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레거시 Gundam Legacy 1
나츠모토 마사토 지음, 장민성 옮김 / 길찾기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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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화책을 집어봤다. 만화책을 봐도 교양 만화를 주로 봤던 나에게, 정말 만화스러운 만화를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주말을 맞아, 막내 이모 집에 놀러 갔었다. 그곳에 가니 이모부께서 주문하셨던 건담 신작 만화책이 있어서 훑어봤었고, 정독했다.

어릴 때 만화를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드래곤볼이었고, 그리고 몇몇 만화책을 봤었다. 청소년기에는 코난보다는 김전일을 애독했었으며(아직도 애독하고 있다.) 성인이 돼서 만난 만화는 건담이다.

내가 건담을 좋아하는 이유는, 로봇 만화물이라는 설정도 있지만, 기존의 로봇 만화들이 추구하는 권선징악의 주제로부터 벗어난 부분.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지구 연맹과 지온 공화국 두 세력은 어떻게 보면 선과 악으로 볼 순 있겠으나, 사실 작품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선악의 구분이 없어지고,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이 없이, 어우러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따라서 주인공이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작품도 있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본질적인 타락은 해소하지 못하는 스토리 전개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나는 현실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건담 시리즈는 여러 시리즈가 있지만, 가장 대우받는 것이 '우주세기' 시리즈다. 이 건담 레거시는 정통 우주세기 시리즈의 외전 격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레거시라는 작품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외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다. 우주세기의 여러 이야기들을 짧게 짧게 그리고 있는데, 종국에 가서는 그 짧은 이야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연결되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외전이라는 작품은 어떻게 보면 본편의 인기에 맞춰 나온 것으로, 본편의 명성을 빌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외전에서 가장 보이기 쉬운 오류는 본편의 명성을 빌려오고 본편 이상으로 더 뛰어난 연출과 설정을 보여주는데 노력하고, 그것이 과해버리면 작품의 설정 자체가 무너지고 깨지는 경우도 숱하게 있었다.

건담 역시도 정통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라인 <기동전사 건담 - 기동전사 건담Z - 기동전사 건담ZZ- 역습의 샤아> 이 라인들은 크기 괴리감이 없이 전개된다. 그러나 건담 시리즈가 흥행하다 보니 저 사이사이에 외전 작품들이 들어서게 됐고 그것 때문에 설정이 붕괴되거나 수정되는 적도 많았다. 골수 팬들 역시도 그런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수 혈통' 건담 라인을 수호하기 위해 외전 건담들을 배격하는 형태 등도 많이 자행됐었다.

이 레거시는 그런 부분을 염두에 뒀는지, 과하지 않고 튀지 않게, 전개가 흘러가고 있었다. 즉 원작의 분위기는 최대한 살리면서, 원작의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외전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건담'이라는 주제에 맞게, 건담 이야기도 나오지만, 작품 내에서는 '건담'의 활동보다는 양산기들의 활동에 주력을 맞추고, 건담 로봇 전투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인물 간의 해석에도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부담 없이,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으며, 내가 유심히 봤던 대목은 3권 초반에 검은색으로 칠한 양산형 건케논2이 활약하는 장면이었다. 기존의 건담 시리즈처럼 원 오브 원(특수 제작 로봇, 양산이 아닌 한 대를 목표로 만든 로봇 - 건담이 대표적인 예다.) 모빌슈츠의 영웅주의적 활동보다, 양산기가 이렇게 활약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아무튼,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던 우주세기 시리즈의 외전으로, 건담의 골수 팬들이라면 추천할 만한 도서가 아닐까 싶다. 하나 아쉬운 점이라곤, 2권 후반부에 여성들의 수영복 신이나 여성들끼리의 질투심을 내세웠는데, 이 부분은 칙칙한 밀리터리 로봇 만화물인 기존 건담에게서 볼 수 없었던 남성들을 위한 '서비스' 신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전개는 우주세기 시리즈 건담에게서는 볼 수 없고 비우주세기 건담에게서 자주 보이는 신이라서 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진중함으로 밀고 나갔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도 있었다.

어쨌든 가볍고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며, 건담 팬들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내가 추천 안해도 뭐 다 보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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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어 - 신역
여곤 / 명문당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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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인께서 <신음어>를 읽고 계셨었다. 나이가 어린 분이신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알아낸 것 하며, 이 책을 진지하게 독서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느낀 바가 많았다. 그 옛날 나 역시도 이 책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바르게 살고자 노력했던 결의가 떠올랐으니까,

그때의 결의로부터 과연 나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는가라고 되묻는다면 역시 부끄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이 책을 다시 펴 보고 다시 읽었다.

