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보글 가치투자의 원칙 - 왜 인덱스펀드인가
존 C. 보글 지음, 서정아 옮김 / 해의시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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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 투자자에게 있어 펀드는 무척 매력적인 상품이다. 펀드의 장점은 투자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며 개별 주식 투자에 비해 안정성도 높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ETF도 매매가 편리한 펀드 상품의 일종이다. 펀드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은 존 보글이다. 그가 이끄는 뱅가드 그룹은 뱅가드 500 인덱스 펀드(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인덱스 펀드의 시초였다. 존 보글은 워런 버핏과 더불어 가치투자를 지향한 인물이다. 그는 인덱스 펀드를 통하여 투자자에게 개별 주식이 아닌 모든 주식을 소유할 것을 권유했다.

 

 인덱스 펀드의 장점은 여러 가지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을 꼽으라면 바로 '시장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라는 부분이다. 인덱스 펀드는 특정 지수를 중심으로 운영되기에 시장의 흐름과 함께 움직인다. 시장이 좋을 때에는 수익을 얻으며 시장이 좋지 않을 때에는 손해를 본다. 투자자는 머리 아프게 시장을 이기기 위해 종목 선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지수의 움직임에 따라서 수익이 결정 난다. 실제 투자를 해보면 알겠지만 시장을 이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수는 하락하는데 상승하는 종목을 찾기란 쉽지 않다. 또한 개별 주식투자는 기대 수익률은 높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종목분석이나 선정을 잘못하게 될 경우 피해가 막심하다. 그러나 인덱스 펀드의 경우 기대수익률은 낮지만 분산투자 효과 때문에 리스크도 줄어든다.

 

투자의 기본은 분산이다. 그리고 이런 분산투자의 모토를 가장 잘 구현한 상품이 인덱스 펀드다. 매력적인 ETF 상품들이 넘쳐나는 요즘, 인덱스 펀드의 아버지 존 보글의 저서는 펀드의 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펀드란 무엇인지, 펀드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펀드의 역사와 운영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보글은 자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주장은 요즘 유행하는 ETF 펀드가 단기투자의 흐름에서 만들어진 상품이라고 비판하는 부분이다. ETF는 일반적인 펀드에 비해 매매가 자유롭다. 그렇기에 높은 거래회전율을 통해 단기간에 순차익을 남길 수 있다. 따라서 ETF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덱스 펀드와 유사하지만 매매가 자유롭다는 점에서는 단타 매매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보글은 철저하게 장기투자를 고집하며 인덱스펀드 역시도 꾸준하게 투자하고 버티며 수익률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덱스펀드를 꾸준하게 투자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주장은 '시장은 반드시 우상향한다.'는 전제 가 확보되어야 한다. 인덱스 펀드는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지수가 상승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보글이 활약했던 미국의 시장과 최근 미국의 시장은 꾸준하게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한 공황이 일어나거나 서브 프라임, 팬데믹 코로나가 일어났을 때에는 지수가 크게 떨어졌지만 하락 이상의 상승률을 보여주며 '경제대국 미국'의 위용을 과시했다. 한국 증시는 어떤가? 크게 보자면 우상향하고 있지만, 미국처럼 꾸준하게 오르진 않았다. 한국 시장은 변동성이 강하고 그렇기에 지수가 박스권에 횡보한 시간도 많았다. 지수가 불안전하기에 국내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를 가입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다.

 

