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버린 고통에 비할 수 있는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나는 아직까지는 그런 고통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만약에라는 단어로라도 그런 상황을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섭고 두렵다. 이제까지 사랑하던 사람들의 자취가 내 곁에 남아 있고, 그 사람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데 다시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그 체온을 느끼지도 못한다니. 그건 TV나 소설에서 간접체험하게 되는 그 어떤 가혹한 형벌보다도 더 괴롭고 고통스러울 거다. 나처럼 겁이 많고 엄살이 심한 사람조차 차라리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선택하게 할 만큼.

 
이 책의 저자 니나는 바로 이런 고통에 빠져버린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이후, 그녀는 언니가 못다누린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마음과 언니를 상실했다는 고통으로 바쁘고 완벽하게 살아가기 위해 거의 강박에 가까운 노력을 퍼붇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삶의 상태론 자신을 옥죄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삶에 대한 해답과 언니의 부재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찾고자 1년간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고 감상문을 작성한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1년간에 프로젝트 과정과 그 안에서 그녀 자신이 찾은 답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책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저자가 책 읽기를 시작한 계기가 자기자신을 위한 힐링이였던 것 만큼, 책에 대한 소개나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 보다는 책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이 치유되는 과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엔 이러한 내용에 살짝 당황했다. 1년동안 하루에 책 한권씩 읽기 프로젝트가 이 책의 주요 홍보문구였던 만큼 그런 책을 기대했으나 막상 내손에 들려 있는 건 한 여인이 독서로 부터 자신을 치유하는 이야기였으니까. 게다가 자기 전에 잠깐 읽어 볼 요량으로 펴본 책이였으니 예상과 다른 내용에 졸음까지 겹쳐서 이 책이 점점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 지금 지속되는 것은 과거에서도 발견된다. 좋은 일은 예전에도 일어났고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아름다운 순간과 빛과 행복은 영원히 살아남는다. 팔로마는 살아야할 이유로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항상 내면에 남아 있을 순간'을 발견하는데 전념한다. 그녀는 아름다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순간을 고대한다. 그녀 자신이 이미 경험한 순간들 속에 증거가 있다. 그런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항상 내면에 있을 순간'이 내 고통에 대한 위안이 되고 장래에 대한 약속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점점 잠들어 가던 나는 바로 위의 구절을 읽는 순간 눈이 번쩍 띄였다. 지금 니가 겪고 있는 삶이 팍팍하고 우울하더라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꺼라고, 왜냐면 이미 과거에서 너는 그런 삶의 기쁨을 느껴보지 않았느냐고 그것이 바로 앞으로 언젠가는 그런 미래가 올거라는 증거가 되리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추상적고 아득한 이 말들이 그만 내 가슴에 팍하고 박히고 만 것이다. 만약 내가 이 구절을 자기계발서나 성인의 잠언집 같은 곳에서 발견했더라면 분명 그냥 흘러 넘겨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를 잃고 고통 속에 쌓인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니나 상코비치"가 말했기 이 말이 내 가슴을 울리고 말았다. 아마도 그녀와 내가 비록 계기는 달랐지만 짙은 안개 속에 쌓인 것 같은 삶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고 싶다는 같은 갈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니나 역시 책의 뒷부분에서 언급하기도 하지만, 역시 책은 읽는 본인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내용과 감정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새삼 절감했다. 

 

한번 이 책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니 그 뒤엔 그저 펼치고 있기만 해도 저절로 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니나가 책을 통해서 얻고자 한 위로와 깨달음을 나 역시 그녀의 책을 통해서 얻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그녀가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역시 자신과 비슷한 누군가를 위해서 이 책을 집필 했을 것일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내볼까하는 충동이 마구 샘솟았더랬다. 좋은 사람과 좋은 책과 따스한 위로를 만나게 된 기쁨을 한명의 독자로써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정도로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못하므로 다행히도(?) 이런 내 생각은 실천되지 못했다. 이럴땐 이런 국제적인 망신이 될지도 모를 일을 벌이지 못할만큼의 게으름쟁이라는게 다행스럽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위로와 메세지를 받았다. 하지만 니나에겐 살짝 미안하게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단 한개만 꼽는다면, 그녀의 어머니가 니나의 언니가 사망한 후, 처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의 장식을 하면서 머리카락이 길고 책을 읽는 천사인형을 천국의 인형들 곁에 올려놓는 모습을 꼽고싶다. 이 장면은 이 책 전체의 내용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없었어도 상관없을 만큼. 그러나 그 인형이 니나의 언니를 상징하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모성이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란 언제, 어느시대에 존재하는 것과 관계없이 그저 너무나 위대하고 사랑스럽고 감사하고 가슴이 매이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부디 니나가 자신이 책으로 얻은 위로와 깨달음으로 그녀의 아픔을 잘 보듬어줘서 이제는 그녀의 어머니가 많이 아프지 않길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내 가슴을 울리고만 이 책에 참으로 안타깝게도 옥의 티가 있었으니,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처음 몇몇 부분이 눈에 걸릴 때는 읽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으므로 그냥 넘어갔으나, 기어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게 만드는 부분이 나오고야 말았다.

