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래빗 전집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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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래빗은 누구에게나 아주 친숙한 이름일 거다. 아니, 이름은 알지 못해도 토끼 캐릭터라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을 테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유아용 식판과 양치용 물컵에 그려진 피터 래빗 가족을 먼저 접했기에 이미 친숙하니까. 하지만, 파란 옷을 입은 토끼 녀석이 친숙한 것과는 별개로 책을 제대로 다 읽은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피터 래빗 전집』은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정식 출판된 23편, 미출간 4편까지 모두 총 27편인 꽤 많은 편수의 시리즈물이라서 이걸 다 챙겨서 읽기란 쉽지 않다. 낱권으로 파는 어린이용 전집 시리즈도 있지만, 다 큰 성인이 저런 전집을 구하거나 사서 읽기는 힘드니까. 

그 때문에 이번 민음사 『피터 래빗 전집』은 완독하기에 절호의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유아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이야기.

나는 『피터 래빗 전집』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피터 래빗 이야기의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영국 런던 켄싱턴에서 방적공장을 소유한 상류층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났으며, 동물을 사랑하는 수줍음 많은 문학소녀였다. (중략) '피터'를 데리고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던 중에 가정교사의 어린 아들 노엘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는 그 소년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동화가 피터 래빗 이야기(1902)다.

(715p, 작가에 대하여 中)


피터는 베아트릭스 포터가 키우던 토끼의 이름인데 그녀의 이야기 속 캐릭터들은 주로 그녀가 키우거나 주변 이웃들이 키우던 동물들을 모델로 삼았다. 그녀가 얼마만큼 동물에 애정을 담아 글을 썼는지 어림짐작 가능한 부분이다. 

그런데 1편인 피터 래빗 이야기에는 초반부터 충격적인 내용이 쓰여 있다.


어느 날 아침 래빗 부인이 말하기를, 

"얘들아, 들판에 나가거나 길을 따라가는 건 좋지만 맥그리거 씨 텃밭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네 아버지는 멋모르고 거기 들어갔다가 맥그리거 부인의 파이가 되었단다. 이제 나가 놀아라, 말썽 부리지 말고. 엄마는 외출할 거야."

(9~10p, 피터 래빗 이야기 中)


말썽꾸러기 피터 래빗은 아마도 아버지의 성향을 쏙 빼닮은 것 같다. 파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맥그리거 씨의 텃밭에 침입해 돌아다니다가 잡힐뻔하고 죽을 위기를 겨우 넘긴 후 집에 돌아와 진이 빠진 상태로 아파서 뻗어버린다.


이렇듯 어찌 보면 동심에 상처를 줄지도 모를 잔혹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세계관을 알고 나면 이해가 간다. 

피터 래빗 시리즈 속에서 동물은 사람처럼 옷을 입고 말도 하며 사회생활도 한다. 동물의 의인화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인간과 동등한 관계는 아닌 것이 서로 잡아먹고 인간에게는 일방적으로 잡아먹힌다.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 세계다.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사람이 동물을 잡아먹고 속이지만 동물은 사람에게 그러지 못한다는 거다. 또한, 동물은 동물끼리 서로 속이고 싸우고 잡아먹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고민해볼 만한 부분이다. 그래도 각 시리즈의 주인공 격인 동물 캐릭터들은 꾐과 계략에 빠져 잡아먹힐 듯하면서도 결국은 위기에서 벗어나는 내용 전개여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화자는 저자인 베아트릭스 포터. 즉, 미스 포터 본인이다. 

읽기 시작할 때에는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아챌 수 있었다. 어떤 편에서 미스 포터가 직접 등장하는지는 독자들이 각자 직접 읽으면서 찾아보는 묘미를 느꼈으면 한다.


동화책 치곤 번역 말투가 다소 딱딱하다고 생각했는데 전 연령대를 커버하기엔 오히려 경어체보다 이편이 나을지도.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고픈 부모님들은 경어체 말투로 바꿔서 읽어주면 되겠다. 보다시피 이야기의 내용상으로도 아이 혼자서 읽게 하기보단 같이 대화하면서 읽어주는 편이 이해도나 정서상 맞는 선택일 것이다. (어떤 아이는 래빗네 아버지 파이에서부터 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므로.)


개인적으로 삽화는 미스 모펫 이야기나 톰 키튼 이야기 속의 고양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내용은 토드씨 이야기와 꼬마 돼지 로빈슨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새뮤얼 위스커스(혹은 롤리폴리 푸딩) 이야기》는 그야말로 엽기적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시궁쥐가 만드는 '톰 키튼 파이'라니!)


