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로망, 로마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길 잃고 방황하는 자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마치 자신의 등불로 다른 사람의 등에 불을 붙여주는 것과 같다. 그런데 남에게 불을 붙여주었다고 해서 자신의 불이 덜 빛나는 것이 아니니라." - 책 120쪽에서 인용 -


윗 글은 키케로의 <의무론>에 나오는 구절인데, 마치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역할을 보여주는 듯한 문장이기도 합니다. 저자 김상근 님은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로 2016년에 EBS 세계테마기행 '이탈리아 르네상스 기행' 4부작에서 열정적으로 안내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의 로망, 로마>는 로마의 건국에서부터 왕정, 공화정, 제국으로 변화하는 시기의 역사와 문화를 지금 로마에 남아있는 유산으로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시간의 흐름과 현재의 유산이 잘 어우러져 과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 때의 로마를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만큼 서술이 매끄럽고 이야기는 맛깔스럽습니다.


3년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사흘을 로마에서 보낸 저로서는 이 책이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테르미니 역 지하의 맥도널드 매장 안에 세르비우스 성벽이 있다니, 미리 알았다면 그곳에 분명 들러보았을 것인데 아쉽기도 합니다. 그런데 테르미니가 터미널의 이탈리아식 표기인줄 알았더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대형 목욕탕(thermae)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카르타고의 함락'에 대한 스키피오와 폴리비우스의 대화는 인상적입니다. 승리의 현장에서 국가와 문명, 사람과 위인도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운명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보통의 깊이로는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과서에서나 들어봤던 폴리비우스의 <역사>라는 고전을 이렇게라도 읽게 되네요 ㅎㅎ



미네르바 성당 앞의 오벨리스크를 등진 흰색 코끼리상과, 나보나 광장의 4대강의 분수처럼 로마 한복판에 이교도의 상징이 버젓이 있을 수 있는 종교 복합 현상에 대한 해석은 꽤 흥미롭습니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사상가 루크레티우스를 통해 풀어낸 이야기는 앞서의 의문에 답이 되어줍니다. 가톨릭 교회의 총본산이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의 광장에 이교도의 상징인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는 까닭도 다 사연이 있더군요. 그건 순교의 '목격자'이기 때문이랍니다.


판테온 입구에 있는 16개의 거대한 기둥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 커다란 기둥이 하나의 통으로 된 돌이라니, 그것도 이집트산 화강암~! 판테온의 건축에서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리파의 우정을 떠올리며 먼 길을 함께 갈 수 있는 길동무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황제 가문의 변화를 드러내고, 로마 시민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세운 콜로세움은 역설적으로 황제의 권력도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함을 느끼게 합니다. 타키투스의 <역사>는 냉철하고 예리한 문장이 인상에 남습니다. 산탄젤로 성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고전에서 인용되는 부분은 많지 않지만 그 임팩트는 충분히 강합니다. 고전의 인용이 자연스럽고 이야기에 적절히 녹아있어서 마치 역사 속 인물인 저자들이 화면에 나와 잠깐씩 인터뷰를 하고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이 '재활용품'이라는 놀라운 사실도 새롭게 알았습니다. 밀라노 칙령으로 유명한 그의 개선문은 그리스도교 문명이 지배하는 시대의 출발점을 알리는 건축물이자, 중세로 가는 거대한 역사의 문이라는 저자의 평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브라만테,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이 세 거장의 노력이 오롯이 배어 완성된 성 베드로 대성당. 그들의 이야기는 르네상스의 시대정신과 바로크 시대로의 진입을 보여줍니다. 한편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최후의 심판'이 묘사하고 있는 지옥의 입구라는 점은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다시 확인하게 합니다. 그 그림에서 천국과 지옥으로 향하는 자들의 명부 크기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슬프지만 말입니다.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며 고전을 두루 섭렵하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우리의 로마 여행을 더욱 의미있게 만들어 줍니다. 찬란한 문화유산에 숨어있는 로마의 속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저자의 입담은 지식의 향연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가히 '고전(古典)과 함께 하는 로마 지식 가이드 투어' 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지금 로마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거나, 이미 로마 여행을 다녀온 분들에게도 <나의 로망, 로마>는 훌륭한 선택이 되겠습니다. 책의 1부, 2부, 3부에 나오는 내용에 따라 3일 간의 로마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길은 로마의 역사와 흥망성쇠를 따라가는 길이 될 것이며, 로마사 전체를 조망하는 멋진 체험이 될 것입니다.



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