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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오랫만에 소설을 읽었다. 최근에 읽은 소설이 뭐더라... 음, 역시 기억에 없다. 그럼,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언제 읽었더라.. 분명 비가 추적추적 오는 초가을, 예술의 전당 미술관람을 기다리면서 읽었었던거 같은데... 그것이 몇년전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소설에 투박하고 촌스럽다는 표현을 할 수 있다면, 박민규의 소설이 꼭 그렇다.(물론 이건 순전히 내 주관적인 관점이다..^^). 그의 소설은 그가 의도하는 말, 그의 가치관, 그가 지향하는 바 이런것들이 고스란히 소설 표면에 묻어난다고나 할까. 절대 헷갈릴 일이 없다. 그런면에서 그의 소설은 투박하고, 의뭉스럽지 않으며, 단순하고... 그래서 약간 촌스러운 느낌이다.(절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고백하건데, 난 그의 그런 촌스러움이 좋다. 왜냐고? 나는 그가 주장하는 삶의 철학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 모두를 전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던 그것에 "와와" 하지 말고, "예예" 하지말고 세상을 살아가라는 그의 조언은 새겨 들을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남보다 빨리 승진하고, 남보다 더 큰집에 살고, 남보다 더 큰 자동차를 몰고, 남보다 더 많은 지식을 쓸어담고, 남보다 더 많이.. 무엇무엇을 하는 것이 결코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슴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그의 목소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질이 삶의 전부인 양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이 혼란스러운 자본주의 사회에 그래도 사랑과 희망과, 꿈을 이야기 해서 좋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촌스럽지만, 너무 따뜻하고, 아름답다.
이 소설은 아주 못생긴 여자와, 화자인 주인공과의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소설의 전부는 아니다.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의 허상과 폐단, 그리고 그 자본주의에 매몰되어 가는 인간의 속물근성을 파헤치는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듯 싶다.
아~ 그러나, 개인적으로 소설적 재미와 완성도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훨씬 낫지 않나 싶다. 이 소설은 그러니까... 너무 소설적이다. 지독히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나라는 설정부터가... 소설을 읽는내내 이건 정말 소설이구나 불편했다. 이런것이 바로 저자의 의도였다면 할 말 없지만서도...
흠, 그렇다면 나도 이미 자본주의가 내세운 미추의 개념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영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