책을 읽다가 지속해서 의문이 드는 것이 있었다. 

이처럼 드문드문 다른 폰트가 쓰였다는 점인데 책 어디에도 그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아서 저게 뭔지 내내 고민을 거듭하다가 원서를 찾아보고서야 궁금증 해결을 했다. 다른 폰트는 원서의 이탤릭체를 저런 방식으로 표기한 거였는데 이탤릭체는 부각 또한 강조의 목적으로 쓰인다고 한다. 번역을 거치면서 특정 단어에 다른 폰트를 쓴 것이 원서와 비교하면 전달되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왜 다른 폰트가 쓰였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단어인데?' 이렇게 의아히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똑같은 의문을 품을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러한 이유로 폰트가 다르다고 짚고 넘어간다.



재봉사는 난롯가에 붙어 앉아 한탄했다. "체리 색 명주실로 지은 단춧구멍 스물 한 개라! 토요일 정오까지 끝내야 하는데 오늘이화요일 저녁이야. 생쥐들을 그냥 보낸 건 잘한 걸까? 분명 심킨이 잡아 놓은 거겠지? 아이고, 큰일 났네. 빔실이 하나도 없으니!"

(71p)


『피터 래빗 전집』을 22일 화요일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런 대목이 있어서 읽으면서도 신기했다. 서평 마감일(이 책은 서평 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아 쓴 책이라서 서평 기한이 정해서 있었다.)도 하필 26일 토요일이라서 더더욱. 이 서평을 쓰는 동안 매우 지독한 감기로 고생을 한 나는 글로스터의 재봉사처럼 며칠을 골골 앓았는데(지금도 여전히 감기가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다.) 내게는 은혜를 갚아줄 생쥐들이 없으니 아픈 몸으로 스스로 힘겹게 마무리를 짓는 중이다.

책을 읽는 동안 꿈에서도 동물 친구들이 등장해 마치 내가 미스 포터가 된 기분이 들었다. 


유복한 환경에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상황에 의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던 베아트릭스 포터. 

그녀는 그런 현실의 크나큰 벽 앞에서 좌절하기보단 용기 있게 새로운 길을 다시 개척했고, 평생을 사랑하는 동물들과 자연에서 함께하며 취미이자 특기인 스토리텔링과 그림 재능을 살려 10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불멸의 작품 『피터 래빗 전집』을 완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스 포터가 버섯 연구를 계속하고 식물학자가 되었다면? 전 세계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를 거의 몰랐을 테고 피터 래빗을 포함한 동물 캐릭터 또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녀 앞에 고난과 역경의 커다란 장벽이 없었다면 우리 손에 『피터 래빗 전집』이 들려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그래서 참 재밌는 것 같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의 명언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코앞에 닥친 현실이 힘들고 괴로운 이들에게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이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서평을 정리하면서 기침은 여전하지만 아프던 머리는 한결 호전되었다. 이 글 마무리 후 주말 동안 푹 쉬다가 『피터 래빗 전집』을 한 번 더 훑을 작정이다. 그만큼 이미 정이 듬뿍 들었다. 여러분도 미스 포터가 만들어낸 토끼와 다람쥐와 고양이와 생쥐와 돼지 친구들을 꼭 만나보길 바란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모든 걸 쏟아부어서 보존한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자연을 내 두 눈에 직접 생생하게 담을 날이 언젠가는 꼭 오길 고대하며, 민음사 <피터 래빗 전집> 서평을 마친다. 콜록콜록.



※ 이 책의 상세한 사진 리뷰는 개인 블로그에 따로 올려두었다. 

보다 자세한 책 디자인과 내지 재질, 삽화가 궁금하다면? ☞ http://naver.me/xxJQtbg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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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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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출판사 달콤한책이 펴낸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이란 망명자 출신 프랑스인 작가 마리암 마지디의 자전 소설로 원제는 Marx et la poupée, '마르크스와 인형'이라는 뜻이다. 처음엔 원제와 한국판 번역서 제목이 전혀 달라서 의문이 생겼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원제보다 나은 번역서 제목이란 판단이 섰다.