신음이라는 것은, 고통스럽거나 힘들 때 내는 소리다. 사람이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 대표적으로 내는 것이 신음이다. 아 물론 성적 쾌락에 휩싸일 때도 신음을 내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음은 그런 신음이 아니니... 논외로 하자.   저자는 왜 신음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신음의 말을 이렇게 격언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저자가 살고 있던 명나라가 도의의 타락, 국가 자체가 흔들리고 있고, 관리들은 착복에 힘쓰고 있는 사태를 보며, 여곤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럽기도 했고, 아픈 나머지 남긴 글이었다.

여곤은 성실한 관료였고, 학문에도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선비였다. 따라서, 유학의 사서오경을 보며 이상 국가를 꿈꾸며, 성현의 말을 실천하려고 했으나, 그가 살던 시대에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서, 성현의 말을 실천할 수 없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여곤의 모습은 바로 강도 높은 자기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그는 세상이 썩은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뇌하다가 결국, 스스로의 허위와 허세로 관념을 이어나갔다. 그의 책 <신음어>는 비판력이 상당히 높은 책인데, 사회 비판도 비판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기존의 유학적 사고인 정주학적 관점만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양명학적 관점을 대변하고 있지도 않은 독자적인 관점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크게 보자면 실천 중심적인 양명학적 사고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유학자이면서 기존 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지 않았다.

여곤은 이 책에서 썩은 세상에서 올바른 수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관료는 어떻게 해야 힘든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쓰고 있다. 썩은 세상에서 여곤 스스로 본분을 다 해 선정을 배풀고 있으면서도, 고통스러워하는 세상으로부터 여곤은 스스로 '관료'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고뇌하고 고민했다. (서문에 그런 심정을 절절하게 썼다.)

그런 그가 신음하며 한 자 한자 적어나간 격언들이 바로 <신음어>라고 할 수 있겠다. 아포리즘적(짧은 격언이나 경구 등으로 함축성을 갖춘 압축적인 표현의 글) 구성을 가진 책 치고는 굉장히 쉽게 써진 책인데다, 문장 자체도 현학적이지 않은 일상용어로 자신의 생각을 책에서 전개하고 있었다.

사실 책에서 때론 너무 강도 높은 비판을 자신에게 내밀고 있어서, 사상적 모순점이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고위 관료로서 시세에 물들지 않고, 백성의 민의에 편에 서서 이런 글을 남겼다는 것은 그가 다른 관료들과는 다른 선각자였다는 점을 볼 수 있겠다.

즉 그야말로 중국의 <목민심서>라고 볼 수 있겠다. <목민심서>는 대체적으로 행정적 실무적인 수령의 행동 방침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 <신음어>는 그런 행정적 실무보다도, 공직자가 가져야 할 내면 수양에 대해서 더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두 책 모두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공통적인 점은 '애민정신' 이 돋보이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깐깐하고 대쪽같은 성격, 자신에게 숨 쉴 틈 없이 수양을 실천했던 여곤조차도, 종국에 가서는 <신음어>에 이렇게 토로한다.

 30년이란 세월 동안 노력했지만 거짓을 추방하지 못한 것이 괘씸하다.

 이른바 '거짓, 위선'이란 언행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다. 본심으로 민중을 위해 노력했는데 마음속 어딘가에 '베풀었다'라는 기분이 잔존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본심에서 선을 위해한다 하더라도 그 선행을 남에게 '인정' 받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도리적으로 보아 충분히 득이 된 일이라 하더라도 지엽말단적인 점에서 남과 다투며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위선이다. 사회 정의를 목표로 하며 전심전력을 기울이면서도 아직 일정한 견해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도 위선이다. 낮에 하는 일은 모두 선한데 꿈속에 세계에서 도리에 안 맞는 판정을 내리거나 하면 이 또한 위선이다. 90%쯤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외부에 대해서는 마치 완벽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위선이다. 이런 것들은 남들은 모르고 있는, 자기 자신만이 아는 위선의 부분이다. 그런 만큼 더욱 용서하기 어렵다.

 

나는 이런 여러 가지 위선을 내게서 제거하지 못한 인간이다.

