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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융합 - 인문학은 어떻게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만나게 했을까
김경집 지음 / 더숲 / 2015년 3월
평점 :
창조경제를 외친다. 혁신을 말한다. 융합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합리적 질문을 말도 안되는 흑백논리로 막고,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으로 답변을 회피하며, 자신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통제하려 한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모든 합리적 의심은 종북이라는 색깔로 막아버리고, 다양한 생각과 행동들은 법과 권력을 통해 극단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창조와 혁신을 외친다.
과연 통제 사회에서 창조와 혁신의 산물이 나올 수 있을까?
미국이라는 나라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왜, 어떤 이유에서 미국에서 창조적인 기업들이 많이 나오는 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자수성가를 이룬 기업가 비율이 월등히 떨어지는 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21세기 우리의 미래에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면 상상력과 창의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속도와 효율만 강조되던 지난 세기 후반의 ‘패스트 무빙’이라는 틀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유로운 개인의 가치가 압살된 게
사실이다. 물질적 풍요가 그러한 비민주성과 비인격성을 덮어버린 시기였다. 그러나 더 이상 그 틀은 유효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이미 그것을 뛰어넘어 창조와 융합의
시대, 즉 ‘퍼스트 무빙’의 틀로 들어섰다. 그런데도 여전히 과거의 틀 속에 갇혀 있다.” - P. 294.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이후 인문학에 대한 엄청난 바람이 일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도 인문학이 대세다. 하지만 조금만 틀어서 보면 우리의 인문학 열풍이 참 어이없는 것일 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인문학을 찾고 공부하는 본질, 즉 다양한 학문의 융합을 통해 사람과 사회에 대한 통찰과 소통을 얻을 수 있다는 본질을 잊고
단순히 외적인 지식과 교양을 쌓는 과정으로만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 지식을 가르치는 학원이나 교육 프로그램이 생겨난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상상력이 강조되는 시기다. 창조와 융합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상상하고 창조하며 융합해야 하는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까닭에 여전히 구호와
선언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하는 핵심은 빠진 채 그저 여기저기 슬로건만 외치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다. - P. 5.
인문정신을 갖추는 것이 그저 고전 강독이나 품위있는 교양의 습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진짜 인문정신을 갖추는 것이다. - P. 339.
<생각의 융합 – 인문학은 어떻게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만나게 했을까>는 인문학에서 단순히 다양한 지식에 대한 접근이 아닌 지식들을 관통하는 사회와 사람에 관한 통찰과
융합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저자의 오랜 노력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시대와 장소, 국가와 인종, 학문의 영역을 뛰어넘는 인문학의 융합과 이를 바탕으로 한 우리가 살고있는 부조리한 현실의 이해를
보여준다.
저자는 인문학이 지금처럼 - 특히 교육현장에서 - 단순한 지식의 확장으로만 가르치고 받아들여져서는 안되며,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작품들의 뒤에 감춰져 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시대적 배경과 환경, 주변 인물들에 대한 자신만의 계속되는 질문과 탐구를 통해서 인문학을 이해해야만 하며 이렇게 할 때
진정한 자신의, 자신만의 인문학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자신이 깨달은 것만큼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참 지식인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텍스트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텍스트로 엮어보고 해석하는 것이 창조와 융합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혁명적 변화가 우리의 미래를 살려낸다.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심각하게 자문해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그 역할을 바로 인문학이 해야 한다. 그게 시대적 당위다. 그 시작이 바로 융합이다. 나는 그런 작업을 위해 이 책을 구상했다.” - P. 9.
“정치는 우리 삶의 중요한 방식이며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주요한
요소다. 그런데도 그것을 거대 담론으로만 생각하거나 단지 선거때 투표하는 행위만으로 참정권을 행사했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정치는 정치인에게만 맡겨서는 안된다. 그들이 올바른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감시하며 지원할 때 비로소 제대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되어야 비로소 인간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 - P. 166.
“어떤 결과물의 성과에만 눈길을 주지 말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을 볼 수 있어야 지금 내가 살아가면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 것인지 성찰할 수 있는
것이다.” - P. 454.
“인문학이란 ‘내가 묻는 것’에서 출발해서 ‘물었던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저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얻어 교양을 쌓고 고상해지는 게 전부가 아니다. 가뜩이나 우리는 배운 것, 쓰인 것만 따르는 데 익숙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하다. 그건 ‘나의 것’이 아니다.... 합리적 의심은 포기하거나 체념해면 안된다.” - P. 470.
“끝없이 묻고 의심하고 따져보라. 기존의 지식과 정보는 타인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여러분이 묻고 따져서 찾아내고 캐낸 것들은
여러분의 것이 된다. 그 출발은 물음에서 시작된다. 물음은 누가 대신하거나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러분이 묻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이 전적으로 주인이다! 그게 바로 인문학의 기본 정신이고 태도다.” - P. 483.
인문학에는 모든 학문이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순전히 과학적인 영역의 학문이라고 생가할 수도
있지만,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는 인문학의 영역에 들어갈 것이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기에.
단순 지식만의 인문학이 아닌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도록 인문학이 인문학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들 스스로가 노력할 때 우리의 미래가 밝지 않겠는가 싶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고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하면 머지않아 그 값을 치러야 하는 때가 온다. 우리가 세상을 올바로 바라봐야 하고, 세계화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편협한 시선으로 해석된 지식과 정보에만 의존하거나 아예 외면하면 스스로의 불행을
자초할 수 밖에 없다.” - P. 338.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당당함이 있어야 삶이 비굴하지 않다. 그런 삶이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삶으로 이끈다.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삶이 우리의 미래를 가치 있게 할 뿐 아니라 그런 창조와 융합이 미래의
실용을 낳는다. 그러니 그게 미래의 풍요로 가는 지름길이다.” - P. 411.
“사람의 가치를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인문학이 단순히 달달한 교양이나 품격있는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러한 미래 가치를 새롭게 창출할 매우 중요한 모멘텀 메이커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문학은 인간의 삶과 앎을 다양한 방식으로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오늘날 인문학의 발흥이 일시적인 붐에 그쳐서는 안된다. 인문학은 바로 미래 발전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무한한 가치를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마음껏 융합되는 창조의 프레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바탕이 인문학이고, 인문학의 근간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지금 우리의 인문학은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것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 P. 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