마리암 마지디 본인도 방한 인터뷰에서 한국어판 제목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저자가 처음에 떠올렸던 제목은 '어떻게 페르시아인이 되는가'였다고 한다. 원제의 정치적인 느낌보다는 언어에 대해 조금 더 심오한 차원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 인터뷰 출처: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Youtube 채널)


자전 소설이기에 책 속 화자인 소녀는 작가와 이름이 같은 '마리암'이다. 이쯤에서 자전 소설이란 무엇인지 먼저 짚어보자. 작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겪은 일화를 글에 녹여낸 것이 바로 자전 소설이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소설이지만 자전적 에세이 성향이 강한 책이다. 책은 크게 총 3부로 나뉘는데 1부는 미리암의 유년 시절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2부는 프랑스 망명과 정착하며 겪는 혼돈 두 문화와 두 언어의 충돌 갈등이 표면화되고, 3부는 저자 나름의 이해와 화해와 받아들임으로 마무리된다.


이란에 대해 아는 거라곤 중동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이며 악명 높은 '침대축구' 정도가 다여서 이것만으로는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필요했기에 책을 읽기 전에 정보를 찾아보았다. 마리암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970년대 이란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입헌 군주제 팔라비 왕조의 오랜 폭정을 견디지 못한 이란 국민들은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고 1979년 마침내 독재자 샤를 몰아냈다. 이것이 이란 혁명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란인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쳤음에도 불구, 귀환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종신 최고지도자가 되어 이번엔 신정 체제를 반대하는 공산주의자 등의 세력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1980년부터는 이란 이라크 전쟁까지 발발한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1980년생인 마리암과 그녀의 부모는 이런 이란의 격변기를 모두 겪은 세대다. 책의 초반부 마리암을 임신한 채 학생 운동을 하다가 못이 박힌 몽둥이를 든 사람들에게 쫓기는 어머니 장면 묘사는 정말이지 끔찍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을 때의 버거움이었다. 믿고 싶지 않은 끔찍한 현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책이 생생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에, 정치적 상황은 다르지만 어떠한 간절하고도 또렷한 목적과 이유로 누군가에게 항거하는 이들의 두려움과 생의 의지를 간접 체험하면서 몰입하게 되니 버겁게 느껴졌다.


이란혁명 이후 독재자 호메이니 정권에 맞서 반정부 지하운동을 하던 공산주의자 부모가 이란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 프랑스 망명을 결심하면서 어린 소녀 마리암은 자신이 아끼던 장난감을 이웃에게 나눠주게 된다. 어린 소녀에게는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장난감과 태어나고 자란 터전을 포기하고 떠나야 한다는 절망감이 어땠을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울며불며 생떼를 쓰고 고집을 부려봐도 어린 소녀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이념이 뭔지, 기저귀 차고 다닐 나이의 아기를 전령이나 도구로 여기는 어른들을 접하면서 그런 종이 쪼가리 따위가 어떻게 아이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냐고 분노했다. 아마도 그녀 역시 그런 부분을 꼬집고 싶어서 실은 일화가 아니었을까.


망명자 신분으로 프랑스에서 겪은 가난과 혼란 속에서 그녀를 더 힘들게 만든 것은 배척과 몰이해와 경솔의 시선이었다. 막연하게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고 두 나라의 문화를 가진다는 것에 호기심과 부러움이 있었는데 그걸 직접 겪은 이의 입장에선 함부로 쉽게 단정짓고 얘기를 꺼낸 다는 것 자체가 상처라는 걸 '어떻게 프랑스인이 될 수 있어요?' 장에서 절감하고 자성했다. 타인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입은 얼마나 경박한가. 모국의 언어 페르시아어와 제2의 모국 언어 프랑스어는 그녀에게 때론 혼란과 고통이기도 했다. 


이 책으로 이란 관련 새로운 지식도 습득했다. 소설 속 이란 젊은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이다. 스카프와 차도르에 갇힌 자유로움을 보며 이슬람 문화권 사람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일종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그리고 미풍양속 순찰대 '파르메 특공대' 이야기는 과히 충격이었다. 대낮 길거리에서 이란 여성을 같은 여성 경찰관이 짓밟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니. 마리암이 2003년에 목격한 일이란다.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끌어 체포하는 가혹 행위가 단순히 베일을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그들 기준으로 선정적인 옷차림이란 이유라니. 또한 마리암이 삼촌과 차를 타고 가다가 불심검문으로 취조 수준의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부분에선 이란 인권의 심각성을 다시금 통감케 했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문학적 측면으로도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시적인 표현과 묘사가 곳곳에 있어서 좋았다. 다시 한 번 곱씹고 싶은 문장이 많아 처음으로 부분적 필사를 해보고픈 생각도 들었다. 읽는 내내 수첩에 메모해둔 인상적인 문장들이 가득할 정도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인용을 가급적 절제하겠다. 다른 독자들도 직접 읽으면서 그 맛을 느껴보길 바란다. 죽음과 공포를 의인화한 서술이나 프랑스어가 트이는 과정 묘사가 특히 인상 깊었는데, 과연 2017년 공쿠르 문학상 신인상을 받을 만한 필력이다 싶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헌사에 특히 신경이 쓰였다. 자연스레 호기심이 갔다.


