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 - 늘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꿈꿨던 17년 파리지앵의 삶의 풍경
이화열 지음 / 에디터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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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화열씨를 처음 알게 된건 '마망 너무 사양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 책속에 담긴 그녀의 사랑스러운 아이들 이야기와 점점이 이어지는 프랑스식 삶의 모습에 나는 푹 빠져버렸다. 덕분에 나는 책을 뚝딱 해치우자마자 그녀의 다른 저서들까지 찾아보게 되었고, 안타깝게도 이전에 출판 되었던 책은 이미 절판된 후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담백하고 잔잔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사람들이 분명 나 말고 또 있을 테니, 언젠가는 그녀의 책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다시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이 책, 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다.
 
이화열씨는 한국에서 29년을 살다가 미국을 거쳐 프랑스로 날아가 여행자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책에선 그녀가 경험한 파리와 한국의 특징들이 서로 교차적인 시각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나는 그것이 그녀의 이야기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비야씨 책을 읽다가 대략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중국에 일주일 있으면 책을 한권 쓸 수 있고, 한달이 되면 논문을 쓸 수 있다. 하지만 1년 이상 체류하면 아무것도 쓸수 없다. 왜냐면 중국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비단 이 구절이 중국에 한해서만 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나라에나 짧은 시간 체류하며 한정된 부분만 보고 경험하게 된다면, 표면적인 차이점이 더 두드러지게 보이기 때문에 새롭고 신기한 부분에 대해서 길고 장황하게 나열할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짧은 여행을 통해서 경험해 봤다. 하지만 그에 반해 한 나라에서 오랫동안 체류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표면적인 면보다는 그 나라 특유의 사고방식과 사회적 통념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내적인 면과 부딪히게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런 경험들이 하나둘씩 모아져야 비로소 그 나라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비야씨도 저 구절을 책에 인용한 것일테고. 그래서 이화열씨의 이야기가 좋았다. 이렇게 겉모습만의 프랑스가 아닌, 그 속살에 다가가 있기에 말이다.
 
전작이 아이들과 가정에 대한 것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는, 제목처럼 이화열씨 주변에 사는 파리지앵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그들의 모습이 파리지앵 전체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을 통해서 엿보게된 파리지앵들의 모습은 우리의 사회적 통념과 비교해보면 많이 어긋나 있었다. 결혼제도에 얽매이지 않으며, 미혼모도 오롯한 가정의 형태로 인정될 뿐 아니라, 개인적인 시간들에 방해가 될까봐 수입이 많은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수십년된 소파에 앉아 16인치 TV를 볼 지언정 바캉스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삶의 모습들. 그들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다 여유롭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해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프랑스 사회내에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을거다. 당장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유럽의 경제위기라던지 인종간의 갈등문제 같은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니까. 이 책에서도 불친절하고 믿을 수 없는 서비스라던지, 다락같이 올라버린 부동산 시세같은 문제들이 은연중에 비춰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사회적인 문제들 속에서도 그들은 천천히 여유를 갖고 뚜렷한 주관 속에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삶을 살고 있고, 우리들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분명 우리 사회내의 문제들도 한몫 하겠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폄하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스스로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달린 것이라는 말이 괜히 진리가 아니듯이. 
 
간만에 다시 만난 이화열씨의 책은 전작만큼 담백하고 향기로웠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파리의 풍경과 파리지앵들의 모습도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 게다가 이 책이 이 내가 예전에 절판되었기에 읽지 못했던 그 책의 수정본이라는 것도 즐거웠다. 역시 만날 사람과, 책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가보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마망 너무 사양해를 읽을 때는 주인공인 꼬맹이들의 이야기보다 조연이였던 파리지앵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었는데, 막상 이번 책을 덮을 즈음엔 이 책에서 조연이 된 이화열씨의 아이들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는 거다. 이건 뭐, 놀부심보도 아니고, 너무 욕심많은 내 탓이려나. 어쩌면 다음에 만나게 될 이화열씨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서인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파리를 꿈꾸게 만든 그녀의 이야기가 다음엔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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