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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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디 출판사 달콤한책이 펴낸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이란 망명자 출신 프랑스인 작가 마리암 마지디의 자전 소설로 원제는 Marx et la poupée, '마르크스와 인형'이라는 뜻이다. 처음엔 원제와 한국판 번역서 제목이 전혀 달라서 의문이 생겼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원제보다 나은 번역서 제목이란 판단이 섰다.


마리암 마지디 본인도 방한 인터뷰에서 한국어판 제목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저자가 처음에 떠올렸던 제목은 '어떻게 페르시아인이 되는가'였다고 한다. 원제의 정치적인 느낌보다는 언어에 대해 조금 더 심오한 차원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 인터뷰 출처: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Youtube 채널)


자전 소설이기에 책 속 화자인 소녀는 작가와 이름이 같은 '마리암'이다. 이쯤에서 자전 소설이란 무엇인지 먼저 짚어보자. 작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겪은 일화를 글에 녹여낸 것이 바로 자전 소설이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소설이지만 자전적 에세이 성향이 강한 책이다. 책은 크게 총 3부로 나뉘는데 1부는 미리암의 유년 시절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2부는 프랑스 망명과 정착하며 겪는 혼돈 두 문화와 두 언어의 충돌 갈등이 표면화되고, 3부는 저자 나름의 이해와 화해와 받아들임으로 마무리된다.


이란에 대해 아는 거라곤 중동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이며 악명 높은 '침대축구' 정도가 다여서 이것만으로는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필요했기에 책을 읽기 전에 정보를 찾아보았다. 마리암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970년대 이란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입헌 군주제 팔라비 왕조의 오랜 폭정을 견디지 못한 이란 국민들은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고 1979년 마침내 독재자 샤를 몰아냈다. 이것이 이란 혁명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란인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쳤음에도 불구, 귀환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종신 최고지도자가 되어 이번엔 신정 체제를 반대하는 공산주의자 등의 세력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1980년부터는 이란 이라크 전쟁까지 발발한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1980년생인 마리암과 그녀의 부모는 이런 이란의 격변기를 모두 겪은 세대다. 책의 초반부 마리암을 임신한 채 학생 운동을 하다가 못이 박힌 몽둥이를 든 사람들에게 쫓기는 어머니 장면 묘사는 정말이지 끔찍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을 때의 버거움이었다. 믿고 싶지 않은 끔찍한 현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책이 생생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에, 정치적 상황은 다르지만 어떠한 간절하고도 또렷한 목적과 이유로 누군가에게 항거하는 이들의 두려움과 생의 의지를 간접 체험하면서 몰입하게 되니 버겁게 느껴졌다.


이란혁명 이후 독재자 호메이니 정권에 맞서 반정부 지하운동을 하던 공산주의자 부모가 이란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 프랑스 망명을 결심하면서 어린 소녀 마리암은 자신이 아끼던 장난감을 이웃에게 나눠주게 된다. 어린 소녀에게는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장난감과 태어나고 자란 터전을 포기하고 떠나야 한다는 절망감이 어땠을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울며불며 생떼를 쓰고 고집을 부려봐도 어린 소녀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이념이 뭔지, 기저귀 차고 다닐 나이의 아기를 전령이나 도구로 여기는 어른들을 접하면서 그런 종이 쪼가리 따위가 어떻게 아이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냐고 분노했다. 아마도 그녀 역시 그런 부분을 꼬집고 싶어서 실은 일화가 아니었을까.


망명자 신분으로 프랑스에서 겪은 가난과 혼란 속에서 그녀를 더 힘들게 만든 것은 배척과 몰이해와 경솔의 시선이었다. 막연하게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고 두 나라의 문화를 가진다는 것에 호기심과 부러움이 있었는데 그걸 직접 겪은 이의 입장에선 함부로 쉽게 단정짓고 얘기를 꺼낸 다는 것 자체가 상처라는 걸 '어떻게 프랑스인이 될 수 있어요?' 장에서 절감하고 자성했다. 타인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입은 얼마나 경박한가. 모국의 언어 페르시아어와 제2의 모국 언어 프랑스어는 그녀에게 때론 혼란과 고통이기도 했다. 