압바스에게

압바스 이야기는 소설의 극히 일부분이다. 가족도 아니며 마리암이 어린 시절 잠깐 보았던 좋은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왜일까? 왜 압바스에게 헌사를 남겼을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궁금증을 품었고 책을 다 읽고 덮은 뒤 나름의 결론을 냈다. 압바스는 작은 아이에 불과한 마리암을 인간답게, 사람답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준 특별한 사람이었던 거다.


 압바스. 익명의 사람들 중에서 내게 관심을 보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웃으며 내게 다가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이 아기가 자기에게 투쟁할 힘과 무기를 들 힘을 준다고, 이 나라의 모든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러운 놈들에게 대항해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고, 혁명 때 태어난 아기들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나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의 눈은 웃을 때도, 웃지 않을 때도 반짝였다. 환하게 빛나는 시선을 지닌 사람. 압바스는 별똥별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긴 생애를 갖지 못할 것이다. 모든 걸 주고자 하는 사랑을, 심장이 감당 못 할 날이 올 테니까. 심장은 언젠가 터져버릴 것이다. 그 속에서 분출된 사랑이 세상을 온통 물들였으면 좋겠다. 

 난 그를 바라보고, 생기로 가득 찬 크고 검은 눈에서 이 모든 걸 읽어낸다.

(36~37p)

 압바스. 삶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닌 젊은 혁명가. 플리스틱 슬리퍼. 수감자. 총살. 죽을 때까지 '플라스틱 슬리퍼'라는 말만 되뇐 불쌍한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고통의 단어. 생살을 벗겨낸 듯한 지독한 단어, 불의에 넋을 놓은 단어, 그들만의 단어를 되뇌는 모든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아직도 들린다.

(40p)


이 책은 언어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인간과 생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그녀는 인간답게 살고자 망명을 했고, 언어를 배웠고 다시 돌아가 모국의 언어와 화해했다. 마리암 마지디는, 1부 첫 번째 탄생 첫 페이지에 뽑아 내 자리한 나짐 히크메트 시의 구절처럼 '삶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건 없다는 사실'의 살아있는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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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노는 정원 -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미야시타 나츠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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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번쯤 해보고 싶지만, 엄두가 나질 않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책을 통해 대리만족할 겸 읽어보고 싶어 신청합니다. 제목과 표지가 예뻐서 더 끌리는 책이네요."



서평 도서를 신청할 때 작성한, 《신들이 노는 정원》을 읽고 싶은 이유다. 이렇듯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그저 내가 시도해볼 용기조차 나질 않는 경험에 대한 '대리만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의 경우 인터넷 쇼핑을 즐겨서 택배 차량 접근성이 높은 지역, 배송 비용이 추가로 들지 않는 지역이 거주지의 필수 조건 중 하나라 도서 산간은 그곳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생각조차 아예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 인생 설계의 선택지에 오지 따위는 없었던 거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통해 마음이 변화가 생겼다는 게 놀라울 뿐. 책이 쉬이 읽힐수록 초반부부터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나도 이런 산골 생활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감정이 시나브로 피어올랐다. 



미야시타네 4인 가족이 1년 동안 살게 된 곳은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아주 추운 땅 홋카이도 다이세쓰산 국립공원 근방. 곰과 북방 여우, 홋카이도 사슴을 종종 만날 수 있는 산촌 도무라우시이다. 아이누 말로 '가무이민타라'는 '신들이 노는 정원'이란 의미인데 홋카이도의 선주민이었던 아이누 사람들이 불렀던 다이세쓰산의 또 다른 이름이며, '도무라우시'라는 마을명 역시 아이누 말로서 '꽃이 많은 곳'이라는 어여쁜 뜻을 지녔다. 


