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희순 - 노래로, 총으로 싸운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정용연.권숯돌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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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희순>은 그래픽노블이다. 일반 만화보다 진지한 주제이면서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그래픽노블은 스토리에 완결성이 있고 작가만의 개성적 화풍이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책은 그린이 정용연 님과 글쓴이 권숯돌 님이 윤희순 선생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의기투합하여 비록 지난하지만 힘찬 협업으로 탄생했다. 이는 성남문화재단에서 추진하는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 일생을 바친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웹툰도 Daum 웹툰과 EBS 툰에서 볼 수 있다니 역사를 사랑하는 이로서 기쁘기 그지 없다. 우리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는 더 널리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윤희순 선생은 한성의 양반 윤익상의 큰딸로 태어났다. 16살에 화서학파 유학자인 유홍석의 장남이자 유인석의 조카인 유제원과 결혼하여 고흥 유씨 집성촌인 춘천 가정리 항골에서 지내게 된다. 화서 이항로, 중암 김평묵, 성재 유중교, 의암 유인석으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정통 도맥을 계승한, 당대의 가장 대표적인 위정척사파 유학자 집안의 일원이 된 여성이었던 것이다.



시아버지 유홍석과 남편 유제원이 을미의병에 참가해 홀로 집안을 지탱하면서도 선생은 '안사람 의병가' 등 다수의 의병 가사를 지어 사람들의 항일 의식을 높이는 한편, 후방에서 동리의 부녀자들과 함께 의병을 적극 도왔다.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는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해 직접 군사 훈련에 참가하는 한편, 군자금을 모집하고 탄약을 제조하기도 했다. 오줌을 모아 끓여서 염초(초석)를 얻었다는데 그 노고가 심하였으리라.


"우리나라 의병들은 나라 찾기 힘쓰는데 우리들은 무얼 할까 의병들을 도와주세

내 집 없는 의병대들 뒷바라지 하여 보세 … 만세 만세 만만세요 우리 의병 만세로다" ('안사람 의병가' 인용)

당시 군자금 모금을 위해 밤늦게 남장으로 변복해 드나드는 선생의 모습을 보고 마을의 아낙들이 외간남자와 정을 통한다며 수군댔지만, 선생은 오히려 일본 순검도 속일 수 있겠다며 웃고 넘겼다 하니 선생의 그릇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겠다. 경술국치 후 선생은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동창학교의 분교인 노학당의 교장이 되어 민족의 인재들을 양성했다. 환인에서는 3.1 만세 운동을 주도했고, 무순에서 조선독립단을 조직해 항일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일제의 추적으로 장남 유돈상이 체포되었고, 모진 고문 끝에 선생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니 윤희순 선생은 크나큰 실의에 빠졌다. 아들이 세상을 뜬 지 열하루 째 되던 날 자신의 일생과 3대에 걸친 항일 투쟁사를 적은 <일생록>을 남기고 돌아가시니 향년 76세였다. 선생의 마지막을 <의병장 희순>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어 실로 처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용서하거라. 죽음보다 어려운 삶을 너희에게만 떠안긴 채 혼자 떠나는 것을. 나라 잃은 백성으로 내 어찌 자식 잃은 슬픔을 혼자만 겪은 듯 유난스레 굴까마는, 이제는 정말 기력이 쇠하고 고단하여 쉬고 싶구나. 한 번도 나만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할미에게 마지막 이기심을 허락해다오." (411~412쪽 인용)


윤희순 선생 같은 분을 지금껏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곽낙원, 남자현, 정정화,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선생 등 나름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안다고 생각하고 살았으나 건방진 자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거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나의 글솜씨가 부족한 것이 이토록 원망스런 적도 없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과 부끄러움과 전율을 온전히 전하지 못함이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



윤희순 선생의 강단과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시아버지 유홍석의 행방을 찾는 일경이 집으로 찾아와 아들 유돈상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협박을 한다. 아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긴박한 상황에서, 순간이 영원 같던 그때에도 선생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흔들렸지만, 어미된 자로서 흔들리지 아니할 이가 누가 있을손가! 힘들었지만, 망설였지만, 확신할 수 없었지만 선생은 결국 굴복하지 않았다. 선생의 회고록 <일생록>에는 당시 선생의 고민이 진솔하고 절절하게 묻어난다.


<의병장 희순>은 윤희순 선생의 일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선생이 살았던 시대에 일어난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의병 활동과 관련해서 그 배경이 된 사건은 물론 의병 주변의 사람들, 활동의 실태, 흩어진 무리의 상황들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어 당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글과 그림 모두에서 인물의 표정과 감정 표현이 뛰어나 읽는 내내 감정을 이입해 몰입하며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더욱 감동적이었고 존경스러웠으며 또 부끄러웠다.



책의 말미에는 그린이와 글쓴이의 말이 붙어 있다. 그냥 예사롭게 넘기기에는 너무 인상적이고 뜻이 깊은 글이어서 이 책을 보는 분들이라면 꼭 일독하시기를 권하고 싶다. 부족한 나의 글보다 백배천배는 더 소개하고 싶은 글이라서 일부만이라도 인용해 본다.


"독립운동은 고난의 연속이다.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의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다. 나는 '다음 웹툰'에서 작품을 연재하는 내내 이들의 활동을 말리고 싶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가시밭길 대신 편안한 길을 걸으라 권하고 싶었다. 이제라도 쉬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안락한 삶 대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 오늘 내가 누리는 것들은 우연이 아니다. 어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결과다. 독립운동은 공동선을 위해 자신을 제단에 바치는 일이다. 자기 안의 비겁함과 끊임없이 싸워 이겨야만 한다." (p. 421 그린이[정용연]의 말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유교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가부장 사회에서 그것도 그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유학자 집안에서 자고 나란 여성이 어떻게 이토록 주체적이고 자주적일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 이런 면모는 윤희순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특수성인가 아니면 내가 몰랐던 유림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인가 … 윤희순 선생의 일대기에서 내가 드러내고 싶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독립운동의 연속성과 집단성이다. … 독립운동은 영웅적 개인의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도 단말마적인 외침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일으키며 함께 싸웠고 한 세대가 쓰러지면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다시 질기고 기나긴 여정을 함께 했다." (p. 423 글쓴이[권숯돌]의 말 중에서)


그래픽노블로 만나는 <의병장 희순>. 선생은 '안사람 의병단'을 이끈 조선 최초이자 유일의 여성 의병장이셨다. 노래로, 총으로 싸웠고, 시아버지와 지아비, 아들과 본인 모두가 항일 독립 투쟁의 전선에 몸을 바쳤다. 정용연 님과 권숯돌 님의 멋진 글과 따뜻한 그림으로 재탄생한 윤희순 선생의 일대기를 모든 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진심을 가득 담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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