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앤서 - 어느 월스트리트 트레이더의 다이어리
뉴욕주민 지음 / 푸른숲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미국 주식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대부분 저자 뉴욕주민을 알고 있을 것이다. 현직 월스트리트 헤지펀드 트레이더로서 전해주는 수준 높은 분석과 미국 시장에 대한 이야기들은 단번에 눈길을 잡아끈다. 꾸미지 않은 솔직함과 편안하고 털털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는 그녀의 유튜브 채널은 묘한 매력이 있다. 똘망똘망한 눈과 당당한 목소리는 자신감이 묻어나서 좋다. 최근에는 《뉴욕주민의 진짜 미국식 주식투자》를 출간했다.


앞의 책이 미국 주식투자에 대한 전문적인 노하우를 쓴 것이라면, 이 책 《디 앤서(The Answer)》는 저자 개인의 트레이더로서의 성장 스토리를 엮은 것이다. 글에는 그 사람의 언행과 성격이 어느 정도 묻어나기 마련이지만, 유튜브에서 봤던 뉴욕주민의 말투와 표정들이 글에 그대로 보이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된다. 당차고 씩씩한 그녀가 활자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였는지 다른 곳도 아닌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에서 맥킨지의 기업 철학을 상징하는 슬로건에 딴지를 걸고, 컨설팅회사에서 투자은행으로 이직할 때 희망부서의 1~5순위를 모두 M&A부서로 적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레 다가왔다. 스물 한살에 시작한 그녀의 월가 커리어는 10여년을 넘었는데,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시안' '여성'으로서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 월스트리트에서 살아가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와튼스쿨을 조기졸업한 것은 학비 대출금을 줄이기 위함이었고, 졸업을 앞두고 터진 서브프라임 사태로 취업엔 비상이 걸렸다. 차선으로 컨설팅회사 맥킨지에 입사했으나 '재미'를 느끼지 못한 저자는 투자은행의 뱅커로 전직하고, 결국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 헤지펀드로 이직한다. 컨설턴트, 뱅커, 트레이더 어느 하나 만만해 보이는 직종은 없었고, 저 숨막힐 듯 빡빡한 삶을 살아낸다는 것 자체부터가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책 중반에 실린 '어느 헤지펀드 트레이더의 하루'를 보면 그 긴박한 일과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디 앤서(The Answer)》에는 저자가 월가에서 살아온 삶의 내력과 그 과정에서 얻은 견해와 통찰이 오롯이 실려 있다. 그것은 때로는 삶의 자세로, 때로는 투자 철학과 방법론으로 등장한다. '투자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메시지는 책 중간중간 드러나고 있지만, 특히 5장에서 압축적으로 싣고 있다. 과도한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인상적이었던 내용 2가지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원하는 자산을 '싼' 가격에 대량 매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시장이 '하락하는 동안'이지 '바닥'일 때가 아니다. 그 '바닥'이 언제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포트폴리오 상의 모든 투자 종목들은 매일 투자 적합성 테스트를 받아야만 한다. … 모든 종목들의 시장 종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가격에 새로운 포지션을 구축할 수 있는가?" (259~261 인용)


책 후반에 보면 투자은행의 채용 절차를 소개하며 웨스트포인트(미국육군사관학교) 출신의 뱅커와 네트워크 미팅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채용 절차도 무척 생소했지만 '사관학교'가 맺어준 인연이 특히 흥미로웠다. 저자는 한국에서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미국으로 유학해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을 졸업했다. 와튼스쿨은 '월스트리트 사관학교'로도 불린다고 하니, 어찌 보면 그녀는 2개의 사관학교를 졸업한 셈이다. '사관학교'라는 공감대로 이야기의 물꼬를 트게 된 그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월스트리트를 꿈꾸는 후배의 질문에 워라밸을 바란다면 차라리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자신이 경험한 월가의 풍경을 솔직하게 잘 담아내고 있어서 관련 진로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참고가 될 수 있겠다. 개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능력 제일주의를 신봉하는 월스트리트에서도 집안, 출신 지역, 학벌은 한국보다 더 심하게 따지는데, 이는 엘리트 사회일수록 더 두드러진다고 한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인맥이라는 네트워크는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하다.


유튜브 채널에서 본 뉴욕주민은 당차고 직설적이었다. 《디 앤서(The Answer)》 역시 마찬가지라서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팩폭(팩트 폭행)은 아프지만 진실에 가깝다. 이를 잘 수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노력은 자신을 한계치까지 몰아넣을 만큼 치열했고, 끊임없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열정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때때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저자의 견해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솔직함과 치열함 때문일 것이다. 월스트리트 트레이더의 투자 경험과 원칙을 일반의 시민들과 나누고자 하는 저자의 집필 의도는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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