《신들이 노는 정원》은 미야시타 나츠가 2013년 4월부터 2014년 3월까지 단 1년간의 시한부 홋카이도 산촌 일상을 에세이로 엮은 책이다. 원서는 2015년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단 하루 동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내려갔을 정도로 읽는 사람에게도 편하게 쉬이 읽히는 글이었다. 문체가 마음에 들어서 곧바로 2016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인 저자의 《양과 강철의 숲》 전자책까지 구매를 해버렸다. 몇 월 모일 이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작가의 일기를 모아 엮은 듯하기도 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재미란 꽤 쏠쏠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 또한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렇게 써서인가. 단 하루 동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내려갔을 정도로 읽는 사람에게도 편하게 쉬이 읽히는 글이었다. 몇 월 모일 이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작가의 일기를 모아 엮은 듯하기도 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재미란 꽤 쏠쏠하지 않은가. 나 또한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사


멋진 홋카이도 사슴 두 마리가 온통 눈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환영의 춤을 춰주었다고 한다. (19p)

"풍경이 신'이야."라고 했다. 신이라. 신이라니 어쩔 수 없군. (20p)


가장 가까운 슈퍼까지 가는 거리 37km, 인원 총 10명인 초·중등 병설학교, 휴대전화 3개 통신사 모두 불통, 텔레비전 난시청 지역이자 눈이 내리면 시청이 불가능한 특별 대설 지역. 이 모든 정보의 나열은 저자와 가족들이 1년간 거주할 마을의 특징이고 얼마나 열악한 두메산골인지를 실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추위 탓에 난로도 잘 안 켜지고 정전이 되면 얼어 죽을 정도의 추위라고 한다. 영하 이십 도는 예사라고. 문명 생활과 동떨어진 저런 곳에서 나라면 과연 살 수 있을까 이런 막막함도 들었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호기심이 더 생긴 건지도 모른다. 이 가족들은 주변의 걱정과 반대와 만류를 무릅쓰고 그들의 의지로 이사를 간다.



*공기가 맛있다


공기가 맛있다. 제일 처음 공기를 '맛있다'고 표현한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공기에는 정말로 맛이 있다. 맛있는 물처럼 순한 맛이 난다. 음표로 말하자면 도레미파솔 같은 맑은 맛. 이곳 공기는 맛있다. (48p)


도무라우시의 자연과 그곳에서의 추억을 저 단어만으로 모두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인상적이라 메모를 해두었다. 맛있는 공기 그리고 맛있는 눈. '정말로 맛있다'고 표현한 저자의 말대로 맑은 공기와 깨끗한 눈이 참말로 궁금해졌다. 갓 내린 새 눈에 시럽을 뿌려서 눈 빙수를 만들어 먹은 이야기를 읽고 나도 군침이 돌았다. 도무라우시 산에 내리는 눈은 특별히 맛있다고 한다. 



*자연 그리고 사람


그리하여 올해는 춥다. 눈이 적고 하늘이 맑은 날이 많다. 밤하늘의 맑디맑은 아름다움은 말을 잃을 정도다. 천상에서 산자락까지 선명하게 별이 나와 있다. 별자리와 별자리 사이에도 자잘한 별이 빼곡하게 박혀 있고, 예쁘다고 느끼기 전에 먼저 놀란다. (239p)


이 책은 홋카이도의 자연환경과 여행정보를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올 컬러의 지역 사진이 실렸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저자의 말에도 적혀있다시피 '아이들',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은 자연과 사람으로 인해 감동을 받고 행복을 느끼고 치유가 된다. 사람의 상처는 사람이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인해 치유받기도 한다. 일상에서 얻는 교훈과 깨달음, 소소한 지혜가 이 책 속에 있다. 잔잔한 가운데 '이런 게 행복이지' 하게 된다.


"이곳에 와주신 것만으로도 기뻐요."(206p)

아이가 안심하고 아이로 있을 수 있다. (207p)


텃세도 배척도 없이 그들을 맞아주고 진심으로 함께해준 마을 사람들의 순박함과 자애로움, 그 나이대 동심을 지킬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이 매우 바람직해보였다. 교사수와 학생수가 비등한 1대1 교육, 수 시간을 편성해 스스로 해보는 심도 있는 체육 활동과 자연 체험 학습을 보며 이런 수업이야말로 이상적인 엘리트 교육 아닌가 싶었더랬다. 



*운명


나 또한 살면서 이건 운명이다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저자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니 친근함도 들고 신기했다. 우연히 본 감명 깊은 다큐 속 학교를 2년 뒤에 직접 보게 되었다거나, 상상 속 강아지를 애견 가게에서 만났다거나 하는 등의,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닐 지 몰라도 본인에게는 특별한 그런 경험을 저자는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진한 1년


이곳을 떠나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떠나서 어떻게 살아갈까. 

