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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노는 정원 -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미야시타 나츠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한 번쯤 해보고 싶지만, 엄두가 나질 않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책을 통해 대리만족할 겸 읽어보고 싶어 신청합니다. 제목과 표지가 예뻐서 더 끌리는 책이네요."
서평 도서를 신청할 때 작성한, 《신들이 노는 정원》을 읽고 싶은 이유다. 이렇듯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그저 내가 시도해볼 용기조차 나질 않는 경험에 대한 '대리만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의 경우 인터넷 쇼핑을 즐겨서 택배 차량 접근성이 높은 지역, 배송 비용이 추가로 들지 않는 지역이 거주지의 필수 조건 중 하나라 도서 산간은 그곳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생각조차 아예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 인생 설계의 선택지에 오지 따위는 없었던 거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통해 마음이 변화가 생겼다는 게 놀라울 뿐. 책이 쉬이 읽힐수록 초반부부터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나도 이런 산골 생활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감정이 시나브로 피어올랐다.
미야시타네 4인 가족이 1년 동안 살게 된 곳은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아주 추운 땅 홋카이도 다이세쓰산 국립공원 근방. 곰과 북방 여우, 홋카이도 사슴을 종종 만날 수 있는 산촌 도무라우시이다. 아이누 말로 '가무이민타라'는 '신들이 노는 정원'이란 의미인데 홋카이도의 선주민이었던 아이누 사람들이 불렀던 다이세쓰산의 또 다른 이름이며, '도무라우시'라는 마을명 역시 아이누 말로서 '꽃이 많은 곳'이라는 어여쁜 뜻을 지녔다.
《신들이 노는 정원》은 미야시타 나츠가 2013년 4월부터 2014년 3월까지 단 1년간의 시한부 홋카이도 산촌 일상을 에세이로 엮은 책이다. 원서는 2015년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단 하루 동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내려갔을 정도로 읽는 사람에게도 편하게 쉬이 읽히는 글이었다. 문체가 마음에 들어서 곧바로 2016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인 저자의 《양과 강철의 숲》 전자책까지 구매를 해버렸다. 몇 월 모일 이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작가의 일기를 모아 엮은 듯하기도 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재미란 꽤 쏠쏠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 또한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렇게 써서인가. 단 하루 동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내려갔을 정도로 읽는 사람에게도 편하게 쉬이 읽히는 글이었다. 몇 월 모일 이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작가의 일기를 모아 엮은 듯하기도 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재미란 꽤 쏠쏠하지 않은가. 나 또한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사
멋진 홋카이도 사슴 두 마리가 온통 눈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환영의 춤을 춰주었다고 한다. (19p)
"풍경이 신'이야."라고 했다. 신이라. 신이라니 어쩔 수 없군. (20p)
가장 가까운 슈퍼까지 가는 거리 37km, 인원 총 10명인 초·중등 병설학교, 휴대전화 3개 통신사 모두 불통, 텔레비전 난시청 지역이자 눈이 내리면 시청이 불가능한 특별 대설 지역. 이 모든 정보의 나열은 저자와 가족들이 1년간 거주할 마을의 특징이고 얼마나 열악한 두메산골인지를 실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추위 탓에 난로도 잘 안 켜지고 정전이 되면 얼어 죽을 정도의 추위라고 한다. 영하 이십 도는 예사라고. 문명 생활과 동떨어진 저런 곳에서 나라면 과연 살 수 있을까 이런 막막함도 들었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호기심이 더 생긴 건지도 모른다. 이 가족들은 주변의 걱정과 반대와 만류를 무릅쓰고 그들의 의지로 이사를 간다.