 

p142   엘리자베스 매과이어가 쓴 <열린 문>은 19세기의 허구적 인물인 작가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의 가상 전기이다.

p149   역사적 증거에 따르면,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은 쉰세 살에 인플루엔자와 우울증으로 시달리다가 뛰어내렸거나 아니면 떨어져서 죽었다. 하지만 매과이어는 그 캐릭터의 종말을 다른 것으로 구상했다. 그녀는 울슨이 머릿속에 종양이 생겨 살날이 몇 달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것으로 설정했다.
 

p142 문장을 읽으면서 열린 문이란 소설은 엘리자베스 매과이어의 픽션 소설이라고 받아들이고 넘겼것만, p149에선 그 픽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죽음에 역사적인 관련 기록이 있댄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람? 나는 내가 잘못 읽은 줄 알고 저 두 부분을 번갈아 가며 몇번이나 다시 읽어봤지만 분명 저 두 구절은 서로 상충되고 있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서 구글링을 해본 결과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Constance Fenimore Woolson)이란 사람은 실존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책의 번역에 대한 나의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하고 말았다.

 

이 책의 번역가 김병화씨의 책 뒤에 실린 이력을 살펴보니 번역팀에 속해 있더라. 이 책을 그 번역팀에 속한 여러명이 찢어서 번역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앞으로 김병화씨가 번역한 책은 신뢰도를 갖고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전작들이 대부분 인문학인 번역자가 대체 어떻게 저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앞뒤 문맥만 따져봤더라도 이런 오류는 생기지 않았을 것을. 덕분에 저 오류 뒷편의 나머지 부분, 즉 책의 절반정도를 읽는 동안 계속해서 책의 문장들을 의심하고 보게 됐다. 번역이 갸우뚱한 부분이 몇번이나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서 즐겁게 독서를 하고 있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것만 같았다.

 

이 책에서 니나는 어느순간 자신이 언니가 세상을 떠난 시점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그 이전에 과거에서 언니와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들은 돌아보지 않고 오직 언니가 세상을 떠난 그 마지막 부분에만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부분이 있다. 이 구절처럼 번역오류라는 한 부분만 놓고 그 부분에만 집착해서 이 책을 평가하고 싶진 않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이 나에게 준 기쁨과 감동은 그 이상, 그 몇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자 니나가 언니가 세상을 떠나는 부분에 집착하기 보다는 언니와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언니를 자신의 곁에 영원히 묶어 두기로 결심했듯이, 나 역시 그녀처럼 이 책의 좋은 기억만 간직한 채 그 감동과 위로와 메세지를 내 곁에 두고 싶다. 하지만 부디 앞으로 새로 인쇄될 책들은 교정전체를 새로 보고 제대로 수정해줬음 좋겠다. 그래서 내 뒤에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좋은 기억과 경험들만 간직한 채 책장을 덮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나나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세이가 땡길때가 있다. 심정적으로 힘든 소설을 읽고 나서라던가, 딱딱한 인문서적을 읽은 후라던가, 한동안 책을 읽지 않다가 다시 책읽기를 시작할 때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잠시 쉬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때는 나는 으례 에세이를 찾는다. 온다 리쿠의 에세이를 읽고 정신적으로 봉변을 당한 이후, 당분간은 일본작가의 에세이를 읽지 않겠노라 다짐했것만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그 다짐은 우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먹거리 에세이라는 것도 마음에 쏙 들었지만, 표지에 이쁘게 자리잡고 있는 아기자기한 종이공작을 보는 순간 아! 이 책은 꼭 사야해! 라며 적립금까지 톡톡 털어가며 결제를 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책은 표지처럼 아기자기하고 이쁜 만듦새를 자랑한다. 종이 특유의 결이 느껴지는 감성어린 표지도 맘에 들었고, 각 챕터가 시작할때마다 작게 들어가 있는 먹거리 아이콘도 너무 귀엽고 깜찍했다. 무엇보다 이쁜 책을 추구하는 책 치고 책 자체가 튼튼하게 재본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보통 이쁜 책들은 너무 멋을 부리다가 기본적인 책의 만듦새를 놓쳐서 책이 낱장으로 날아다닌다던가 표지가 쉽게 찢기거나 커버의 역활을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까. 기본기를 지켰으되 이쁜 책, 그게 내가 이 책에서 받은 첫 인상이였다.