(중략) 떠나는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170p)


가족과 항상 함께했던 1년. 저자는 좋고 나쁘고 간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진한 1년이라고 했지만, 그들에게 산속에서 가족과 함게 했던 1년이란 얼마나 귀중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는지를 '진하다'는 표현 속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문체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담담하고 시크하고 적당히 위트 있게 잘 썼다. 중간중간 나오는 막내딸 에피소드는 콩트 장르를 보는 듯했다. 어찌 보면 민감한 사생활이나 마찬가지인 저자 자신의 공황장애 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책 전반적으로 군데군데 기술해놓았는데 이 역시 담담하고 평온하다. 그리고 일반화 시키면 안 될 편견이겠지만, 일본인은 혼네와 다테마에가 있어서 본심을 잘 숨기고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고 하던데. 글쎄. 나는 이 책에서 할 말은 하는 저자의 시원시원한 성향도 느낄 수 있었다. 



서평을 마무리할 찰나, 나도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해 다시 자문해보면 역시나 물음표가 먼저 그려진다. 그렇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다면 나도 저자처럼 언젠가는 또. 반드시 꼭.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 것만 같다.


보통의 미셀러니 책에 비해 아담한 B6 판형으로 휴대하기 좋다. 따사로운 봄 햇살 맞으며 야외에서 읽을 만한, 선한 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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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는 글쓰기 -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글쓰기의 힘
셰퍼드 코미나스 지음, 임옥희 옮김 / 홍익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좋아하고 글재주가 있으며 창작의 희구가 '쓰기'로 발현되는 성향인 나는, 작문 작법 등의 글쓰기 관련 서적 모으기가 취미이기도 하다. 책장에는 다양한 글쓰기 작법서가 꽂혀 있으며 eBook 서재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 또한 제목을 접하자마자 읽고 싶고 소장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는데, 더더욱 구미가 당긴 것은 저자 셰퍼드 코미나스의 소개 문구 때문이었다. 만성 편두통에 시달리던 저자가 치료 목적으로 의사에게 글쓰기를 권유받았고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고통을 극복하고 그 이상의 치유를 받았다는 것. 


사실, 내게도 편두통이라는 귀찮은 놈이 어릴 적부터 그림자처럼 따라붙어서는 잦으면 이틀 간격으로 뇌를 콕콕 찔러대서 꽤 골치가 아픈데 저 부분에서 어찌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좋아하는 취미이자 특기와 기필코 풀어내고픈 과제가 한 권의 책으로 내 눈앞에 나타나서 아주 흥미롭고도 의욕이 넘쳤다. 운이 좋게도 서평단으로 뽑혀서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고.

저자는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영적, 통합적으로 이로운 글쓰기를 통해 효과를 톡톡히 본 다양한 이들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매우 타당한 근거와 이유를 들어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솔깃하게 설득시킨다. 당장 펜을 들고 싶을 만큼이나.



자신의 감정을 글로 옮기기 위해 펜을 집어 드는 일이야말로 영혼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고, 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니 해답은 당신의 손가락 끝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필요한 것은 테이블과 필기도구가 전부다. 글쓰기의 이점과 효과를 경험하려면 오직 한 가지 방법뿐이다. 꾸준히 써라. (22p)


원하는 만큼 써라.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계속 써라. (33p)


글쓰기는 몸과 마음, 영혼 사이에 숨어 있는 연결고리를 재생하는 일이다. (중략) 글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정직’이다. 진실하게 쓰지 않는다면 치유하고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37p)


이번 서평은 평소에 내가 써온 것과 도입부 전개 방식이 약간 다른데 이 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핵심인 ‘마음속 단어들이 흘러나오는 대로 술술 쓰기’와 ‘정직하고 솔직하게 쓰기’의 실천을 서평으로도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공유해야 할 서평이니까 종이 노트와 펜으로 편집 없이 써야 하는 필수조건은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셰퍼드 코미나스는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나를 위한. 오직 나만을 위한 글쓰기를 하라고 말한다. 그동안의 내 글쓰기는 어떠했는가를 되짚어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글솜씨를 인정받기 위한 글쓰기를 하며 살아온 듯하다. 