 

  


솔직한 내면의 반성이 돋보이는 구절이다. 이런 반성의 여곤조차도, 위선을 제거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내면 수양을 하지 않는 현대인의 마음은 어떨까 싶다. 나부터도 되돌아보면, 물욕과 사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면이 보이기 마련이니까, 마땅히 경계하고 반성을 해야 할 부분이다.

예로부터 '나에겐 엄격하게, 타인에겐 관대하게'라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행하는 것은 정 반대로 행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 여곤의 진솔함이 묻어 있는 <신음어>는 우리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백성의 아픈 삶을 보며, 스스로 괴로워하다, 그는 스스로부터 바꿔 나가자고 결심하고, 수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그는 신음했다. 그 신음을 담은 책이 바로 <신음어>였다.

두고두고 옆에 두고 볼 책이다. 어렵지도 않으며, 책 내용들도 굉장히 좋은 내용이 많은 책이다. 특히나 공직에 계시거나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목민심서>와 함께 필독서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나 역시도 여곤의 자기비판정신을 본받아, 내 내면을 청결하게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훗날 또 다시 이 책을 봤을 때, 그때는 이번보다 덜 부끄러운 삶으로 회상되길 바라면서, 분발해야겠다.

책의 번역본은 자유문고와 지금 사진으로 보고 있는 명문당 두 개가 있다. 참고로 명문당 책은 편역이라고 한다. 자유문고 번역본은 완역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자유문고에서 번역한 책을 사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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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
조영환 지음 / 지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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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받은 책이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책이고, 이번에 읽었던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력, 여성들과 많은 접촉을 통한 경험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부제인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인 여자라는 제목은 심히 공감된다.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도 다르지만, 정서적으로 다른 부분이 상당한데, 가장 큰 부분이 남성의 단순성, 여성의 복잡성이니까...

 

저자가 규정하는 여성의 특징들은 고찰할 만 하다. 나도 사실 솔직히 이모들 밑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일반론적인 여성 속성들은 경험적으로 많이 습득했었다. 다소 남자들보다 분위기에 약하고 감정적이고, 복잡한 동물, 단순한 남자들과는 다르게, 복잡한 이면을 가진 여성들, 세심한 변화 (예를 들면 머리 스타일을 바꾼다거나, 네일을 새롭게 한다거나,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거나!)를 통해서 자신의 심리를 표출하는 여성들, 그리고 그 변화를 읽지 못하는 대부분의 무감각한 남자들...

 

어쨌든 일반론적인 여성에 대해서 잘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다소 이성 경험이 없는 남자들은 한 번쯤 볼 만한 책이며, 여성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자부한다는 바람둥이 형들도 한 번쯤 볼 만한 책이다. 책 자체가 어렵게 쓰여있지도 않으며, 가볍고 부담 없는 문체로 쓰여있어서 편하게 쭉쭉 읽어나가면 된다.

 

다만 책을 보며, 다소 저자의 주장이 너무 일반화된 편견에 치우친 점이 없잖아 있다. 예를 들면 허영과 사치는 여자의 본능이라는 점(물론 나도 이 주장을 한 저자의 의도는 잘 알지만 함부로 일반화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걷기나 움직이기를 즐겨 하지 않는다는 부분 (물론 남성에 비해 비활동적인 부분이 있지만... 글쎄 이렇게 일반화할 수 있을까), 남자는 과거의 연인을 기억하지만 여성은 현재만을 기억한다는 부분 ( 남성이 무조건적으로 과거의 연인만을 추억하는 존재는 아니다. 솔직히 나만 해도 나는 과거의 연인에 대해서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거기다 가장 결정적으로, 결혼을 하려면 어리고 젊은 여자와 결혼하라는 저자의 관점... 저자는 이 관점을 내세우면서, 강력하게 주장한다. 어린 여자의 배에서 난 아이가 건강하다고, 맞는 소리긴 한데, 여러 가지 관점으로 볼 때, 편향된 논리로 비치기 딱 좋은 멘트가 아닐까도 싶다. 막말로 결혼을 생물학적인 면만 고찰하야 하는가? 사회 문화적, 경제적인 면을 통합하여 고찰하여서 하는 것이 결혼이다. 지극히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서술된 저자의 주장이 아쉬웠다. 그리고 여성의 눈물에 속지 말라는 점. 여성의 눈물은 슬픔의 감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가식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사실 좀 너무 확대해석한 경향이 있었다.(저자는 이런 논지를 현실론적으로 솔직하게 썼다고 하는데... 너무 개인의 생각이 강하게 투영된 해석이 아닐까...)

