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1~7 세트 - 전7권 -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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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권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한겨레신문에서 시사만평을 그리던 이가 뜬금없이 역사만화, 그것도 조선왕조실록이라니~!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눈길을 단번에 끌어당기며 시작했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12년 만인 2013년 20권으로 완간되었다. 그리고 2020년 올해 또 하나의 역작을 독자들의 품에 안겨주니 바로 <35년 (전7권)>이다.


<35년 (전7권)>은 일제 강점기를 다룬 역사만화다. 전작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5백여년의 역사를 20권으로 담아낸 대하역사만화였다. 산술평균하면 한 권에 25년씩 담은 것인데, <35년>은 한 권에 5년씩 총 일곱 권으로 묶어냈으니 비록 조선왕조실록보다 전체 권수는 적어도 가히 대하역사만화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2018년 1월에 1권을 내고 2020년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추어 7권으로 완간하니, 준비기간까지 포함하면 도합 7년에 걸친 대작업이었다.



<35년 1권>은 일제 강점기의 시작, 무단 통치의 전반기를 다룬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는 매우 꼼꼼하게 준비되었다. 그들은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의 식민 통치를 연구하고 타이완에서의 지배 경험을 참조해 조선에 맞는 식민 지배의 방침을 결정했다.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를 동원해 선전과 홍보를 하니, 일본 시찰단은 효과 만점이었고 1915년 열린 조선물산공진회는 그 백미였다. 총독부는 수천 칸의 경복궁 전각을 허물고 전시관을 마련했는데 51일간 무려 12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일제의 지배에 순응해서 사는게 맞다는 인식을 퍼트리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것이었으니 일본인들의 심모원려가 두려울 정도다.



을사오적·정미칠적·경술국적에 이름을 올린 매국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천태만상의 친일파들이 생겨났다. 일제의 차별적 동화정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제의 주구로 전락해 갔다. 친일부역자들의 유형과 양상, 그 면면들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토지조사사업이나 회사령 등 총독부의 경제 정책이 가져온 영향도 핵심을 잘 짚어 요령 있게 담아냈다. 만화가 갖는 서사의 힘은 책 전반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해당 시대와 인물, 사건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높인다.



안창호의 '거국행'은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던 독립지사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유인석·이범윤·김약연 등 초기 망명자들부터 이회영·이상룡·김동삼 등 신민회의 기획 망명자들과, 신규식·박은식·김규식 등 상하이로 모인 지사들까지 그들의 뜻과 이상은 높고 순결했다. 국내 항일 비밀결사의 활동을 이끌었거나,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들은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당당히 운명을 개척해갔다. 종교활동이 곧 독립운동이었던 대종교와, 상동청년회와 신민회의 관계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항일지사들이 대종교인이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미주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박용만. 그가 주창한 무형정부론은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가장 선구적인 제안이었다. 소년병학교와 대조선국민군단 창설, 신한민보 주필 등의 활동으로 미주 동포 사회에서 존경을 받았던 선생은 이승만과 엮이면서 곤란에 처하게 된다. 이승만은 기독교도로서 살인자를 옹호하긴 곤란하다며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재판 돕기를 거절했고, 조직의 재산을 본인 개인의 명의로 바꾸거나 조직 자체를 사유화했다. 특히 직접 재판에 나아가 대조선국민군단의 항일운동이 미·일의 평화를 방해하는 범죄라고 증언하기까지 했다. 석사 후 4개월 만에 박사를 받았던 그의 학력은 특혜에 다름 아니었다. 하와이 동포 사회의 분열도 그로 말미암은 바 컸다.


"시대의 요구 앞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응답했던 사람들, 그들의 정신, 그들의 투쟁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라를 위해 싸웠던 선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리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라를 팔고 민족을 배반한 이들도 기억해야 한다.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그들은 일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고 집안을 일으켰다. …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로, 친일부역자는 친일부역자로 제 위치에 자리잡게 해야 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일제 강점기를 다룬 박시백의 <35년>은 치욕의 식민 역사를 다루면서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치열하고 부단하게 맞서 싸웠던 선열들의 모습이 잘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화 속 인물들의 모습은 남아있는 사진자료를 적극 활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당대 인물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었고 현장감이 살아 있다. 마치 역사 속 현장에 들어가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책 말미의 상세한 연표와 충실한 인명 사전은 너무도 감사한 보너스다. 감히 모든 국민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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