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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라이프 - 성장의 한계를 넘어선 사회
바르바라 무라카 지음, 이명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올해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3%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한국은행을 포함한 거의 모든 국내외 기관들에서 나오고
있다.
이 수치는 물가의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거의 제자리 걸음이거나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높은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마치 월급생활자가 받는 급여가 일정 비율 이상 오르지 않는다면 실질 임금이 감소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도 일본의 뒤를 이어 장기 저성장의 길로 이미 들어섰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일본 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들도 저성장의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에 맞춰 국가운영을 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와 같이 저성장을 인정하지 않고 과거와 같은 높은 성장률만을 바라보면서 국가를
운영한다면, 또 그런 사람들을 선택해서 국가운영을 맡긴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공정하고 연대적이며 해방을 추구하는 탈성장 사회의 길은 교정을 목표로 하는 소소한 개입을 훨씬
넘어서는 사회의 근본적 변혁에 있다.” - P. 58.
산업혁명 이후 기계의 발달과 교육의 보편화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해 높은 경제성장을
이끌었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런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뒤에는 국가권력과 자본가들이 풍요라는 화려한 커튼 뒤에 숨겨놓은
많은 문제점들 € 자연파괴와 환경오염, 부와 자본의 편중, 도시와 지방의 격차 심화, 무제한 경쟁 등등 - 이 남아 있었고, 이런 문제점들이 이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삶에 더 큰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과연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는 대로 높은 경제 성장만이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오늘날 복지 증대를 위한 수단이었던 성장은 정치적 조처 본연의 내용이자 목적이 되어
버렸다. 그 목적은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있다.” - P. 11.
<굿 라이프 € 성장의 한계를 넘어선 사회>는 성장에 내몰려 생존을 위해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는 성장주의 경제의 문제점들과 이를 어떻게
하면 극복해갈 수 있을지를, 그리고 지금까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들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1972년 로마 클럽 보고서에서 성장의 한계를 전망하였다고 한다.
즉, 성장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가져다줄 유일한 길이 아님을 알고, 새로운 대안경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다양한 인물과 단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성장을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찾고,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해왔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아직도 성장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이 한번쯤 읽고 생각해봤으면 싶은
책이다.
물론 이들을 움직이는 거대 자본가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에서는 어렵겠지만.
“서구 국가들이 거쳐 온 기술과 산업 생산에 기반을 둔 발전이 현대 이전의 사회를 가난의 위기에서
구해 내고 해방 과정을 뒷받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발전은 동시에 그렇게 얻은 다양한 형태의 자유를 새로운 형태의 소외로 바꾸어
놓았다. 이는 갈수록 새로워지는 욕구와 의존성이 강제적으로 생산된 결과다. 새로운 욕구와 의존성은 점증하는 불평등과 자치의 상실로 이어지고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회적 연대의
네트워크를 약화한다.” - P. 74~75.
“탈성장의 유토피아는 생계 노동이 상대적으로 더 적은 역할을 하는 사회를
예고한다. 노동시간 단축이 급진적으로 실현되고 사회에 본질적인 활동이 달리 배분되면, 노동생산성 증가와 성장 사이의 고전적 관계는 이제 성립 불가능해질 것이다.” - P. 120.
진보와 보수,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누가 진보고 누가 보수든 상관없이 화려한 언변 뒤에서 자신만의 또는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보다 많은 이들의 행복을 원하고 실천하느냐로 옳고 그름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권력자들이 보다 높은 경제성장이 모든 국민의 행복을 늘려줄 것이라는 말을
통해, 국민들을 위해서라고 하면서 실제는 소수 자본가들의, 1%의 사람들만을 위한 정책과 법을 운영한다면 결국은 99%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는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은 선택한 것이 바로 우리의 머리와 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살아갈
것이다.
“여러 해에 걸친 성장 위기와 광범위한 사유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채무 증가, 긴축정책을 통한 대응은 민주주의 국가들을 약화했으며 경제를 주도하는 글로벌 권력 주체들에게
국가권력의 많은 부분을 내주는 결과를 낳았다. 과거에는 성장이 민주적인 복지국가를 안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민주국가의 핵심부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어 버렸다.” - P. 143.
좋은 삶, 굿 라이프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있고, 내 가족이 있고, 내 이웃이 함께 하는 삶이, 모두가 함께 누리고 공유하는 사회가 정말 우리가 희망하는 사회, 국가가 아니겠는가 싶다.
지금처럼 소수의 다국적 또는 재벌기업이 세상의 모든 쓸 것, 먹을 것, 입을 것을 주도하는, 즉 자본으로 자원과 노동력을 갈취하여 소수만이 누리는 세상이 아닌, 각각의 지역과 나라에서 자신들이 각자 만들고 수확한 것들을 나누고, 남으면 다른 지역에도 나누어줄 수 있는 지역공동체가 발달한 사회가 정말 좋은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좋은 삶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야 가능하다. 로빈슨 크루소 유의 안갖 판타지가 퍼져 있지만, 인간답고 의미있고 소외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좋은 삶의 이상은 오직 사회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 P. 5.
“모든 사람의 존엄한 삶을 가능케 하는 기본권 보장, 물질적 자원의 분배, 불평등의 감소는 탈성장 사회의 받침대다.” - P. 1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