 

뭐 그렇다고 해서, 아쉬운 내용만 있는 책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했던 것은 '여성과 다툴 때는 10초 이상 다투지 마라. 웬만하면 10초 내에 결론을 내되, 장기전이 될 시에는 은근히 남자가 패배를 유도하는 쪽으로 싸움을 티 나지 않게 이끌어가야 한다는 점' 이 부분에서 아주 큰 공감이 갔다. 여성과 싸움을 해 보면 알겠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마련이고, 싸우면 싸울수록 이기더라도 이긴 것이 아닌, 그야말로 얻을 것 하나 없는 전쟁이 바로 여성과의 싸움이다. 따라서 저자의 저 논의는 세겨 들을 만 했었다. 거기다 너무 완벽하게 여성을 챙기지 말고, 때론 일부로라도 모자라게 행동해서 여성의 보호본능과 모성애를 자극하라는 부분도 유심히 볼 만 했다.

 

좀 치우친 경향이 있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사실 어떻게 본다면 남성 입장에서 여성을 최대한 너그럽게 해석했는데도, 나타날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차이와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여성은 복잡한 동물이고, 규정할 수 없는 종족이다. 남자도 여자를 모르고, 사실 같은 여성이라도 여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무관심하며, 감수성이 다소 결여됐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만 봐도 대체적으로 무뚝뚝하다. 요즘은 다정다감한 남성들이 예전보단 많아졌다. 복잡한 여성들의 내면을 잘 살펴줄 수 있는 남자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직까지는 남자들이 여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부분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나도 남성이지만 이런 부분은 우리 남자들이 반성을 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책은, 남성의 입장에서 해석한 여성의 모습이다. 그 해석에 오류가 있고, 본질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나는 저자가 다른 성을 지닌 여성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저자의 태도는 어쨌든 지금 대다수의 남성들의 시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저자의 논의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저자의 그런 여성에 대한 열린 마음 자세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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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로파에디아 -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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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의 첫 장을 연 사람은 바로 소크라테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소크라테스는 글을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살아남았다. 바로 플라톤이라는 제자의 저술 덕분에, 우리는 선각자 소크라테스를 알게 됐으며,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을 알게 됐다. 그래서 플라톤의 여러 저술은 서양철학의 시초라고 할 만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플라톤의 저서를 기점으로 철학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고찰한 것은 플라톤뿐 만이 아니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 크세노폰도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책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동시대를 살아간 크세노폰, 그 역시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였고, 스승에 대한 모습을 <회상>이라는 책으로 남겼으며, 플라톤의 대화편과 같은 제목인 <향연> 역시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크세노폰은 여러 저술을 남긴다. 군사학, 승마, 역사서(헬레니카), 법제, 경영론(농지에 대한) 등등 다방면적이고 실용적인 저술을 남긴다. 플라톤이 인식론과 형이상학적 주제를 가지고 철학을 발전시켰다면, 크세노폰의 글들은 그런 주제보다는 다소 형이하학적 고찰로 세상을 바라봤고 그런 시각으로 저술을 써 왔었다.

 

이 책도 그런 크세노폰의 저서 중 한 권이며, 가장 대표적인 고전으로 칭송받는 책이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이 책을 꼽아, '서양에서 최초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라며 극찬을 했다고 한다.

 

책의 내용은 키루스 대제에 대한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인물인 키루스 대제는 페르시아 제국을 강건하게 만든 제왕이었으며, 그의 치적 덕분에 페르시아는 동방의 패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1897년 영국인 고고학자는 에사길라 터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나는 키루스다. 세상의 왕, 위대한 왕, 강력한 왕, 바빌론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세계만방의 왕, 얀산의 위대한 왕, 테이스페스의 증손자, 얀산의 위대한 왕 키루스의 손자, 얀산의 위대한 왕 캄비세스의 아들 키루스다.'