책의 내용 역시 첫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세이라는 기본기를 잘 지킨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라고나 할까? 에세이라는 것이 본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다 보니 자칫 삐끗해서 글의 중심을 잃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어느순간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으로 뒤바뀌곤 하는데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 요리의 프로들이 딱 신선하고 정직한 재료에 기본적인 간만해서 최상의 맛을 뽑아내듯이, 이 책 역시 군더더기 없는 진솔한 마음과 담백한 추억으로 최상의 맛을 내고 있었다. 덕분에 간만에 머릿속을 깨끗이 비우고 푹신한 쿠션에 몸을 맡긴 채,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머릿속과 마음이 복잡했던 내게 꼭 맞는 선택이였던 셈이다. 하지만 깊은 밤, 배가 출출할때 읽을 때는 꽤 힘들었다. 중간중간 내가 먹어본 음식들이 나올 때는 물론이고,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의 맛까지 요시모토 바나나의 묘사 덕분에 생생하게 상상되서 입안에 침이 고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내가 먹을거리가 나오는 책과 영상물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보게 됐다. 계란말이가 노릇노릇하게 구어지는 영상이라던가, 찌게가 자글자글 끓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흐믓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곤 하는 이런 일련의 현상이 무얼 의미하는 걸까.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에 대해서 음식들을 먹으며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난 그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곰곰히 생각을 해보아도 나 혼자 먹은 음식중에 또렷하게 기억에 남거나 맛있다고 생각되는 음식은 없었다. 혼자 였기에 아쉬웠고 외로웠고 쓸쓸했던 기억만이 있을 뿐, 맛있는 음식은 모두 다 누군가와 함께 했기에 그 음식과 그 음식이 차려져 있던 식탁과 자리가 더욱 특별하고 맛있게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가 보다. 추억이란 것 하나만 하더라도 이렇게나 나 외의 존재와 연결된 기억이 아니던가.

담백한 책읽기를 마치고 본문의 마지막 책장을 넘겨보니 크로켓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친언니가 직접 그린 것이라는데 귀엽고 아기자기한 스케치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나 내 마음에 쏙 들었냐면 이 책에 말한 주요 음식들도 이렇게 일러스트로 레시피를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을 정도.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욕심이지만. 덕분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요시모토 자매와 친구들의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었서 좋았다. 앞으로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가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비록 아직까진 그녀의 소설과 에세이 사이의 간극을 이겨내긴 힘들지만, 언젠가는 그녀의 소설까지도 이 에세이처럼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점 숲의 아카리 10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이야기! 과연 아키라와 모리조의 감정들은 어디로 흘러갈런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 - 늘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꿈꿨던 17년 파리지앵의 삶의 풍경
이화열 지음 / 에디터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이화열씨를 처음 알게 된건 '마망 너무 사양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 책속에 담긴 그녀의 사랑스러운 아이들 이야기와 점점이 이어지는 프랑스식 삶의 모습에 나는 푹 빠져버렸다. 덕분에 나는 책을 뚝딱 해치우자마자 그녀의 다른 저서들까지 찾아보게 되었고, 안타깝게도 이전에 출판 되었던 책은 이미 절판된 후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담백하고 잔잔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사람들이 분명 나 말고 또 있을 테니, 언젠가는 그녀의 책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다시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이 책, 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다.
 