“당신이 쓸 일기는 책으로 출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하나하나 기록하는 일입니다. 그냥 마음속에 있는 단어들이 흘러나오는 대로 써 내려 가세요. 그게 전부입니다.” (12p)


서문에 적힌 문장은 내가 여태껏 생각하고 다져온 글쓰기의 관점 자체를 비틀어준 신선한 제안이었다. 앞서 적었다시피 나에게 글쓰기란, 나 자신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글쓰기에서 ‘나’는 주체가 아닌 객체였으며 항상 뒷전이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첫머리부터 늘 부담감과 압박감을 받아온 것이다. 나를 위해 마음 가는 대로 휘갈기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사서 고통을 받았는지. 서문만으로도 나는 이미 후련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 캡쳐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위로는 남에게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라는 아주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따듯하고 다정한 위로를 할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삶을 위한 글쓰기: 일기 쓰기를 통해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기>인데 한국판 번역서 제목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가 더 직관적이고도 마음에 와닿도록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을 마음껏 표현 가능한 ‘절대적인 자유 공간’인 글쓰기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영혼을 치유하여 긍정적인 마인드, 기쁨, 행복, 인간관계의 바람직한 변화, 겸허히 받아들임, 용서, 화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대로, ‘글을 쓰는 목적은 어떻게 하면 인생을 더 충실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33p) 이기에 꾸준히 원하는 만큼 솔직하게 쓰면서 생의 해답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다.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글을 쓰고는 싶은데 막강 시작하려니 두려움이 먼저 앞서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은 글쓰기에 흥미가 있는 나 같은 사람 외에도 글을 전혀 써본 적 없고 취미의 범주에 둬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용기를 가지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쉽게 글을 쓰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글쓰기 프로그램을 솔루션처럼 수록해놓았기 때문에 차근차근 읽고 따라서 해보면 된다.


또한, 마지막 챕터에서는 이제껏 저자가 서술했던 모든 내용의 총집편을 실어두어 바빠서 책 한 권 완독하기 힘든 사람들은 마지막 챕터부터 읽은 후 그중 관심이 생기거나 더 알아보고자 하는 챕터를 메모하고 그 부분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정독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서문은 반드시 가장 먼저 읽어보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길 테니.

처음이 어렵지 시작만 하면 반은 성공한 셈이다. 용기를 내 꾸준히 써보자. 최소 90일 하루 20분씩 글쓰기 시간을 나에게 내어주고 몸과 마음, 영혼을 연결하는 탄탄한 다리를 놓아보자. 나 또한 ‘아직은 아니야’라고 계속 미루는 대신 의욕적이고도 열정적으로 당장 오늘부터 서평으로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나는, 만성 편두통과의 유쾌한 이별을 미리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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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라이프 - 행복을 파는 기적의 가게
구스노키 시게노리 지음, 마쓰모토 하루노 그림,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Life 라이프」가 도착했을 때 책의 만듦새도 마음에 들고 색감도 화사해서 첫눈에 반했습니다.




책이 정말 예쁘죠?

보통보다 훨씬 넓은 띠지의 그림마저 예뻐서 띠지도 훼손되지 않도록 

소중하게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정도니까요.




단단한 양장 제본이고 표지 재질은 엠보싱 패턴의 무광 코팅이라 입체감이 느껴집니다. 

만져보면 도돌도돌해요. 마감이 아주 훌륭하며 진노랑의 표지색 선택도 탁월합니다. 




책을 펼치면 이렇게 쫙쫙 펴지는 제본입니다. 하지만, 

책이 뜯어질 염려는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사진 속에 그은 선을 경계로 앞부분은 그림동화, 

뒷부분은 컬러링 손글씨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부 종이의 재질 역시 두 종류로 나뉘는데 

「Life 라이프」 그림동화 부분은 일반적인 아동용 그림책 재질이고, 

책을 읽는 독자가 직접 꾸미는 컬러링 손글씨 부분은 

색연필로 색칠하고 펜으로 글쓰기에 알맞은 노트 재질입니다. 

이렇게 다른 재질의 종이를 제본해서 책을 만든 게 독특했어요. 



「Life 라이프」의 지은이 구스노키 시게노리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어린이 책 작가이며 다수의 동화책을 썼습니다.

그린이 마쓰모토 하루노 역시 다수의 그림책을 쓰고 삽화를 그렸는데 

한국에 소개된 책은 라이프가 유일한 듯해요.


마쓰모토 하루노의 할머니는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책 

<창가의 토토>의 삽화를 그린 일본 국민 화가 이와사키 치히로.