 

이 오만하고, 나르시시즘에 극에 다다른 글귀의 주인공은 키루스 대제였다. 그는 페르시아 왕국을 대제국으로 만든 위대한 왕이었다. 바빌론 지방을 정복하고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던 관용이 있던 왕이었다. 그는 그리스 역사서들과 구약 성서에도 나올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군주였었고, 그가 있어서 페르시아가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크세노폰은 여기서, 페르시아의 위대한 군주를 고찰한다. 이 전기를 통해, 페르시아의 군주의 어린 시절부터 치적을 모두 검토하고 죽음과 결론에 이르기까지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키로파에디아>라는 책 제목은 우리말로 하자면 '키루스의 교육'이라고 한다.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크세노폰은 강력한 리더가 됐던 키루스의 원인에는 '교육'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책 제목과는 다르게, 어린 시절 교육에 대한 논의는 1권에만 그친다. 책은 총 8권으로 이뤄졌는데, 어린 시절과 교육에 대한 부분은 1권에만 국한되어 있다. 나머지 2권부터 8권까지는 키루스가 왕위에 올라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제국을 일궈내는지에 대한 부분이 그려져있다.

 

다만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에 나오는 키루스 대제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지 않다. 이 부분은 크세노폰의 저술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크세노폰의 다른 저작 <아나바시스 - 페르시아 원정기>에서도 똑같은 패턴으로 등장한다. <아나바시스>는 크세노폰이 용병으로 갔다 되돌아온 자전적 회고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소위 지금 말하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같은 성격의 책. 그 과정을 크세노폰은 사실적인 내용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었다. <키로파에디아>도 허구가 섞여 있다. 물론 이 허구의 관점은 지금 서양 역사에서 통사로 받아지고 있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근거해서 평가한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역시 사실 좀 신빙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는데 어쨌든 지금 학계에서는 <역사>에 나온 사실을 진실로 규정하고 있다. 혹여 <역사>가 거짓일 가능성,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어쩌면 <키로파에디아>에서 그리는 키루스 대제가 사실의 모습일 가능성도 있겠다.

 

일단 그런 면에서 보자면 <키로파에디아>는 역사서도 영웅의 전기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소설도 아닌, 그야말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각색된 역사 소설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플라톤의 책과 가장 대비되는 것이 크세노폰의 저술은 대체적으로 '리더십'과 '올바른 자질의 지도자'에 대한 고찰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많다. <아나바시스>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나오며, 특히 이 <키로파에디아>는 직접적으로 키루스 대제를 통해 우리 한 번 올바른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저술 동기까지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어쨌든 서양에서는 이 두 가지 책을 리더십을 배울 사람들은 꼭 읽어야 하는 명저의 반열에 올려다 놓고 있다.

 

올바른 통치자에 대한 논고는 플라톤 역시도 자신의 저서에 정의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국가>를 꼽을 수 있겠는데, 다소 <국가>의 주제가 중구난방, 여러 부분을 고찰하고, 위정자의 대한 부분을 강하게 꼽기보다는, 철학에 대한 고찰, 인식론에 대한 부분, 영혼에 대한 부분 등등 여러 부분으로 주제가 나뉘어서 설명되고 있다면, 크세노폰의 책은 한 가지 주제에 입각하여서 일관되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그리스 입장에서 보자면 페르시아는 닮고 싶지 않은 족속들이다. 정치체제도 다르고, 거기다 페르시아와 대규모 교전도 해 본 입장이기 때문에 굉장히 페르시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이런 글을 쓰는 크세노폰도 많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전제 군주를 옹호하는 듯한 철인정치를 이야기 한 것처럼, 크세노폰 역시도 민주정에 대해 회의적인 감정을 가졌을 법 하겠다. 아마 이 부분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오점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러한 대안으로 크세노폰 역시 옆 나라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크세노폰은 아테네에서 추방된다. 스파르타의 체제를 따르는 반동자라고 지목되어서 추방됐는데, 크세노폰이 스파르타 체제를 옹호하고 이상으로 뒀다는 점도, 잘 살펴보면 민주주의보다는 전제적인 통치에 더 옹호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겠다.

 

<키로파에디아>를 읽으며 느꼈던 점은 키루스 대왕은 다소 인자한 국왕이라는 거리가 멀었다. 냉정한 판단을 주로 하고, 올바른 명성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때론 냉혹하게 때론 비정한 모습도, 때론 부하들에게 모순적인 모습도 보이곤 했다. 동양으로 말하면 왕도와 패도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하는 그런 군주였었다.