이화열씨는 한국에서 29년을 살다가 미국을 거쳐 프랑스로 날아가 여행자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책에선 그녀가 경험한 파리와 한국의 특징들이 서로 교차적인 시각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나는 그것이 그녀의 이야기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비야씨 책을 읽다가 대략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중국에 일주일 있으면 책을 한권 쓸 수 있고, 한달이 되면 논문을 쓸 수 있다. 하지만 1년 이상 체류하면 아무것도 쓸수 없다. 왜냐면 중국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비단 이 구절이 중국에 한해서만 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나라에나 짧은 시간 체류하며 한정된 부분만 보고 경험하게 된다면, 표면적인 차이점이 더 두드러지게 보이기 때문에 새롭고 신기한 부분에 대해서 길고 장황하게 나열할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짧은 여행을 통해서 경험해 봤다. 하지만 그에 반해 한 나라에서 오랫동안 체류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표면적인 면보다는 그 나라 특유의 사고방식과 사회적 통념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내적인 면과 부딪히게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런 경험들이 하나둘씩 모아져야 비로소 그 나라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비야씨도 저 구절을 책에 인용한 것일테고. 그래서 이화열씨의 이야기가 좋았다. 이렇게 겉모습만의 프랑스가 아닌, 그 속살에 다가가 있기에 말이다.
 
전작이 아이들과 가정에 대한 것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는, 제목처럼 이화열씨 주변에 사는 파리지앵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그들의 모습이 파리지앵 전체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을 통해서 엿보게된 파리지앵들의 모습은 우리의 사회적 통념과 비교해보면 많이 어긋나 있었다. 결혼제도에 얽매이지 않으며, 미혼모도 오롯한 가정의 형태로 인정될 뿐 아니라, 개인적인 시간들에 방해가 될까봐 수입이 많은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수십년된 소파에 앉아 16인치 TV를 볼 지언정 바캉스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삶의 모습들. 그들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다 여유롭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해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프랑스 사회내에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을거다. 당장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유럽의 경제위기라던지 인종간의 갈등문제 같은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니까. 이 책에서도 불친절하고 믿을 수 없는 서비스라던지, 다락같이 올라버린 부동산 시세같은 문제들이 은연중에 비춰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사회적인 문제들 속에서도 그들은 천천히 여유를 갖고 뚜렷한 주관 속에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삶을 살고 있고, 우리들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분명 우리 사회내의 문제들도 한몫 하겠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폄하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스스로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달린 것이라는 말이 괜히 진리가 아니듯이. 
 
간만에 다시 만난 이화열씨의 책은 전작만큼 담백하고 향기로웠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파리의 풍경과 파리지앵들의 모습도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 게다가 이 책이 이 내가 예전에 절판되었기에 읽지 못했던 그 책의 수정본이라는 것도 즐거웠다. 역시 만날 사람과, 책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가보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마망 너무 사양해를 읽을 때는 주인공인 꼬맹이들의 이야기보다 조연이였던 파리지앵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었는데, 막상 이번 책을 덮을 즈음엔 이 책에서 조연이 된 이화열씨의 아이들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는 거다. 이건 뭐, 놀부심보도 아니고, 너무 욕심많은 내 탓이려나. 어쩌면 다음에 만나게 될 이화열씨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서인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파리를 꿈꾸게 만든 그녀의 이야기가 다음엔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의 원제는 "Think of a Number", 원제도 나쁘진 않지만, 번역본의 제목이 훨씬 더 이 책의 분위기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보다 더 기발하고 극적인 제목이되, 이 책의 내용과 분위기를 그대로 실어낸것은 물론이요, 깔끔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표지디자인까지 어우러져 이 책의 매력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원작보다 나은 번역본이란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싶다. 덕분에 나는 순전히 이 책의 이런 맛깔나는 만듦새에 흥미가 동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데이브 거니라는 40대 후반의 중년 남성이다. 그는 은퇴한 전직형사로 경찰관계자들 쪽에선 이름만 대도 그를 알아볼 정도의 실력자였으나 지금은 뉴욕 근교의 한가한 전원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대학시절 동창이 갑작스레 연락을 취해와, 누군가에게 기묘한 협박을 받았다고 도움을 요청한다. 거니는 아내와의 갈등 때문에 사건의 테두리에만 머무르려 하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동창이 범인에게 살해당하게 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건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게 되고 이야기는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수수께끼는 책의 표지에도 적혀 있듯이, 범인이 어떻게 피해자들의 생각한 숫자들을 알아맞췄는가다. 이것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내 머릿속에서 계속 제기 된 의문이기도 했다. 이 수수께끼의 트릭 중 하나는 너무 뻔해서 곧바로 눈치챘지만 첫번째 트릭은 도저히 알아차릴 수가 없어서, 궁금증에 목이 말라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뭘까 어떤 트릭을 썼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 트릭이 두번째 트릭보다 더 간단하고 사실 트릭이라고 할만한 것도 아니였다는걸 알게 된 후엔 김이 푹 새버렸다. 조금씩 조금씩 긴장도가 쌓여서 풍선이 빵 터져버리길 바랬는데 바람이 저절로 새어나가서 쪼그라들어버린 기분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그 쪼그라든 풍선이라도 아직까지 썩 나쁘진 않았기에, 나는 다시 열심히 책을 읽으며 빵 터지는 긴장감과 재미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트릭이 시시하게 끝났어도 대망의 범인 검거 에피소드가 남아 있었으니까. 대체 범인의 목적은 뭘까, 동기는 무엇을까, 서서히 기대감에 다시 풍선이 터지려고 할 때쯤, 다시 또 푸슈슈슉 하고 바람이 빠져버렸다. 이번엔 시시해서가 아니였다. 지루해서였다. 내가 CSI같은 범죄수사물을 너무 많이 봐서였을까. 아니면 작가가 너무 전형적인 설정을 사용했기 때문일까. 아, 정말 막판에 범인하고 대화하고 설득하며 시간을 번다는 설정은 너무 캐캐묵은 클리셰 덩어리였다. 게다가 그 대화들 역시 너무나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을 통해서 나왔던 거라 별감흥도 없고 손에 땀을 쥐는 긴박감도 없이 하품만 나왔다.    
 