유명 화가인 할머니의 영향도 받았지만, 유럽 그림책 작가들의 영향도 받았다고 하는군요.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에는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느낌이 나서 좋아하기 때문에 

이 작가의 삽화가 실린 책 여러 권을 소장 중이랍니다.

서평 올릴 때 생각이 나서 그중 일부도 함께 찍어보았어요. 

이분의 작품은 직접 쓰고 그린 책 <작은 새가 온 날>을 추천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Life 라이프」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짝꿍인 아름다운 삽화가 어우러져 더 큰 감동을 줍니다.

포근하고 따사로운 연필 스케치가 보는 사람에게 마음의 평안을 느끼게 만듭니다.




책을 펼치면 날것 느낌의 채색 전 가게 스케치가 보이도록 배치했고, 




뒤표지를 덮기 전에도 마찬가지로 등장인물인 할머니 그림이 

채색 안 된 상태의 연필 스케치로 그려져 있습니다.



책 첫 장을 펼치면 연필 스케치로 미리 보았던 가게 

'라이프 Life'의 전경이 가을빛으로 채색된 채 한눈에 보입니다.



작은 마을에 그 가게가 있습니다.

가게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일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를 팔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가게엔 물건이 놓여 있고 손님들도 찾아옵니다.


가게의 이름은 라이프 Life. 


손님들은 '라이프 Life'에 들러 자신에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할 만한 물건을 놓고 가면서 

동시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 갑니다.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가게를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할머니는

갑자기 외톨이가 된 슬픔에

더 이상 꽃을 키울 마음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꽃을 무척 좋아하셨답니다. 할아버지가 준비한 봄꽃의 씨앗입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적힌 카드와 봄꽃의 씨앗을 놓아두고는 

'추억은 언제까지나'라는 카드가 적힌 액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가게를 다녀간 이후 여러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가져오는 길에 봄꽃의 씨앗을 가져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봄이 왔는데도 할머니는 여전히 슬픔에 젖은 채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이번에는 여름에 피는 꽃 씨앗을 나눔 하려고 다시 '라이프 Life'를 찾으셨네요.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라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왜 깜짝 놀라셨을까요? 

이다음 이야기는 「Life 라이프」책에서 꼭 만나보세요!



그림 동화 이야기가 끝나면 독자가 직접 꾸밀 수 있는 카드가 나옵니다.



다음 장을 펼치면 나오는 컬러링 페이지에는 

'Life is ○'라는 문장과 인상 깊은 글귀가 함께 곁들여져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몇 개의 글귀를 제가 골라보았습니다.




Dum Spiro, Spero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라틴어 명언이죠. 

살아있는 것 그 자체로도 희망을 품을 이유로 충분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를 쓴 정신의학자이며 

유태인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입니다. 

죽음의 경계선에 섰었던 그였기에 이 글귀를 라이프에 실은 것 자체가 의미 깊다고 하겠습니다. 




로마의 황제이자 <명상록>을 쓴 철학가이기도 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언은 이 시대에 읽어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라이프는 행복입니다. 그의 말은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죠. 

'행복은 내 안에 있다.'를 명심하면서 살아가야겠습니다.



이 책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작은 마을 그 가게, 'Life 라이프'에는 

할머니 한 분, 한 소년,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태운 부부, 젊은 연인들, 한 소녀가 방문합니다.

책 속 등장 인물은 어쩌면 나일 수도 이걸 읽는 여러분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 친구, 이웃 누구나 다 대입할 수 있습니다.


「Life 라이프」, 이 제목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을 그렸습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고 '함께' 살아가야 행복하다는 것을 말이죠.




책의 뒤표지에 적힌 문장, 책을 다 읽으면 더욱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라이프는 어린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고 

하루하루 지친 삶을 사는 어른이 읽기도 좋은, 

모두를 위한 동화입니다.


외롭고 쓸쓸한 사람, 힘들고 지쳐서 작은 위로라도 필요한 사람,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삶의 이유도 함께 잃은 사람, 

다른 이의 희노애락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사람. 


그런 분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할 책이며 

남녀노소 국적 불문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양장본 디자인이 깔끔하고 글과 그림이 모두 예쁘니

선물용 책으로 적극적으로 추천해요.



만약 라이프처럼 행복을 파는 기적의 가게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나누고 싶으신가요? 또 어떤 감정을 공유하고 싶으신가요?


짧은 이야기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 

안과 겉이 다 예뻐서 기분 좋은 책, 

'「Life 라이프」 행복을 파는 기적의 가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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