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김호기.박태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과 기억의 복원으로 재구성되며 재해석된다. 역사 해석이란 본디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현재진행형이다. (중략) 어떤 사실과 기억이 이 시대를 정직하게 반영하는지를 분석하고, 그것이 현재에 어떤 함의를 안겨주는지를 성찰하는 것은 우리 현대사를 연구하는 인문.사회과학자에게 더없이 중대한 과제다." (제1부 6. 해방전후사 해석 논쟁, 55쪽)


이런 의식을 공유하는 사회학자 김호기와 역사학자 박태균이 한국 현대사를 네 시기로 나누어 40가지 주제를 뽑고,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그간의 논쟁을 검토해 미래의 청사진을 만드는 밑거름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네 시기를 간략히 표현하면 1945~1960년의 분단체제 형성기, 1961~1979년의 박정희 시대, 1980~1996년의 민주화의 개막과 진전 , 1997~2018년의 외환위기 후 한국사회 인데, 각 시기별로 대략 10개씩의 논쟁을 배정하고 있다.



<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는 2015년 경향신문의 광복 70주년 기획 '논쟁으로 읽는 70년'에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 묶은 책이다.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인만큼 하나의 주제당 대략 8쪽 이내여서 읽는 건 편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는 건 만만치 않다.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중간중간 궁금한 내용을 찾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논쟁의 주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모두 아울러 다채롭다.


'신탁통치'에 대한 국내 첫 보도인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이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기사는 오보(또는 왜곡보도)였다. 진실은 그와는 정반대에 가까웠으니까! 탁치 정국에서 박헌영의 기자회견은 '기레기'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잘못된 보도가 가져오는 파행과 피해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안 논쟁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국사회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재편했다는 사실이다. 항일민족 vs 친일반민족의 대립이 좌익 vs 우익의 대립으로 재편되고, 이러한 좌우 대립의 정치 구도가 분단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적'이라는 시로 박정희 정권의 권력형 비리와 부패를 통렬히 비판했던 김지하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것은 한 인물의 변화와 역사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시민운동 논쟁에서 소개하고 있는 서경석 목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관변단체가 아닌 명실상부한 NGO의 첫 시작이라 할 경실련의 상징이었던 서경석의 최근 행태는 실로 아연실색하다.



맥아더 재평가 논쟁과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논쟁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가장 치열한 쟁점일 것이다. 논쟁의 소개와 평가에서 두 저자는 비교적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계적 중립은 중립이 아니라 또하나의 왜곡일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하는 독자라면 저자들의 균형적 시각에 상당 부분 동의할 수 있으리라.


5.18 광주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한반도가 분단과 냉전의 상황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최소한 어느 일방은 그러하다) 북한 특수부대가 잠입했다는 5.18 왜곡 발언으로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지만원 씨가 판결 1년여 만에 배상금을 지급한 것이 바로 며칠전이다. 1987년 대선의 후보 단일화 논쟁이 보여주는 진정한 교훈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 개발이 아니라 단일화를 통한 이벤트를 통해 선거에서 이기려는 꼼수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지적도 매우 인상적이다.


"천안함 침몰, NLL 논쟁 등 남북 관계 쟁점은 한번 불거지면 다른 모든 이슈들을 잠재우는 이념 논쟁의 블랙홀이다." (250쪽) 이는 현재의 분단체제 극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비록 서로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겠지만 보수의 '통일 대박론'과 진보의 '한반도 평화론'이 만나는 접점도 결국은 '통일'이다. 통일 문제가 오늘날 한국의 시대정신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기성세대의 '노력'과 청년세대의 '노오력'이라는 단어로 세대 단절을 해석하고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을 분석하는 글은 매우 흥미롭다. 계급이동의 사다리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다는 진단은 점증하는 불평등의 해소가 시급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김호기, 박태균 두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불안과 분노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언급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민주화라는 새로운 변화를 갈망해왔지만, 그 변화는 어느덧 우리 손아귀에서 벗어나 세계화라는 타율적 변화를 강제해왔다. 민주화의 시간을 특징지어 온 사회개혁의 구심력이 세계화의 시간을 특징지어 온 구조적 강제라는 원심력에 의해 서서히 압도된 것이 1997년 이후 우리 사회의 풍경이었다. (중략) 10대의 대학입시, 20대의 청년실업, 30대의 주거불안, 40대의 퇴출공포, 50대 이후의 노후빈곤은 불안의 구체적인 실체를 이뤄왔다. (중략) 이런 불안과 분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욱 강화돼왔다. (중략) 이런 불안과 분노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의 과제다." (제4부 31. 87년 체제 vs 97년 체제, 259쪽)



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