이 책을 읽으며 패키지 게임이 온라인 게임에 밀리게 되면서 어느 패키지 관련 개발자가 했다는 말이 기억났다. 사람들은 패키지 게임이 갖는 엔딩이라는 한계 때문에 온라인 게임에 밀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패키지 게임의 엔딩을 보기위해 노력하고 즐겼던 시간을 잊는다고. 나는 분명 이 책을 즐겼다. 비록 초반부의 산만하고 지루한 부분을 견뎌내지 못하고 책을 덮을 뻔 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 나온 내용의 상당부분을 즐기면서 읽은 것 사실이다. 하지만 책의 엔딩과 그 엔딩을 보기 위한 가장 큰 비밀이 어이없게 해소되고 그와 동시에 긴장감도 사라져버리고 나니, 실망감에 이제까지 읽고 즐겼던 시간들이 사라지는 기분이였다. 그러니 어떻게 책을 재밌게 읽었던 그 과정에만이라도 의미를 둘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과정조차도 마냥 즐겁게 즐기기만 한 것이 아니였다면? 이 책 덕분에 결말 못지 않게 이야기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앞서 언급했던 장면 못지 않게 전형적이다. 완벽하지만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에게 대놓고 딴지를 걸어대는 악역보다 못한 아군들, 이렇게 세상풍파에 시달리는 주인공에게 쉴곳을 마련해주고, 값진 충고를 해주는 전형적인 모습의 아내 등등. 전형적인 헐리웃 영웅물의 캐릭터들이다. 너무 전형적이라서 작위적이라고 느껴질만큼. 아무래도 작가의 나이와 그간의 경험들로 인해서 이런 고루한 설정들이 만들어진 듯 싶지만, 솔직히 지루하고 불편했다. 이 설정들이 책의 삼분에 일 이상을 낭비할만큼 탁월해보이지도 흥미롭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런 부분들을 잘라버리고 이야기를 압축하는 하여 이 책에 속도감을 주는 편이 훨씬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막판에 전형적인 클리셰를 차용했어도 너그러이 수용했을텐데. 그랬음 내 기대감의 풍선도 그렇게 바람이 빠지진 않았을텐데. 그랬다면 책의 엔딩을 위한 과정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을텐데.
 
나는 아마 이 책이 영화화 된다고 해도 썩 놀라진 않을 것 같다. 딱 헐리웃 취향의 스토리와 캐릭터들이 등장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화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 책을 읽는 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마도 후속작이 이 책보다 훨씬 더 낫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오르내리지 않는 이상, 없을 것 같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계속 읽어볼만큼 매력을 느끼진 못했으므로. 그러니 이 시리즈와는 이렇게 첫만남과 함께 안녕을 고하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