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역사특급 - 비단길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동서양의 역사 이야기
강응천 지음 / 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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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실크로드 답사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육상 실크로드의 일부에 불과한 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였지만 진시황의 병마용, 둔황 석굴과 옥문관, 명사산과 화염산, 고창국과 교하국의 유적 등은 한동안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만큼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무엇보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지역에서 봤던 원유와 천연가스 개발 그리고 풍력 발전의 모습은 역사 속 실크로드만을 생각하고 온 나같은 여행객에게는 실로 큰 충격이었다. 그렇기에 실크로드를 다룬 책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책을 보며 왜 제목에 '역사특급'이라고 붙였을까 궁금했는데, 저자의 서문에 보니 우리는 '미래로 달리는 실크로드 열차' 위에 올라타 있다고 한다.


동서양의 교류를 상징하는 과거의 실크로드에서 현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합한 실크로드 경제벨트) 구상으로 더더욱 활기를 띠게 될 미래의 실크로드, 이 실크로드 급행열차(express)에 올라타 당당히 변화의 일원이자 주역이 되자는 뜻을 담고 있는 듯하다.



역사를 전공하고 여러 책을 쓴 저자인 동시에 한국 출판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책인 <세계사 신문>과 <한국 생활사 박물관> 등의 기획자이기도 한 저자 강응천은 이 책에서 18가지 이야기로 동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관통했던 실크로드의 과거와 현재를 흥미롭게 엮어내고 있다.


한 무제의 장건 파견은 원래 대월지와 연합하여 흉노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었으나, 서역과의 교류를 통한 비단 판매 이익 확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이후는 비단 제조법의 비밀을 둘러싸고 지키려는 자인 '비단이 장수 왕서방'과 이를 알아내려는 오아시스와 유럽 국가들의 천년이 넘는 팽팽한 신경전의 연속이었다.


실크로드를 둘러싸고 B.C 3세기에서 A.D 2세기까지 5백여 년간 자웅을 겨룬 한과 흉노는 장건, 곽거병, 반초의 이야기와 함께 역동적인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당 태종이 고구려 원정을 갈 때에 <대당서역기>의 저자인 현장 스님을 데려가고자 했으나 거절당한 일화는 현장이나 고구려의 입장에서 모두 다행스런 아찔한 이야기였다. 고구려 유민 출신 장수였던 고선지의 탈라스 전투 패배로 제지술이 이슬람에 전파되어 이후 유럽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영향을 미쳤음을 통해, 종이를 실크로드 최고의 명품이자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품으로 치켜세우는 저자의 견해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책을 읽으며 단편적이지만 깨알 같은 지식이 늘어나는 것도 제법 재미가 있다. 인도판이 여전히 북쪽으로 이동하는 판 운동을 계속하여 히말라야가 1년에 약 5cm씩 높아지고 있다는 것, 고구려 후기와 발해 고분의 독창적 특징으로 꼽히는 모줄임천장이 놀랍게도 둔황 막고굴 249굴에서도 발견된다는 것, 국립중앙박물관에 오타니 컬력센이라는 약탈문화재가 있다는 충격적이고도 반전있는 사실, 명나라 영락제의 자금성 건설시 벽과 천장에 사용된 벽지가 전주산 닥종이라는 것 등은 책을 읽는 흥미를 더욱 높여준다.


비단과 제지술을 비롯한 중국의 문물은 서양에 전해져 그곳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는데, 유교 같은 중국의 사상은 왜 전파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 제기는 그간 생각해 본 적 없는 흥미로운 주제였고, 고려의 부마국 체제가 단지 힘과 강요에 의해 전락된 것이 아니라 고려 왕실과 국가를 원이 주도하는 세계의 핵심적인 일원으로 만들고자 했던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신선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 항해를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이자 산타마리아 호에 신주단지처럼 모셨다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세계의 주류가 동양에서 서양으로 바뀌는 서세동점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주목을 이끈다. 유라시아 대륙의 실크로드와 아시아 태평양의 새로운 교역로 사이 한가운데에 한반도가 자리잡고 있으며, 남북한의 통일은 양쪽의 교역 네트워크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실크로드 역사특급>은 10여년 전의 여행을 되살리게 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정말 불꽃을 닮았던 화염산에서 서유기의 파초선 이야기를 떠올렸던 일, 현장 스님이 불교를 강론했던 고창국 대불사 터에서 의상을 갖춰입은 현지인들과 얼떨결에 사진 한장 찍고 돈을 지불했던 일, 대안탑에 올라 바라본 서역 가는 길의 책속 사진이 10년전 내 기억 속의 모습과 너무 달라 느꼈던 격세지감 등 젊은 날의 여행과 추억이 어우러지는 모처럼 정감 있는 책 읽기가 되었다.


하루빨리 평화통일이 이루어져 한반도에서 시작하는 아시안 하이웨이를 타고 실크로드의 남은 코스를 여행할 수 있기를, 또 부산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넘어 유럽을 여행할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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