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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의 산책자 ㅣ 나와 잘 지내는 시간 1
양철주 지음 / 구름의시간 / 2022년 7월
평점 :
때로 삶은 꿈을 찾는 시간이 아닌
꿀 한 방울을 찾는 시간일 때가 많다
종이 위의 산책자
들어서며
Ⅰ 나의 고백
Ⅱ 사소해도 하찮지 않은
Ⅲ 그때의 열정과 간절함이
나가며
목차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에 책을 받았어요. 직접 적은 카드와 함께 도착한 『종이 위의 산책자』를 펼쳐 보았습니다. '필사는 무엇을 창조하려 함이 아닌 작품의 곱씹음 혹은 작가에 대한 사랑 고백'이라는 작가의 말에 십분 동의합니다. 종이 위의 산책자, 라는 제목부터가 제 시선을 사로잡았어요.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거니는 종이 위의 산책.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책을 읽다가 내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이 나타나면 잊어버릴새라 그 부분을 따라 적어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필사라면 제 필사의 역사도 그리 짧지만은 않습니다. 외려 언제부터 필사를 했느냐고 물으면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지요. 작가처럼 책 전체를 통으로 필사하진 않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유년을 지나 자칭 타칭 문학소녀였던 중학생 무렵에는 이미 명언이나 문장을 적은 노트가 여러 권 있었어요. 엽서에 좋아하는 시를 적어 코팅을 하고 고리로 연결하여 벽에 걸어두기도 하고 선물을 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최근 일년 동안에는 필사방의 일원으로 그때그때마다 다른 책들을 필사했어요. 얼마 전에 300일 필사를 마치고 9월 한 달은 안식월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필사의 즐거움과 기쁨, 필사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며 7년간 13여 개의 책들을 필사를 해온 작가의 글이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나의 손과 눈과 시간을 통과해 간 문장들이 그저 의미 없고 허무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는 작가의 글에 저 역시 같은 바람을 갖습니다.
필사를 통한 위로와 사랑, 필사적 사랑법이 담겨 있는 『종이 위의 산책자』에는 필사를 하며 느낀 작가의 시적인 산문 스물여덟 편이 담겨 있습니다.
소중한 문장을
마음에 품은 사람은,
그러므로
두 개의 심장으로 산다.
종이 위의 산책자 중에서
그렇다면 저도 두 개의 심장이 있으려나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책을 읽어도 영화를 보아도 그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어떨 땐 읽었던 책인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에서야 아, 이 책 읽었던 거네 하고 알아차리는 날도 있어요. 책을 읽기만 하고 기록하지 않은데서 오는 폐혜랄까요.
필사를 하면 책의 내용을 더 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게 되리라는 믿음. 그것이 필사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종이 위의 산책자_괴로운 날에는 절실한 책을 중에서_P.79
하지만 어떤 책의 어떤 문장들은 그렇게 스쳐지나가기에 너무 아깝습니다.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스미는 그 문장은 어떻게 해서든 기억하고 싶어져요. 그럴 땐 여지 없이 종이를 펼쳐 그 문장을 따라 적습니다. 그저 눈으로 읽을 때와 소리를 내서 읽을 때, 그리고 그 문장을 손으로 적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그렇게 눈으로 읽고 손으로 적어내려가다 보면 그 멋진 문장이 내 안에 조금씩 스며드는 것을 느낍니다. 마치 내가 그 문장을 지어낸 것 같은 뿌듯함 마저 들때가 있지요.
이런 기분, 이런 마음을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지요. 그리고 그런 기분을 고스란히 활자에 담아 낸 것을 읽고 있자니 낯모르는 작가가 어쩐지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어요. 아마 필사를 해왔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이들이라면 읽는 내내 많은 부분 공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첫번 째 산문에는 작가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분명 작가의 이야기인데 자꾸 저의 어린 시절이 겹쳐지는 건, 저희 할머니도 이야기꾼이셨기 때문일 거예요. 흥 많고, 이야기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는 우리 할머니가 자꾸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찡했습니다.
작가는 연필로 필사를 해오고 있다고 해요. 필사한 노트를 태우면 흑연 냄새가 가득할 거라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아요. 마음에 드는 연필 한 자루와 종이가 있다면 필사의 준비물로는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저는 연필로 필사를 하지 않지만, 마음에 드는 도구로 좋아하는 문장을 적어내릴 때의 그 기쁨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요.
필사를 하고, 문장을 적는데 집중하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하루가 저물고 어스름이 찾아오는 무렵에 이 문장들을 따라 적었습니다. 너무도 완벽한 시간, 저에게도 그 시간들이 종종 찾아오곤 합니다.
필사를 통해 '입소문 내는 한 사람이 되어' 본다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에요. 내 필사를 보고, 서평을 읽고 누군가 그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참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나만의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도 전하는 기쁨이 될테니까요.
시간이 지나갔다고 해서, 어느 한 시절을 벗어났다고 해서,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때의 간절함과 열정이 부정되지 않기를. 그 시절의 간절함 속에서 우리는 가장 뜨거웠었다. 지금은 그때와 너무 다른 열정 혹은 빙하기를 통과하는 중이라 해도.
종이 위의 산책자_지금은 그때와 다르더라도 중에서_P.143
지나놓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처럼 느껴지지만, 그 당시에는 어느 누구보다 뜨거웠고 어느 무엇보다 소중했던 일이 분명 있을 거예요. 이만큼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요. 하지만 '빙하기를 통과하는 중이라 해도' 언젠가 또다시 간절함과 열정이 되살아날지도 몰라요. 그러니 부정하지 않기로 해요. 사랑도 열정도 간절함으로 충만했던 그 시간들을.
'나만을 위해 만들어'지거나 '나만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고 해도 내 마음에 와서 기쁨을 주는 그 문장을 발견한 사람은 나일테니까, 그 발견을 통해 행복을 얻는 동안 필사의 견고한 성은 부서지지 않는 나만의 세계가 되겠지요. 내가 구축해 나가는 나만의 세계는 필사를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임이 분명합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엎친데 덮친 격으로 헤쳐 나가야 할일이 산처럼 내 앞에 놓여 있을 때, 필사를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필사를 하는 고요한 시간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고 곱씹어보며, 내 앞에 놓인 문제를 직시할 수는 있겠지요.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지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내 안의 힘을 길러줄 거라고 저 또한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글씨를 쓸 수 있는 그 순간까지 저 역시 필사를 계속해 나갈테지만, 언젠가 저의 문장도 이렇게 활자로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또 한번 생겨나는 시간이었어요. 종이 위를 마음껏 유영하다 보니 어느새 책의 마지막 장에 다다랐습니다. 때로는 깊이 침묵하고, 때로는 책에서 느낀 것들을 함께 조잘거릴 수 있는 든든한 동행자가 이 세상 곳곳에 있다는 생각에 든든해집니다. 필사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함께 읽고 싶은 책 『종이 위의 산책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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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