 보글의 말대로 인덱스 펀드를 사서 끝까지 버티는 전략을 구사하려면 미국의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개인적으로 주 포지션은 단타 스윙 매매지만, 미국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도 분산하여 투자를 하고 있다. 단타나 스윙을 할 때에는 불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데 ETF에 돈을 넣을 때에는 마음이 편안하다. 머리 아프게 가격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차트도 거시적인 흐름만 체크하면 되니까. 보글의 조언도 도움이 됐다. 매매가 자유로운 ETF지만 수익률의 극대화를 이루기 위해서 잦은 매매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시장의 성장을 믿고 꾸준하게 투자를 하는 것이 인덱스펀드의 운용 방법이니까. 펀드에 대해서 심도 있는 배경지식을 가지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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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 뿔에 올라탄 개미 투자법
필스브릿지 지음 / 북오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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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을 시작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치투자로 시작한다. 가치투자의 장점은 뭘까? '안정적'이다. 또한 단타에 비해 HTS나 MTS를 보는 일도 별로 없다. 매수와 매도를 하는 날에만 잠시 들여다볼 뿐, 단타를 칠 때처럼 하루 종일 모니터나 폰을 쳐다볼 필요가 없다. 부업을 하면서 쏠쏠하게 투자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치투자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부가 필요하다. 일반인 입장에서 경제분석을 비롯하여 기업의 재무제표, 회계 등등을 읽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쪽 업계에서 사람들의 연봉은 높지만 이와 비례하여 업무 강도가 살인적이다. 철야 야근은 기본이며, 새벽같이 출근하여 경제와 증시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써야 한다. 물론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전문가 못지않게 신경과 노력을 소비할 필요는 없다. 요지는 경제와 기업을 분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튼 넋 놓고 바라볼 순 없다. 내 돈이 투자된 이상, 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은 필요하다.

 

 기술적 분석을 다룬 책들은 실전과 사례로 풀어낸 책이 대부분이다. 차트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기법 혹은 해석으로 채운 경우가 일반적이다. 반면 가치투자를 다룬 책들은 원론적인 부분에 치중한 책이 많다. 기법이나 사례보다는 투자 철학이나 정신, 태도, 가치관 등등에 치우친 책이 많다. 피터 린치, 워런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 등등 유명한 거장들의 가치투자 고전들도 무척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원론과 현실의 갭을 매우는 것은 결국 투자자의 기량과 역량에 달려있다. 그래서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투자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으로 도약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What과 Why는 알겠는데 How를 모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가치투자를 표방한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이나 증권사의 추천을 받고 묻지 마 투자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공부를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거나, 공부를 해도 막상 현실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막막하고... 이렇다 보니 전문가나 주변에서 추천하는 대형주를 매수하여, '망하진 않을 거야.'라는 희망 아래에 적금 넣듯 꾸준하게 투자한다. 주가의 변동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존버하면 수익이 생기겠지. 나는 가치투자자니까'라는 믿음 하나로 우직하게 투자를 이어간다. 그러나 이런 투자는 가치투자가 아니라 꾼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회자되는 '기도투자'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가치투자를 이해하고 실전에서 제대로 활용하는 투자자는 대형주라고 해서 무조건 투자하지 않는다. 그들은 회계와 공시를 참고하여 엑셀로 기업을 분석하고 정리한다. 어느 가격에 어떻게 진입을 하고 어느 퍼센트까지 수익을 내고 빠질지 자신만의 기업가치를 측정하여 철저하게 계산한다. 쉬운 것 같아도 결코 쉽지 않다.

 

 분량이 방대한 가치투자에서 개인투자자를 위해 최소한의 지식을 추려주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려주는 책은 흔하지 않다. 이 책의 장점은 구체성이다. 가치투자의 철학과 원론, 그리고 현실 사이의 공백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가치투자자가 기업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어떤 지표를 참고해야 하는지, 주가는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기업의 미래 성장은 어떻게 예상해야 하는지, 엑셀로 분석 툴을 어떻게 만들어서 사용해야 하는지 등... 초보 가치 투자자라면 궁금하고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속 시원하게 풀어주고 긁어주는 책이다. 단타를 칠 시간이 나지 않는 직장인이나, 가치투자를 하고 싶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 고민 중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단타 중심의 거래를 지향하고 있지만, 저자의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주식과 한국 주식의 비율, 엑셀로 기업분석 툴을 만드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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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인베스팅 The Investing - 개인투자자들에게 10루타 잭팟을 선사한 ‘반전율’의 모든 것!
박완필 지음 / 트러스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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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철학을 세우는 것이다. 가치투자든, 단타든, 개량분석이든 투자 기법을 막론하고 투자자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투자철학'이다. 자기만의 철학이 없는 투자는 여러 외부 요소로 흔들릴 요지가 다분하며, 종국에는 뇌동매매로 이어진다. 주린이시절 이런저런 기법들과 대가들의 경험을 공부하는 것 역시 최종적으로 자기만의 투자 철학을 세우기 위한 일환이다. 자기만의 기준과 철학이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시장에는 '명확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수의 투자법을 그대로 실천한다 하더라도 수익률까지 기대할 순 없다. 전 세계에 사는 인구들의 유전자가 모두 다르듯, 주식 시장에서도 개개인마다 성향이 다르기에 종국에는 자기의 기법으로 수익을 내야 한다.

