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조했다.
1.
내 트위터 계정이 정지당했다. (정지라고 하나? Suspended 라고 뜬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정지당할만큼 활발한 사용자가 아닌데, 의심가는 이유라고는 최근에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파괴에 대해 쓴 트윗 뿐이다.(하지만 설마 그 이유는 아니겠지). 기억이 맞다면, 나는 단지 이렇게 적었다. "언어파'괘'자!"
2.
출근길에 오래간만에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챙겨서 음악을 들었다. 인터넷 라디오로 적절히 손에 잡히는 채널을 듣는다.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인 것들. 전곡주의적, 혹은 취향주입적 입장에서 보자면, 그저 귀를 달래고 정적을 때울 뿐인 음악들일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인터넷 라디오의 시대에 있어서의 음악소비란 예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비트라디오는 점점더 광고가 늘어가는것 처럼 느껴지는 걸까. 바흐나 존콜트레인이나 말러나 하여튼 그런 것들을 폰에 넣어두어야 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3.
회사다방에서 커피를 사서 사무실로 들어가다가 휴대폰을 놓쳤다. 휴대폰은 엄청 큰 소리가 나며 바닥에 떨어졌고, 화면은 외관상으론 멀쩡했지만, 상단의 1/6정도를 제외하고는 검은 화면으로 표시되었고, 남은 부분도 왠지 매드맥스에서나 나올법한 TV화면처럼 노이즈가 껴서 나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일단 휴대폰의 다른 기능들은 멀쩡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1/10정도 안도했다. 메시지를 대신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워치류를 세 종류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떤 것도 차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휴대폰을 얼른 고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착신전환을 해두려고, 원격지원 서비스로 연결했으나, 네자리 비밀번호가 아무래도 생각나지 않아 세번이나 실패했다. 테스트폰을 켜고 아내에게 급한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보내라고 문자를 보냈다. 내친김에 치과도 가고, 수리센터에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3.
왼쪽 어금니가 언젠가부터 불편했다가 괜찮아졌다가 그만 주말에는 치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파왔다. 회사에 제출할 서류를 깔끔하게 처리해준다는 치과를 선배에게 확인해서 전화를 하고 원래는 예약이 가득하다는 시간 사이를 비집고 검진을 받았다. 치과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아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치과를 다니면서 관리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의사선생님과 간호사에게 혼났다. 좀 더 치과에 자주 다니고 점검도 받아야 된다고 하는 뜻일 것 같다. 금요일로 실제 진료를 예약했다. 나는 악당도 아닌데 금니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구글에서 보철물에 대해서 잠시 검색한다.
4.
AS센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AS기사들에게 자신의 가장 내밀한 기기인 휴대폰에 관련된 고민을 상담한다. "사실 제 휴대폰은요, 갑자기 뜨거워져요. 배터리를 너무 많이 먹어요." 기사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O- 캐쉬백 앱이 좀 그런 경향이 있었어요. 배터리를 이렇게 쓰시는건 정상이세요." 어떤 이들은 돈을 내고, 어떤 이들은 위안을 받는다. 하여튼, 그들은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듣는다. 사실 AS기사는 신의 대리인. 창조주인 제조사의 규격화된 신탁을 전달하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고객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대형종교란, 그런 것이다.
어떤 종교는, 제조사는 그런 것들을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단으로 간주하고, 배격하고, 다른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마도 재판에 부쳐서야만 제대로된 답을 들을 수 있는 걱정들도 있다. 그건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허용범위가 넓어질 수록, 자유도가 높아질 수록, 관리해야하는 범위가 넓어진다. 종교란 단호한 것이니까. 사랑이란 일방적이고, 이레셔널 한거니까,.... 맞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기사는 휴대폰을 열어보지도 않고 152000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다. 내가 불운해서 휴대폰이 망가졌는데도 그는 마치 자신이 미안한듯이 행동했다. 나중에 보니 불편 공감이라는 항목이 기사 평가 앙케이트에 있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10분뒤에 휴대폰은 - 전면패널을 가니 새 휴대폰 처럼 보였다 - 깨끗하게 되어서 내앞에 돌아왔다.
5.
치과 진료탓도 있고, 회사식당에서 죽을 먹기로 목표하고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죽과 건강식이 같이 줄을 서는데, 내 앞에서 죽이 다 팔리고 말았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완벽하지 못한 날은 원래 그런 것이다. 차마 불운한 날이라고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6.
회사 옆건물 지하 약국에서 감기약을 지어달라면 오링테스트를 하고 생약을 지어주는 (악명높은) 약사님에게 처방전을 내밀었다. 500미터정도를 걸으면 다른 약국이 있긴 했지만, 점심시간도 거의 끝나가고 귀찮기도 했다. 왠지 처방전에 있는 약과 완전히 똑같은 약을 주지 않는 것 같은 - 그러니까 카피약을 주는 것 같은 - 느낌이 들어서 확인해보려고 하다가 왠지 귀찮아졌다. 약사님이 설마 그런 부분까지? 아니 적절히 알아서 주겠지 라고 생각했다.
7.
드디어, 책 이야기다.
로지 프로젝트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이 소설을 마주치게 된 것은 빌 게이츠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칭찬했기 때문이어서,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집중해서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는 요즘, 킨들에서 짬짬히 읽기시작했는데, 생각보다는 아주 재미있다.
세상 모든 남자들은 일종의 아스퍼거 신드롬 경향이 있을 수도 있겠다. 아니 내가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항상 비연관성과, 우연과, 하여튼 알 수 없는 끌림과, 그런 것들이 동인이 되어서 촉발되는 것인데, 그건 로지컬 하지는 않쟎아. 로지컬의 극단에 서있는 증후군의 남자가 자신의 이상형을 조건으로 정리해서 찾아보려고 하는데, 매력적이고 귀여운 여자가 만나서 남자가 어떤 틀을 탈피하게 되고, 하여튼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인데, 이런 귀여운 연애담이란 즐겁지 그런거다.
로지 이펙트, 라는 2편이 있는 모양이다. 프로젝트를 다 끝내고, 그래도 여전히 맘에 든다면, 2편도 읽어볼 생각이다.
한국어로는 송경아가 번역했는데, 나는 그의 번역을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내멋대로) 하이텔 시절의 동지같은 느낌이라 번역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8.
완전히 성공적이진 않은 어떤 날들의 마지막은 어떻게 마무리 되었을까?
킨들은 이제까지 읽은 책 넘기는 시간을 바탕으로 책을 다 읽을때 까지 걸릴 시간을 계산해서 하단에 표시해 주는 기능이 있는데, 가끔은 이 기능이 너무 야멸차 보이기도 한다. 사둔 책은 많고 읽을 시간은 여전히 유한하기 떄문에, 때로는 절망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 기능을 끈다.)
하여튼, 치과진료는 중요하긴 하다. 먹는 즐거움이란 그나마 내가 누릴 수 있는 몇안되는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 말이다.
치과진료가 본격화 되어서 유동식만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도 오면 어떡하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나마 버거들은 대개 부드러운 음식이라 다행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