 

가장 뛰어난 부분은 군사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점이다. 아무래도 고대의 왕들 중 명군들은 군사적인 계책이나 묘계에 뛰어났는데, 키루스 대제 역시도, 군사들의 심리를 잘 알고 전략과 전술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대부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크세노폰은 주목했겠다. 수사학이 판치는, 소피스트들이 판치는 허세와 허영의 도시 아테네에서 실용보단 명분과 허영에 집착하는 민주정의 맹점을, 키루스의 인생을 통해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를 넘어 그리스 전역을 점령하여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 수 있는 리더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키루스가 받은 교육 중 가장 인상에 깊은 것은, 부왕인 아버지께서 키루스에게, '부하보다 너는 더 인내하고 부하보다 너는 더 양보하는 마음으로 남 위에 서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공부뿐만 아니라 건강한 신체 활동 역시도 중시하였다. 가장 먼저 배우는 덕목은 지식이 아닌 '정의' 와 '자기절제' 능력이었다.

 

키루스는 말이 많았고 수다스러운 아이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과묵하고 말수가 없어졌다.

 

교육을 통해 키루스는 강압적인 충성보다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고민 속에서 때론 냉혈적인 군주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때론 인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조건적인 인자함이나 무조건적인 냉혈한의 모습은 키루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크세노폰의 저작은 당시에 조망 받진 못 했어도, 숱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

 

한니발을 이긴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이 책을 평생 가지고 소장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키루스 대제를 모방하려고 애썼고, 닮으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 그는 위기의 로마를 구했었다. 자마에서 그는 한니발의 군대와 맞서, 승리하였고, 무한한 영광을 조국에 선사했었다. 그 스키피오의 업적 속에는 <키로파에디아>가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 책을 언급한다. 올바른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이 책을 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키루스 대제의 모습을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으로 칭찬했다.

 

책은 다르지만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을 감행할 때, 참고했던 도서였었다. 물론 알렉산더는 이 책을 지리서로 활용했다고 하지만, <아나바시스> 역시, 지도자에 대한 논의가 많은 책이라, 알렉산더는 그 부분들을 숙고했을 가능성도 있겠다.

 

거기다 후대에 몬테펠트로 공작이 '군주의 거울' (군주의 필독서)이라는 이름으로 6가지 책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그 중에 <키로파에디아>가 들어 있다. 나머지 책들은 다음과 같다. 투퀴디테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루타르크의 <영웅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마키아벨리의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카스틸리오네의 <궁정론> 거의 대부분이 현실론적인 책들이 많다. 이 들 중, 가장 시대적으로 앞선 책이 <키로파에디아>다.

 

플라톤의 이상론적 군주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지도자이지만, 플라톤의 철인보다는 지극히 더 현실적인 모습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지금 서구가 자행하고 있는 무조건적인 패권주의들도 생각했다. 기본적 방향은 키루스 대제와 같을지라도, 서구의 패권주의 안에는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힘과 힘으로의 강압적인 이해관계만이 남아 있다. 키루스 대제는 현실적인 군주였지만, 인정이 없는 군주는 아니었다. 책에서 온 백성들은 키루스 대제를 제왕 중의 제왕으로 묘사하고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 모습과 지금 서구의 패권주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어쨌든 서구에서 '리더의 덕목'을 다룬 책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올바른 군주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정리한 책이라면, 이 책은 그 <군주론>에 걸맞는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두 책을 상호 보완적으로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크세노폰의 저작이 많은 한계(사실성)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어쨌든 그의 저서는 숱한 영웅들의 귀감이 됐다. 내가 읽었을 때도 좋은 내용들이 많았고, 그 오랜 고대에서 이런 현실론적인 시각의 저술을 한 크세노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또 한가지 책의 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 책은 그리스 원전번역본이 아니다. 영역본을 바탕으로 해독한 책이다. 따라서 조금 아쉬움이 있긴 했는데, 읽으면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천병희 선생님의 고전 시리즈와 뭔가 표지 디자인이 비슷하다. 의식하고 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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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 우리를 웃게 하는 30가지 유형의 성격들
테오프라스토스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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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책이었다. 고대 고전들, 정평 난 책들은 어느 정도 다 알고 있는 책 들이었는데, 처음 보는 책이었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볼 책은 많았다. 이 책은 저자인 테오프라스토스에 대한 짤막한 지식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미지의 텍스트였다. 하긴 짤막한 지식이랄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뒤를 이어 리케이온 2대 학장이 되어 학당을 번창시켰다는 것, 그리고 메난드로스의 스승이라는 점 그것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학당장을 이어받고, 자연 과학에 몰두를 했다. 그는 새로운 이론을 밝히기보단, 자연 과학의 대중화에 힘썼다. 그래서, 그의 시대에 학당은 굉장히 성공했다고 한다. 자연과학에 몰두한 그였지만, 인간성을 고찰한 이 책 <캐릭터>가 대표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똑바로 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가지지 못한 우리나라라서, 게다가 리비우스의 <로마사> 등등의 중요한 고전들은 아직도 번역되지 않은 우리나라라서, 이런 주목받지 못한 고대 저자의 저작이 번역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반가운 마음에 역자와 출판사를 보니 익숙했다. 크세노폰의 <키로파에디아>를 번역한 이은종씨였고, 그 <키로파에디아>를 출판한 주영사라는 출판사였다. 물론 원전 번역이 아니고, 영역본을 이중 번역한 책이었다.

