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옛길 사용설명서 - 서울 옛길, 600년 문화도시를 만나다
한국청소년역사문화홍보단 지음 / 창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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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자유시민대학은 시민의 평생학습권을 보장하고 인문학적 성찰을 통한 시민력 향상을 위해 서울시가 설립 운영하고 있는 평생교육사업이다. <서울 옛길 사용설명서>는 이 서울자유시민대학의 문화콘텐츠 발굴 프로그램의 결실로 만들어진 책이다. 한국청소년역사문화홍보단을 비롯해 문화유산 해설사, 현장체험 지도사 등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모여 이루어낸 성과라고 하겠다.



서울은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옛길을 중심으로 찾아내어 책으로 엮었다. 여기서 말하는 '서울 옛길 12경'은 인왕산 등에서 흘러내리는 10개의 물길과 남산 자락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2개의 길을 말한다. 옥류동천길, 삼청동천길, 안국동천길, 제생동천길, 북영천길, 흥덕동천길, 정릉동천길, 남산동천길, 필동천길, 묵사동천길, 진고개길, 구리개길이 그것이다.


언론 보도를 찾아보니 2018년 서울시가 조선 후기의 지도와 오늘날의 지적도를 대조해 한양도성 내 옛길 620개를 찾았고, 그중에서 가볼 만한 12곳을 선정하여 '서울 옛길 12경'으로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2018년 3~4월에 걸쳐 서울시청 1층 로비와 세운상가 다목적홀에서 '서울옛길 12경 사진영상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서울 옛길 사용설명서>는 이러한 서울 옛길 12경에 대한 자세한 답사안내서이다.



책은 12개의 서울 옛길에서 만날 수 있는 과거(주로 조선)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그에 얽힌 사연을 스토리텔링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의 내사산 이야기는 서울의 지세와 풍수, 물길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12개의 옛길 어느 하나 유서 깊은 역사가 없겠는가마는 안국동천길은 더욱 이목을 끈다.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자리가 있고,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의 회관 터도 있었는데 정세권 선생의 사연이 뜻깊었다.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김옥균과 서재필의 집터와, 3·1 운동의 기획을 이끌었던 천도교 중앙본부 터를 모두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다.


정릉동천길은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었다. 아관파천의 현장인 옛 러시아공사관(일부),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덕수궁 중명전,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발상지인 성공회 대성당까지, 아프지만 벅찬 우리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진고개길은 남산에서 흐르는 여러 동천을 가로지른다. 충무로라는 이름의 유래인 이순신 장군의 생가터와 징비록의 저자 류성룡의 집터를 볼 수 있다. 활자를 주조했던 주자소, 영조가 시행한 균역법의 담당 관청인 균역청까지 모두 이 길 위에 서 있었다. 서울 옛길 12경이 품고 있는 터와 스토리들을 만나는 것은 정겹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였고 동시에 현재였다.



책은 깔끔하게 잘 만들어졌지만 183쪽의 면수와 1도 인쇄라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책값이 조금 과한 느낌이다. 문화유산 가이드라고 할 수 있는 책을 2020년 현재에 흑백으로 만나는 것도 감흥을 떨어뜨린다. 가장 아쉬운 것은 지도다. 지도라기보다는 개념도에 가까워 제 길을 찾기 쉽지 않을 듯하다. 자료의 이름이 생략된 곳이 가끔 보이고(ex. 1장과 2장의 큰 지도), 역사적 사실 관계의 오류도 일부 눈에 띈다. 환구단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14쪽), 의주와 개성 등의 상인은 시전상인이 아니다(21쪽). '선지식'은 불교의 고승(高僧)을 일컫는 말인데 용어와 띄어쓰기가 잘못되어 있다(73쪽). 다음 쇄에는 꼭 수정되면 좋겠다.


예전에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손에 들고 책에 나온 지역들을 둘러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코로나 걱정 없이 <서울 옛길 사용설명서> 책을 들고 옛사람들의 삶과 발자취가 서려있는 서울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옛길이 품고 있는 과거의 편린들을 만나면서 역사와 문화의 향기에도 취해보고, 그리하여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더욱 깊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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