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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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책이다. 고고학 책을 읽으며 이처럼 소소한 기쁨과 가슴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니~! 고고학으로 풀어낸 삶과 희망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학자적 사유'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자의 지적 감수성에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들고, 감성 넘치는 그의 사유에 어느덧 취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야. 그걸 누릴 줄 알면 부자인 거야." (303쪽에서 인용)


고고학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은 단순히 고고학과 유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를 소재 삼아 삶과 죽음, 인생을 성찰하는 이야기이다. 황금이 가득했던 무덤을 발굴하며 저자는 인간의 덧없는 욕망을 생각한다. 부귀영화를 꿈꾸던 그들의 흔적은 간데 없고, 무덤은 도굴로 깨져 황금은 빼앗겼다. 그 장면에서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가에 대해 저자가 준 힌트가 윗 문장이다.



출산 중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의 유골에서 저자는 여인의 고통과 가족의 슬픔을 떠올리며 가슴 저릿해 한다. 귀국하는 러시아 공사에게 고종황제가 싸준 응급한약 약봉지에서 달콤한 감초의 향을 맡으며 감동에 젖기도 한다. 향기를 잃은 유물에 대한 아쉬움으로 초원을 조사할 때면 땅에 누워 풀냄새를 맡아본다는 저자는 타고난 역사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인 듯하다.



유라시아 일대에서 곰과 관련된 신화가 없는 부족이 없고 이 모든 지역에서 곰마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군신화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학창 시절 배운 고조선의 옛노래 공무도하가에서 서역 초원 지대와의 교류를 엿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버섯머리 사람의 모습이 새겨진 암각화는 외계인이 남긴 흔적이라고 오해할 법한데, 환각버섯을 이용한 샤먼의 흔적과 관련이 있단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한다고 가정해서 빗대어 한 이야기는 매우 신랄하다. 젊은 날 아무 생각없이 재밌다며 본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다. 서봉총의 이름과 발굴, 황금에 대한 이야기는 일제와 열강의 제국주의적 약탈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1912년 영국의 찰스 도슨에 의한 필트다운인 인골 조작과 1999년 발각된 '신의 손'이라고까지 불렸던 일본의 후지무라 신이치의 유물 조작은, 주변 고고학자들의 침묵과 '위대한 조국 만들기'를 위한 쇼비니즘에 기인했다는 점에서 판박이와 다름 없었다.


유물 위조의 부끄러움은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영구결번된 국보 274호의 사연이다. 1992년 경남 통영 한산도 지역에서 '귀함'이 새겨진 별황자총통이 발견되어 불과 17일 만에 국보로 지정됐다. 질 낮은 가짜 유물을 이순신이라는 이름 하나에 졸속으로 국보로 지정한 이 사건은 사회적 조급증과 언론의 호들갑 어린 질타가 버무려진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한강 유역에서 발견된 가장 큰 마을이자 수백 개의 고인돌과 1000여개가 넘는 청동기 유구가 쏟아져나온 춘천 중도의 유적은 개발의 논리(레고랜드 건설) 앞에 무너져 내렸다. 고고학자로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4대강 사업으로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된 강가의 유적에도 분노를 표하고 있다.



나도 한때는 고고학을 꿈꿔본 적이 있다. 지금 이 순간 고고학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청춘이 있다면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는 저자 강인욱의 이야기를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또한 삶의 의미와 역사의 쓸모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찾고 있는 이들에게도 일독을 적극 권하고 싶다.


"박물관 전시품 안에 있는 유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고고학에서는 하나의 유물을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유물은 계속 발견되고 그에 대한 해석 역시 계속 바뀐다. 이렇듯 고고학에는 정답이 없다. 고고학은 매일 바뀌어가는 일상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277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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