 

 주린이 시절은 그래서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꿰야 하기 때문에 주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했으면 최대한 많은 기법들을 실전에서 테스트해 봐야 한다. 가치 투자도 해 보고, 단타도 해 보고, 스윙도 해 보고, 유튜브에 고수들의 기법들도 따라 해보고, 이색적이고 특이한 기법들도 실천해 보고...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소액으로 테스트해 본 뒤 최종적으로 자기에게 가장 수익률이 좋은 기법을 추려야 한다. 이후 이를 중심으로 자기만의 기준과 철학을 설정하면 비로소 '주린이' 딱지를 뗄 수 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가치투자로 주식에 입문한다. 그러다 단타를 알게 되고 이 두 가지 기법 중 하나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가치투자는 기업분석을 메인으로 하는 '기본적 분석'이고 단타는 차트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기술적 분석'이다. 즉 투자자의 70%는 기본적 분석이냐 기술적 분석이냐를 두고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굳이 기본이냐 기술을 명확하게 선택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기본적, 기술적 분석을 절묘하게 섞어서 자신만의 투자기법을 만들 수도 있다. 물론 두 가지 기법은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철학도 확연하게 이질적이지만, 경제에 대한 지식과 내공이 상당하다면 두 가지 기법을 취사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기관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반전율이라는 기법을 만들었다. 반전율이라는 단어만 봐서는 기술적 기법에 치우친 것 같다. 말 그대로 반전율이란 주가가 오르다가 어느 순간 내리는 시점, 혹은 그 반대로 주기적으로 내리다가 상승세로 전환되는 시점을 뜻한다. 상장폐지를 제외한다면 어느 주식이든 오르고 내리는 것은 일반적이다. 추세 역시 마찬가지다. 오르는 추세에 있는 주식이라면 한동안 그 주식이 오를 가능성이 높고, 내리는 추세를 타고 있다면 당분간은 지속적인 하락세가 이어진다. 핵심은 밑도 끝도 없이 오르거나 내리는 주식은 없다는 점이다. 오르다 보면 내려오기 마련이고 내리다 보면 또 올라가기 마련이다. 이 추세 반전의 타이밍을 포착하여 투자를 하게 된다면 커다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어느 주식이든 오르고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아무 주식에 진입하여 반전율에 의거하여 투자를 해야만 할까? 여기서 저자는 기본적 분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아무 주식이나 반전율이 적용되긴 하겠지만,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오를만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치투자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탑다운(거시경제를 바탕으로 기업을 분석하는 기법, 위에서 아래로)과 바텀업(특정기업의 가치를 중심으로 거시경제로 나아가는 분석, 아래에서 위로)을 골고루 활용하여 반전율이 일어날 확률이 높은 주식을 분석하여 투자한다. 따라서 저자의 투자철학을 굳이 정의하자면 기본적으로는 가치투자를 지향하지만 진입과 탈출은 철저하게 반전율에 의지하고 있다.

 

 가치투자는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 탑다운과 바텀업 둘 다 분석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반전율'을 강조하고 있지만, 핵심 포인트는 반전율보다 저자의 탑다운, 바텀업 분석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관투자를 비롯하여 투자와 경제에 대해서 여러 경험을 쌓은 저자이기에 명확한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게 본 책이지만 기대가 커서일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책 초반에 카페 회원들의 수익 공개와 반전율에 대한 광고 지면이 생각보다 많다. 굳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광고로 채워야 했을까. 차라리 저자만의 탑다운, 바텀업 분석 기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풀어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 책은 반전율의 '입문서'라고 하는데, 알아보니 실전 적용편을 더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음 책에서는 노골적인 광고보다는 투자기법이나 분석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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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태종실록 별책 - 태조·정종·세종실록에서 찾은 태종 이방원 이한우의 태종실록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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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조실록》의 이방원 - 몸소 앞장서다.

