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 한국 KBS, 영국 BBC, 독일 ZDF 방영 다큐멘터리
KBS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제작팀.류종훈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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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에든 시스템을 만들어 대중을 선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일컬어 '사회 지도층' 혹은 '엘리트'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지구상 가장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곳이라고 불리어 온 북한은 어떨까? 북한 역시 이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우리는 북한이라는 사회가 소위 '최고 존엄'이라는 인물의 말 한 마디에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의 말 한 마디만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다. 북한에도 김정은과 함께 사회와 대중을 이끄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바로 '파워 엘리트'와 '달러 히어로즈'다.

 북한을 움직이는 이 두 축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전에 김정은 집권 후 북한 사회에서 이어진 변화를 짚어보려 한다. 김정은은 2011년에 김정일에 이어 북한의 최고 통치자 자리에 올랐다. 김정일은 아들을 위해 후견인 그룹을 만들어 두었다. 이들은 김정일의 관을 들기도 한 사람들로, 총 7명으로 이뤄져 있어 '운구 7인방'으로도 불린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리영호, 장성택 등이 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6개월간 이들과 함께 국정을 운영했다. 그러다 집권 7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본격적인 숙청을 시작한다. 첫 번째 숙청 대상은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였다. 리영호의 부재로 생긴 빈자리는 장성택과 그의 가족, 측근들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장성택이 전성기를 맞는 듯 싶었다. 하지만 그도 숙청의 칼날을 피해 가지 못했다. 2013년 12월, 장성택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재판에 넘겨져 공개 처형당했다. 리영호와 장성택을 제거한 김정은은 유일지도체제를 확립했다. 숙청 이후, 김정은은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 활약해 오던 군 출신 인물들을 당의 관료로 교체했다. 리영호, 장성택 숙청은 북한 권력의 핵심이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2016년, 북한에서는 무려 36년 만에 제7차 로동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분야에서도 젊고 실무에 강한 테크노크라트들이 떠올랐다. 대표적인 인물이 리재일, 마원춘, 한광상, 조용원, 오수용이다. 이렇게 실무형 인재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김정은의 국정 목표 때문이다.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과 달리 인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경제 강국을 꿈꾸고 있다. 실제로 김정은은 2013년에 자신의 육성으로 인민 생활의 향상과 경제 건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로서는 이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인재를 뽑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권력 교체 외에도 여러 변화를 꾀했다. 대표적인 것이 과학 기술 중시와 교육 개혁이다. 이 결과 핵미사일 과학 기술자를 향한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졌고, 의무 교육 기간이 11년에서 12년으로 늘어났다. 이 조치들도 경제 대국이라는 목표를 위한 수단이었다.

 KBS의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제작팀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12기와 13기 대의원 687명을 조사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13기 대의원 687명이 이전 기수(12기)의 대의원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젊고 다양해졌다. 그리고 13기 대의원들 중 무려 55퍼센트가 교체되었다. 이들이 바로 북한의 정치를 책임지는 '파워 엘리트'다. 파워 엘리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다. 김여정은 김정은의 권력을 공고히하고 그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김여정 외에도 황병서 전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현 조직지도부장 등이 파워 엘리트에 속한다. 그렇다면 왜 김정은은 리영호, 장성택 등을 숙청하고 새로운 인물들을 권력의 핵심부로 불러 들였을까? 바로 '대북 제재' 때문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지속된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이어진 대북 제재는 북한 경제의 숨통을 조여 왔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김정은에게는 이 난제를 뚫고 나갈 수 있는 인재들이 필요했을 터였다.

 북한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축인 '달러 히어로즈'는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북한 정권의 유지, 핵 개발, 미사일 발사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2017년 10월과 12월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제제결의안 2375호와 2397호로 인해 김정은 정권은 더 이상 이들에게 의존할 수 없게 됐다. 김정은과 파워 엘리트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그것이 바로 '정상회담'이었다. 북한 경제를 옥죄는 제재를 풀기 위해 김정은은 자신이 통치하는 북한이 '정상 국가'이며, 자신 또한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미치광이'가 아닌 정상적인 지도자임을 보여주려 국제 무대로 진입했다. 그 결과, 지금껏 우리가 지켜본 상황이 전개되었다.

 북한이 처음으로 해외 노동자를 파견한 때는 1948년이다. 당시 소련으로 노동자를 보냈는데, 이때는 정치적인 목적이 더 강했다. 1967년, 북한과 소련이 상호우호협정을 맺은 후 범죄자를 포함한 15,000명의 벌목공들이 소련으로 파견됐다. 이때부터 북한의 노동자 파견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해외 노동자들이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해외에 본격 진출하게 된 때는 김정일 시기였다. 북한이 노동자를 보내는 국가들은 중국, 러시아, 몽골 등처럼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어온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 외에도 아시아 각국, 동유럽 등 약 45개국으로 북한 노동자들이 송출된다. 이들은 제3 세계로도 진출한다. 그곳에서 북한 노동자들은 벌목과 건설뿐만 아니라 호텔, 요식, 봉제, 수산, IT 분야 등에서도 활약한다.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수는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시대에도 늘어났다. 공식적으로 파악된 중국 내 북한 노동자의 수는 7만 명이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일하는 인원까지 합하면 그 수는 1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북중 국경지대인 단둥과 훈춘, 투먼에는 2만 명이 넘는 여성 북한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봉제와 식품 가공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중국에서 불법으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장마당에서 쓸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에서도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보통 체류 기간은 5년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일하는 것보다 돈도 더 많이 받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어 뇌물을 주고 기간을 연장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들도 벌어들인 돈을 장마당에 쏟아 붇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중국과 러시아 외에도 말레이시아, 폴란드에도 북한 노동자들이 진출해 일을 하고 있다. 이들도 고된 노동을 통해 번 돈을 장마당에 집어 넣는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인민 생활의 향상을 목표로 시장 경제 요소를 일부 받아들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장마당(종합시장)이다. 책에 의하면 북한에서 공인받은 장마당의 수는 480여 개다. 집권 후 시장 경제적 요소를 일부 받아들이고 국제 사회로의 진출을 시도 중인 김정은은 북한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 할까? 그의 꿈이 경제 대국이기 때문에, 아마도 경제적으로 고도 성장을 이룬 나라를 뛰어 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를 벤치마킹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 개방을 통해 고도 성장을 이룬 국가를 모델로 삼고 배울 것이다.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과 베트남이다. 중국은 개혁, 개방을 통해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사회주의 체제를 지켜냈다. 베트남의 경우, 오바마 정부 당시 미국과의 국교를 회복했다. 이후 개혁, 개방 프로세스를 착실히 밟아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함께 '제조업 빅 3'로 불리고 있다. 베트남 역시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 왔다. 현재 김정은은 중국 모델과 베트남 모델이라는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올초부터 한반도에 평화 국면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긴장 국면과 막말의 향연이 언제 일이었냐는 듯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빠르게 전개되어 온 상황을 보며 어리둥절하기도 놀라기도 했을 것 같다. 북한의 행동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었다고 할 만큼 빠르고 섬세하게 이뤄졌다. 이 상황 속에서 우리는 현재의 북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냉전의 논리만으로 북한을 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같다. 냉전 논리만으로 지금의 흐름과 북한을 바라본다면, 오히려 우리가 설 자리와 얻을 이득이 줄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북한을 끌고 가는 쌍두마차인 '파워 엘리트'와 '달러 히어로즈'에 주목하고, 그들이 이끌어 온 북한의 변화에 기초해 이전과는 다른 시각과 전략을 갖춰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통일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 답을 미·중·일·러와 함께 공유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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