 화해하고, 호주와 제임스의 사랑은 이어진다.

 

행복한 결말이다. <나의 미니 블랙 드레스> 가 왜 영화로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된다. 마치 영화를 본듯한 감동과 재미와 흥미가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내용이 이어질까, 다음 내용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좋은 문장과 행복한 결말임에도 문자가 주는 즐거움이 부족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질척거리지 않아서 좋았고 작가의 시선이 따뜻해서 좋았다. 그것은 큰 장점일 것이다.

 

<좋았던 문장>

 

" 시간이 흐를 수록 기억은 서서히 돌아오지만 나의 말과 타인의 말의 경계선이 흐릿해져. 내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 내 경험과 상대방의 경험이 마치 어린애개 아무렇게나 뭉쳐버린 찰흙처럼 한 덩어리가 되는 거야."

(중략)

"난 그래서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게 좋아. 내가 모르는 인생을 훔치는 것 같거든. 경험하지 않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잖아. 언젠가 내가 또다시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만나 뮌헨의 그 술집에 대해 얘기 한다면 사람들은 내가 진짜로 그 곳에 갔다 온 줄 알겠지. 새까만 거짓말인데도 말이댜. 그렇게 생각하면 진실이란 건 정말 별것 가닌 것처럼 느껴져."

 

위에 인용된 문장들을 읽으며 그냥, 왠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묘한 지점을 잘 잡아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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