 

이전 번역본인 <키로파에디아>를 보면서 매끄럽게 읽어나가서, 이번에도 믿고 읽었다. 책은 간단했다. 120쪽의 짧은 분량이었으며,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사서 보기보단, 그냥 서점에 가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정도로 짧은 책이다. 하지만 나는 구매를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기에서 이겨서 선물을 받은 책이다.) 그 이유로는 첫 번째, 나는 책을 웬만하면 소장한다는 원칙이 있고, 두 번째, 일단 내용이 굉장히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두고두고 볼 만한 내용이라서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캐릭터라는 책 제목에서 풍기듯, 인간성에 대한 테오프라스토스의 견해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러나 일반론적인 선한 인간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를 웃게 하는 30가지 유형의 성격들'이라는 것처럼, 흔히 볼 수 있는 부정적인 속성들의 인간들을 30가지 유형으로 나눠 짧게 서술하는 책이었다.

 

그 30가지 유형은 다 읊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가식꾼,아첨꾼, 겁쟁이, 참견쟁이, 눈치 없는 사람,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낭설꾼, 구두쇠, 멍청이, 퉁명스러운 사람, 미신에 빠진 자,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 의심병, 불쾌한 사람, 허영심,수다쟁이, 성가신 사람, 무뢰한, 상냥한 사람, 무례한 사람, 불결한 사람, 조야한 사람, 인색한 사람, 거만한 사람, 허풍쟁이, 과두정의 집정자, 험담꾼, 탐욕스러운 사람, 만학도, 악한 사람.

 

 

이 책은 인간의 부정성을 세분화하여 나눠 쓴 책이다. 그런데 상냥한 사람과, 만학도는 지금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문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 저렇게 번역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번역서 대로 써 봤다.

 

어쨌든 우리에게 다소 긍정적인 어감으로 받아들여지는 상냥한 사람과 만학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면을 주목하기보단 부정적인 면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았다.

 

상냥한 사람은 어쨌든, 줏대가 없고, 자기 의견이 정확하지 않는 부분을 논하고 있었고, 만학도에 대해서는 배움에 열중하기보다는 젊은 청년들의 사교 클럽에서 그 젊은이들을 탐하는 늙은이들을 꼬집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늙은 사람들이 젊은 청년들과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즉 남색이 아주 보편적으로 유행했다. 소크라테스도, 알키비아데스와 그러한 관계였었다. 물론 정신적인 사랑의 측면이 강했지만.) 개인적 사견이지만, 아마 테오프라스토스가 꼬집고 있는 만학도들은 배움의 열의보단, 남색의 육체적인 쾌락만 탐하는 자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책에서 나온 대로 여성과 함께 경쾌한 스텝을 맞춰 춤을 춘다는 대목도 있으니 어쨌든 배움에 목적을 두지 않은 만학도들을 꼬집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지금으로 본다면, 늙은 고위층이, 주점에서 여인들을 탐하는 뭐 그런 부분도 연상됐다.

 

책에서 나온 30가지 유형은 선과 악의 가치로 나눈 것은 아니었다. 쉬운 예로 상냥한 사람과 같은 사람은 어쨌든 악의는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선악의 가치판단은 아니더라도, 테오프라스토스는 살아가는 인간 유형 중 선악을 떠나 부정적으로 비치는 인간들에 대해서 짤막하게 서술을 하고 있었다. 서술상의 특징은 그 유형의 인간에 대해 고찰하는 데에만 그치고 있다. 그런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혹은 그런 인간들을 봤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은 철저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며, 자신 스스로 비치는 30가지 유형의 인간들의 특성만을 깔끔하게 고찰하는 데에서 그치고 있다.