 

이방원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시기가 바로 《태조실록》 시절이다. 이 시기 이방원의 모습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조선을 개창하고 이성계가 왕이 되는 굵직한 사건에는 항상 이방원이 있었다. 실록에 이방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시절 가족들을 대피시키면서부터다. 이때 이방원은 가족들을 스스로 호위하면서 "최영은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니 우리는 무탈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방원이 말한 대로 가족들은 무사했었다.

 

이후 정몽주를 격살하는 일, 조선과 명나라의 외교 문제 등등 굵직한 사건마다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태조실록》을 볼 때 고려해야 할 부분은 《태조실록》이 이방원의 집권기에 저술됐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객관성을 확보한 기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객관성'을 가질 순 없다. 역사는 과학이 아니니까.

 

《태조실록》에서 가장 주관적으로 기록된 부분은 무인정사, 즉 1차 왕자의 난이다. 이방원은 자신의 정적인 정도전을 급습하였고, 궁궐을 장악하여 쿠데타에 성공한다. 문헌에 나온 정도전의 모습은 무척 비굴하다. 그러나 정도전의 저서와 《태조실록》의 여러 부분들을 고려해 볼 때 그가 이방원에게 목숨을 애걸했을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승자의 기록이다. 사관이 아무리 객관적인 기록을 쓴다 하더라도 왕의 치부를 함부로 드러낼 순 없다. 태종은 쿠데타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했고, 사관들은 강력한 왕권을 가진 지존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기록은 이렇게 탄생했다.

 

아무튼 이 시기의 이방원은 얌전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그는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와 같았고, 그랬기에 그의 주변에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스승과도 같은 정몽주, 정도전과 갈라섰고 이복형제들을 참살했으며 아버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대권을 잡았다.

 

2. 《정종실록》의 세자 이방원 - 지존을 위한 준비 기간

 

 이방원은 치밀했다.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는 결국 왕위 서열을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목표인 왕좌가 눈앞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형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표면적으로는 후퇴하는 것이지만 이보, 삼보 전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종 역시 야심가인 동생의 요구를 무시할 순 없었다. 그랬기에 세자 자리에 이방원을 책봉해 스스로 권력에 욕심이 없음을 공표했다. 이 시기 조정은 이방원의 사람들로 채워졌고, 권력의 실세는 왕이 아닌 세자였다.

 

 정종시기의 큰 사건으로는 2차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이방간의 난과 사병 혁파다. 사병으로 쿠데타에 성공한 이방원이기에 군권의 분산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방간이 군사를 일으킨 것도 따지고 보면 사병을 혁파하지 않아서였다. 방간의 군사를 진압하면서 방원은 심적으로 많이 착잡했을 것이다. 1차 왕자의 난 때에 죽인 동생들은 배가 달랐지만, 방간은 자신의 동복형제였기 때문이다. 난을 진압한 뒤 방원은 세자 자리에 오르게 되고 사병을 혁파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이방원은 공부에 열중했다는 점이다. 세종이나 성종, 정조와는 다르게 태종은 취임 이후 경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세자 시기에는 경연에 열중했는데 최고의 제왕학 교제인 《대학연의》를 주로 읽었다. 실록에 나온 태종의 독서 스타일은 무척 독특하다. 세종의 경우 정독을 고집하는데 반해 태종은 핵심과 포인트 위주로 책을 접근했다. 무인 이미지가 강한 태종이지만 그는 당대에 가장 뛰어난 문사이기도 했다. 조선왕조를 통틀어 과거에 합격한 이력이 있는 왕은 태종뿐이다. 세종처럼 매일 책을 끼고 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독서를 등외시 하진 않았다. 자기가 읽고 싶거나 필요한 책은 꾸준하게 봤으며, 당대 최고의 학자들과 학술 논쟁을 할 때에도 밀리지 않았다. 아무튼 공부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방원이 세자 시절에 경연에 열중이고 독서에 집중했다는 사실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3. 《세종실록》의 상왕 이방원 - 세종의 든든한 후견인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나 세종을 든든하게 후견한다. 이 시기 표면적으로는 세종이 왕이었지만, 실질적인 실권은 태종이 가지고 있었다. 태종은 권력의 핵심인 인사권과 군사권을 놓지 않았고, 세종 역시 모든 정치적 의견은 태종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 시기 중요한 사건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세종의 장인 심온의 처결이고 또 하나는 대마도 정벌이다. 어느 것 하나도 세종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던 일들인데 태종은 아들과 조선을 위해 다시 한번 악역을 자처했다.

