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교토 - 디지털 노마드 번역가의 교토 한 달 살기 일본에서 한 달 살기 시리즈 2
박현아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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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현아는 프리랜서 일본어 번역가다. 남편의 지지 속에 결혼 4개월 차에 홀로 한달 살기를 떠난 용감(?)한 그녀. '와비사비' 정신(겉치레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불완전함의 미학)이 탄생한 옛스럽고 우아한 '세월의 흔적을 멋지고 단정하게 간직하고 있는' 교토에서 한달 살기를 결심한다.


30분 동안 창밖에 비친 교토는 현대 속에 전통이 아무렇지도 않게 스며들어있는 도시였다. 도쿄에도 신사와 절이 있긴 하지만, 도시 중심부에 이렇게까지 절과 신사가 많지는 않았다. 교토는 참 낯설고도 신기하면서, 외국인의 일본 판타지를 채워주기에 제격인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7쪽)


보통 한달 살기 하면 꼼꼼한 준비가 필요할 듯한데 저자는 곳곳에서 허당스런 모습을 보인다. 한달을 살면서도 여행자보험 가입을 깜박했고, 구글맵의 안내에도 방문지 입구를 찾지 못해 빙빙 도는 일이 잦았다. 버스는 잘못 타기 일쑤이고, 교토 도착 12일이 지나서야 버스 정기권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단다. ㅎㅎ


저자는 교토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의 다도 체험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 이유가 재밌는데 그건 책을 확인해보기 바란다 ㅎㅎ. 프롤로그에서부터 자신의 교토 이야기는 재밌을 거라고 자신만만해 하는데, 3일차 이야기를 넘기 전에 그 배짱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거는 왜 옅은 핑크색인가요? 지금은 벚꽃이 피어서요. ··· 네. 지금 시즌 한정이에요! (헤이안 신궁의) 운세 뽑기조차도 벚꽃 시즌 한정이라니, 일본에서 벚꽃은 사골보다 더 많이 우려먹는 소재가 아닐까? 벚꽃 특수로 장사가 잘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좋은 일일 테지만 말이다." (66쪽)


간결하고 경쾌한 문장은 글 읽는 호흡이 가쁘지 않고 편안하다. 뽐내지 않는 솔직함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운 문장은 읽는 동안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아라시야마의 도게츠 카페의 창가석에서 사쿠라후부키(벚꽃 꽃보라)를 보며 디지털노마드 라이프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는 기분에 빠져드는 저자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한 달의 교토>는 교토 한 달 살기의 기록을 날짜별로 그대로 담았다. 현지에서 네이버 포스트에 하루하루 올렸던 연재글을 다듬었다. 그날의 기록 끝에는 주요 방문지와 체험에 대한 정보(운영시간, 입장요금 등)도 간략하게 정리했다. 직접 가보진 못했으나 놓치면 아쉬울 곳은 간단한 소개를 곁들였다. 예를 들면 후시이미나리 근처의 450여년 이어져 온 장어덮밥집 등등...


다리 하나로 과거에서 현대로 타임 슬립이 가능한 기온의 산조 다리에서 저자는 현대와 역사가 공존하는 도시 교토의 멋과 정취에 흠뻑 빠져든다. 하지만 일교차가 극심했던 교토의 4월, 갑작스런 번역 주문에 야경을 보러 들렀던 니조성의 기념품 가게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해야 하기도 했다. 힐링을 위해 호캉스를 하러 간 시가현의 호텔에서도 비와코 호수를 내려다보며 번역 일을 멈추지 않았다.



비 오는 엔토쿠인의 툇마루에서 정원을 즐기며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와 힐링은 너무도 부러웠다. 교토고쇼는 햇살 좋은 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산책할 것을 추천한다. 금각사를 본 사람들은 한번쯤 궁금해했을 '저게 다 순금일까?' 라는 의문은 저자도 다르지 않았다. 1000년간 한자리에서 무려 28대째 한 집안에서 운영하는 아부리모치 가게 이치몬지야 와스케는 놀라웠다.


저자가 아라시야마 치쿠린을 떠올리면 키요 언니가 생각나듯, 나도 치쿠린 하면 함께 떠오르는 여행 동지들이 있다. 몇년전 그들과 함께 했던 간사이 여행 때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겨준 곳은 은각사였다. 그래서 29일차에 실린 작가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했는데,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과 상당히 비슷해서 왠지 모르게 뿌듯하기도 했다.


"금각이 아름답고 세련된 최신 디자인의 옷을 입은 사람이라면, 은각은 마치 무심하게 아무거나 걸쳤는데도 기품이 느껴지는 사람 같았다. ··· 은각사 정원은 한 번 둘러볼 만하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푸르고, 샘물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을 매일 산책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치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은각사의 정원은 아름답다. ··· 만약에 금각만 보고 은각을 보지 않았더라면, 어쩐지 미완성된 여행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261~264 발췌)


한달 살기로 머문 교토에서 저자는 많은 곳을 둘러봤다. 일정은 미리 정하지 않는다. 오늘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마음이 내키는 곳으로 집을 나선다. 호텔로 가는 셔틀 버스 안에서 호텔 예약을 하고, 히가시혼간지를 둘러보다 문득 떠오른 혼노지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발걸음은 여유롭고 스토리는 세세하다. 소소한 일상과 이야기에서 차분한 멋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책을 읽고 나니 마치 내가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들어서 좋았고, 몇년 전 동료들과 함께 했던 간사이 여행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 좋았다. 가보고 싶은 곳도 생겼다. <겐지모노가타리>의 무라사키 시키부가 집필한 곳이라는 이시야마데라, 교토의 도심 속 역사 정원 쇼세이엔, 그리고 작가가 5일차에 방문했던 니조성 근처의 클램프 커피 사라사다. 창을 가득 메운 햇살과 초록빛 식물들이 근사했다는 창가의 자리에 앉아 나도 교토의 봄을 만끽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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