 

짤막한 본문을 읽으며, 분류를 나눈 부분에서 중복되는 유형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사람 인간들이 하는 습성들을 예를 들어 많이 설명하는데, 그 예를 통해서 그 시대 고대 그리스의 생활이나 생활양식 등등을 유추해 보는 재미도 있었었다. 말하자면 텍스트 자체가 주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주제도 재미있었지만, 텍스트 전개에 사용된 비유나 예시를 통해, 그리스 시대 사람들에 대한 생활상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그런 부분도 좋았었다.

 

확실히 책을 보며 느낀 점은, 서양 사람들은 굉장히 세분화를 좋아한다. 이 부분은 동양의 윤리서 공자의 <논어>와 서양의 윤리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차이에서도 느낄 수 있다. 동양의 윤리는 뭔가 큰 틀을 제시하고, 전체적인 입장에서 세부적인 것을 조망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서양의 책들은 동양의 거시적 관점보다는 미시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람의 덕목에 대해 정확하게 세분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논어>에서 공자는 '인'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윤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캐릭터>도 전형적인 서양 철학에서 나타내는 주제의 명확한 세분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부분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목차가 아닐까? 바로 인간을 웃기가 하는 유형을 30가지로 세분화하여 나눈 점 말이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모르겠는데, 여러 인간성을 고찰한 책들이 있고 고전이 있지만, 부정적인 인간 상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책은 이 책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그런 부분에서도 책은 의미가 있었다.

 

다만 비판을 좀 해 보자면, 테오프라스토스가 명확하게 분류한 30가지 인간상이, 인류의 부정적인 인간상 유형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진 않다. 예를 들면 가식꾼에서 나온 부분들이 허풍쟁이에 나온 인간과 많이 닮은 점, 뭐 이런 자잘한 부분들까지 따지자면 이 책은 완벽하지 못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테오프라스토스의 고찰이 놀라운 점은, 고대에 살았던 인간들과 현대에 살았던 인간들의 인간성이 비슷하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기술 발전과 더 나은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지만, 사실 인간성은 많이 나아진 부분이 없다는 점. 그 점을 저자의 논고에서 발견했다. 고대에 발견한 부정적인 인간성에 논고가 지금 이 시대에도 통용되는 부분들도 굉장히 많았다는 점은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기 힘든 것이 아닌 것인가, 그런 회의적인 생각도 잠시나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하게 저 30가지 언급한 것들 중, 나 너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덕목이 몇 가지가 될까? 어쩌면 저 30가지 유형은 우리 자신이 모르고 있는 자아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대입해서 보거나 그랬지만, 의식적으로는 나 자신에 대입하여서 보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이 책에 나온 논고에 나의 부정적인 인간성도 몇 가지가 드러났었고, 나는 그때 많이 부끄러웠었다.

 

작은 텍스트라고 해서, 짧은 텍스트라고 해서, 빨리 보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생각을 달리하고, 다른 관점으로, 작은 내용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읽다가 보면, 오히려 작은 책이 독서 시간을 더 잡아먹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내게 그런 책이었다.

 

책은 사실 굉장히 평이하다. 문체도 어렵지 않으며, 여타 다른 철학자들의, 저서들처럼 복잡한 논고가 있는 책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생활상이나, 습관 등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예시들이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역자는 최대한 주석으로 이 부분들을 보완하고 있긴 하지만... 한계는 있겠다.

 

살아남은 고전, 위대한 고전이라 칭송받는 책들의 공통점은 바로 '인간'을 고찰한 책들이 많다. 윤리, 정치제도, 경제, 문학 등등 모든 책이 다루고 있는 궁극적 주제는 '인간'이다. 이 책 역시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다루는 책이기에 불완전한 논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그런 불완전한 인간 스스로를 보고 쓴 책이기에, 불완전한 매개체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을 다룬 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을 다룬 책은, 인간이 좀 더 나아지고, 완전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상징한다고 본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이 작은 책 역시도, 비록 한계가 있는 책이더라도, 작은 책과 얇은 부피 이상으로, 인간이 스스로를 탐구해가고 더 나아지려는 것, 그런 발전의 가치가 담겨있는 책이라고 생각됐다. 게다가 대중이 관심 가지지 않는 책을 발굴하여 번역하신 역자 분께(비록 중역이더라도, 학계가 관심 가지지 못한 책을 번역하신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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