 

 심온은 세종이 충녕대군으로 관심을 받을 때부터 교만하게 행동했다. 태종의 심복인 박은이 몇 번 눈치를 줬지만 무시하였다. 박은의 말은 사실상 태종의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심온은 미래권력에 가까운 충녕의 장인이라는 지위를 맹신했다. 이후 사위가 왕으로 책봉되고 교만의 강도는 더욱 강해졌다. 새로운 실세 심온에게 관료들은 빌붙기 시작했고 그런 움직임은 외척을 강하게 경계했던 태종의 불안을 사기에 충분했다. 온화한 세종의 성격으로 볼 때 장인인 심온을 강하게 처벌할 순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욕심 많은 장인에게 휘둘려 뜻대로 정사를 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랬기에 태종은 자신의 아들을 흔들 수 있는 조선 국왕의 권위를 흔들 수 있는 심온을 처결하기로 결심했다.

 

 대마도 정벌도 마찬가지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왜구를 소탕할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군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종이 정벌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마도 정벌의 결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한데 핵심은 이 정벌을 기점으로 왜구들의 소행이 100년 동안 잠잠해졌다는 점이다. 이렇듯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나서도 세종과 조선을 위해 힘썼다. 세종의 권력을 뒤흔들 수 있는 요소들을 제거했으며, 왜구를 정벌하여 대외적인 위협도 제거했다. 그랬기에 세종은 안정적이고 탄탄한 권력을 바탕으로 조선의 혁신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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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18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18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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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 틀 무렵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태종의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왕좌에 오른 뒤 가장 불행했던 순간이 바로 재위 18년이었기 때문이다. 양녕의 일탈 문제로도 머리가 아픈데, 여기에 정점을 찍은 것이 성녕대군의 죽음이었다. 성녕대군은 태종과 민씨의 막내아들로 유독 부모의 사랑을 극진하게 받은 자식이었다. 성녕의 죽음 앞에 태종은 절규하고 마음과 멘탈의 안정을 위해 개경으로 떠났다.

 

 태종이 이렇게 가슴이 찢어질 때에도 세자인 양녕은 바뀌지 않았다. 성녕이 죽었을 때에는 활쏘기를 하였고, 어리와 관계는 계속되어 아이까지 가졌다. 장인인 김한로는 세자를 위해 어리를 궁으로 보내줬고, 이들의 밀애는 이어졌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태종은 또다시 격노했다. 세자를 바르게 이끌어야 할 사돈인 김한로가 오히려 세자의 일탈을 돕고 있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신하들과 외척에게는 가혹한 태종이었지만 세자 양녕에게는 무척이나 다정했다. 일탈하는 아들의 마음을 되돌리고자 주변을 내치고 회유하고 타이르는 등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세자의 반성은 이어졌고 태종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또다시 믿었다. 그러나 세자는 한양에 도착하자마자 어리를 찾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태종은 분노했고, 세자는 어리가 아닌 숙빈을 뵈려고 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것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태종은 또다시 양녕을 믿었다. 그러나 분노한 양녕은 태종에게 항의성 서신을 보내는데 이것이 세자 교체의 도화선이 됐다. 양녕의 서신을 압축하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아버지는 숱한 여자를 거느리면서 왜 나 보고만 그러냐, 또 하나는 어리를 잃게 된다면 훗날 좋지 않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미래의 왕은 자신이니 잘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태종은 진노했다. 저를 위해 온갖 악역을 다 맡았건만 돌아온 것은 아들의 협박이었다. 중전의 반대가 있었지만 태종의 마음은 이미 싸늘했다. '저런 놈을 왕위에 올려서는 안 된다. 어떻게 기틀을 잡은 조선인데.'