이 책으로 이란 관련 새로운 지식도 습득했다. 소설 속 이란 젊은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이다. 스카프와 차도르에 갇힌 자유로움을 보며 이슬람 문화권 사람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일종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그리고 미풍양속 순찰대 '파르메 특공대' 이야기는 과히 충격이었다. 대낮 길거리에서 이란 여성을 같은 여성 경찰관이 짓밟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니. 마리암이 2003년에 목격한 일이란다.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끌어 체포하는 가혹 행위가 단순히 베일을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그들 기준으로 선정적인 옷차림이란 이유라니. 또한 마리암이 삼촌과 차를 타고 가다가 불심검문으로 취조 수준의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부분에선 이란 인권의 심각성을 다시금 통감케 했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문학적 측면으로도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시적인 표현과 묘사가 곳곳에 있어서 좋았다. 다시 한 번 곱씹고 싶은 문장이 많아 처음으로 부분적 필사를 해보고픈 생각도 들었다. 읽는 내내 수첩에 메모해둔 인상적인 문장들이 가득할 정도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인용을 가급적 절제하겠다. 다른 독자들도 직접 읽으면서 그 맛을 느껴보길 바란다. 죽음과 공포를 의인화한 서술이나 프랑스어가 트이는 과정 묘사가 특히 인상 깊었는데, 과연 2017년 공쿠르 문학상 신인상을 받을 만한 필력이다 싶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헌사에 특히 신경이 쓰였다. 자연스레 호기심이 갔다.


압바스에게

압바스 이야기는 소설의 극히 일부분이다. 가족도 아니며 마리암이 어린 시절 잠깐 보았던 좋은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왜일까? 왜 압바스에게 헌사를 남겼을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궁금증을 품었고 책을 다 읽고 덮은 뒤 나름의 결론을 냈다. 압바스는 작은 아이에 불과한 마리암을 인간답게, 사람답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준 특별한 사람이었던 거다.


 압바스. 익명의 사람들 중에서 내게 관심을 보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웃으며 내게 다가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이 아기가 자기에게 투쟁할 힘과 무기를 들 힘을 준다고, 이 나라의 모든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러운 놈들에게 대항해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고, 혁명 때 태어난 아기들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나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의 눈은 웃을 때도, 웃지 않을 때도 반짝였다. 환하게 빛나는 시선을 지닌 사람. 압바스는 별똥별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긴 생애를 갖지 못할 것이다. 모든 걸 주고자 하는 사랑을, 심장이 감당 못 할 날이 올 테니까. 심장은 언젠가 터져버릴 것이다. 그 속에서 분출된 사랑이 세상을 온통 물들였으면 좋겠다. 

 난 그를 바라보고, 생기로 가득 찬 크고 검은 눈에서 이 모든 걸 읽어낸다.

(36~37p)

 압바스. 삶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닌 젊은 혁명가. 플리스틱 슬리퍼. 수감자. 총살. 죽을 때까지 '플라스틱 슬리퍼'라는 말만 되뇐 불쌍한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고통의 단어. 생살을 벗겨낸 듯한 지독한 단어, 불의에 넋을 놓은 단어, 그들만의 단어를 되뇌는 모든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아직도 들린다.

(40p)


이 책은 언어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인간과 생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그녀는 인간답게 살고자 망명을 했고, 언어를 배웠고 다시 돌아가 모국의 언어와 화해했다. 마리암 마지디는, 1부 첫 번째 탄생 첫 페이지에 뽑아 내 자리한 나짐 히크메트 시의 구절처럼 '삶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건 없다는 사실'의 살아있는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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