*공기가 맛있다
공기가 맛있다. 제일 처음 공기를 '맛있다'고 표현한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공기에는 정말로 맛이 있다. 맛있는 물처럼 순한 맛이 난다. 음표로 말하자면 도레미파솔 같은 맑은 맛. 이곳 공기는 맛있다. (48p)
도무라우시의 자연과 그곳에서의 추억을 저 단어만으로 모두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인상적이라 메모를 해두었다. 맛있는 공기 그리고 맛있는 눈. '정말로 맛있다'고 표현한 저자의 말대로 맑은 공기와 깨끗한 눈이 참말로 궁금해졌다. 갓 내린 새 눈에 시럽을 뿌려서 눈 빙수를 만들어 먹은 이야기를 읽고 나도 군침이 돌았다. 도무라우시 산에 내리는 눈은 특별히 맛있다고 한다.
*자연 그리고 사람
그리하여 올해는 춥다. 눈이 적고 하늘이 맑은 날이 많다. 밤하늘의 맑디맑은 아름다움은 말을 잃을 정도다. 천상에서 산자락까지 선명하게 별이 나와 있다. 별자리와 별자리 사이에도 자잘한 별이 빼곡하게 박혀 있고, 예쁘다고 느끼기 전에 먼저 놀란다. (239p)
이 책은 홋카이도의 자연환경과 여행정보를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올 컬러의 지역 사진이 실렸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저자의 말에도 적혀있다시피 '아이들',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은 자연과 사람으로 인해 감동을 받고 행복을 느끼고 치유가 된다. 사람의 상처는 사람이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인해 치유받기도 한다. 일상에서 얻는 교훈과 깨달음, 소소한 지혜가 이 책 속에 있다. 잔잔한 가운데 '이런 게 행복이지' 하게 된다.
"이곳에 와주신 것만으로도 기뻐요."(206p)
아이가 안심하고 아이로 있을 수 있다. (207p)
텃세도 배척도 없이 그들을 맞아주고 진심으로 함께해준 마을 사람들의 순박함과 자애로움, 그 나이대 동심을 지킬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이 매우 바람직해보였다. 교사수와 학생수가 비등한 1대1 교육, 수 시간을 편성해 스스로 해보는 심도 있는 체육 활동과 자연 체험 학습을 보며 이런 수업이야말로 이상적인 엘리트 교육 아닌가 싶었더랬다.
*운명
나 또한 살면서 이건 운명이다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저자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니 친근함도 들고 신기했다. 우연히 본 감명 깊은 다큐 속 학교를 2년 뒤에 직접 보게 되었다거나, 상상 속 강아지를 애견 가게에서 만났다거나 하는 등의,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닐 지 몰라도 본인에게는 특별한 그런 경험을 저자는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진한 1년
이곳을 떠나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떠나서 어떻게 살아갈까.
(중략) 떠나는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170p)
가족과 항상 함께했던 1년. 저자는 좋고 나쁘고 간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진한 1년이라고 했지만, 그들에게 산속에서 가족과 함게 했던 1년이란 얼마나 귀중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는지를 '진하다'는 표현 속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문체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담담하고 시크하고 적당히 위트 있게 잘 썼다. 중간중간 나오는 막내딸 에피소드는 콩트 장르를 보는 듯했다. 어찌 보면 민감한 사생활이나 마찬가지인 저자 자신의 공황장애 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책 전반적으로 군데군데 기술해놓았는데 이 역시 담담하고 평온하다. 그리고 일반화 시키면 안 될 편견이겠지만, 일본인은 혼네와 다테마에가 있어서 본심을 잘 숨기고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고 하던데. 글쎄. 나는 이 책에서 할 말은 하는 저자의 시원시원한 성향도 느낄 수 있었다.
서평을 마무리할 찰나, 나도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해 다시 자문해보면 역시나 물음표가 먼저 그려진다. 그렇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다면 나도 저자처럼 언젠가는 또. 반드시 꼭.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 것만 같다.
보통의 미셀러니 책에 비해 아담한 B6 판형으로 휴대하기 좋다. 따사로운 봄 햇살 맞으며 야외에서 읽을 만한, 선한 책.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