 

 태종은 심복인 박은과 측근들과 모의 끝에 세자를 교체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양녕을 폐한 뒤 끝내 신료들 앞에서 진심 어린 눈물을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앞날은 밝아야 한다. 태종은 충녕을 왕세자에 올린 뒤 얼마 되지 않아 은퇴 선언을 한다. 신료들과 세자는 영문을 모르고 궐 앞에서 양위 불가를 외쳤지만 태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그렇게 그는 18년간 탔던 호랑이 등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흔히 태종을 두고 권력의 화신이라고 이야기한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아버지와 형제에게도 칼을 겨누고 피를 보는 폭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태종은 권력의 화신이었다.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처단했다. 공신은 물론이요 처가, 사돈까지도 박살 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태종이 왜 그렇게 권력에 집착을 했느냐이다. 사람들은 권력욕이 있다는 것을 사리사욕과 결부 지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권력을 탐한 지도층은 사리사욕과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그럼 태종은 어떨까?

 

 그는 권력만을 쫓지 않았다. 권력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강대한 조선이었다. 아버지 이성계가 이룩한 신생국가 조선의 기틀을 다잡기 위해서는 강한 권력이 필수적이었다. 그랬기에 태종은 옥좌에 오른 이후 이후 한 번도 자신을 위해서 사적으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가 단순하게 권력을 집착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양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태종은 세종을 세자로 책봉한 뒤 재빠르게 양위를 한다. 이 시기 태종의 권력은 막강했다. 나라의 기틀도 다잡았고 신하들도 충성을 다했다. 바꿔 말하면 그가 은퇴를 선언한 시기는 그의 권력이 정점을 향하던 시기였다. 한참 잘나가는 시대에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세간에서 말하듯 태종이 권력만을 탐한 지도자라면 권력의 정점에 퇴임을 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오히려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태종의 양위는 조선 역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범적인 케이스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이름난 조선의 명군들도 양위를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왕에게 있어 세자는 권력의 측면에서 해석했을 때 후계자이기도 하지만 경쟁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선조는 공을 이룬 광해군을 질투하여 왕위를 넘겨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뿐일까? 조선 후기의 명군이었던 숙종과 영조도 권력욕을 포기하지 못하고 몸이 상할 때까지 장기집권을 고집했다. 그러나 태종은 가장 강력한 시기에 권력을 아들에게 양도했으며, 스스로 아들의 후견자가 되어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런 양위 사례는 조선을 통틀어 찾아볼 수 없으며, 세계의 어느 왕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범적인 모습이었다.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실로 이미 충분하다."

이 말 한마디에 은퇴를 선언한 태종의 진심이 모두 들어 있었다.

 

태종이 왕좌에 오른 것은 조선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태종이 양위를 한 것 역시 조선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양녕을 폐함과 동시에 새로운 국왕인 세종을 뒤에서 후원하려는 의도였다. 충녕은 무척 똑똑하지만 정치는 똑똑하다고 잘하는 것이 아님을 태종은 잘 알고 있었다. 정치는 경험이었고 어린 세종은 노회한 신료들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랬기에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나 아들에게 정치를 직접 가르치고자 하였다. 물론 조선의 왕들이 일상적으로 행했던 대리청정 시스템으로 훈육할 수도 있었지만 태종은 실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기에 최고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새로운 조선과 성군 세종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러한 태종의 발 빠른 결정 덕분에 한민족은 세종대왕이라는 귀중한 유산을 가지게 됐다.

 

 태종 이방원. 그의 행위를 무조건적으로 칭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18년이라는 집권기 내내 그를 관통한 것은 '부강한 조선'이었다. 그는 조선을 위해 왕이 되었으며, 조선을 위해 왕좌에서 내려왔다. 그는 조선을 위해 살았고 조선을 위해 죽었다. 조선을 위해 사사로움을 끊어냈고, 가족, 아들과도 등을 져야 했다. 그가 걸었던 길은 오해도 많고 고단했으며 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소명을 잊지 않고 묵묵하게 시대의 악역을 감당했다. 공적인 삶이 어떠한 것인지, 큰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진정한 리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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