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크리스마스이브, 시내 대형 서점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 관련 책을 살피다 오랜만에 인문학 코너로 갔다. 주식을 시작하고 난 뒤 경제 서적만 읽었는데 그날따라 인문학이 그리웠다. 그렇게 인문학 코너를 가서 어떤 신간이 나왔다 기웃거리며 매대를 살피던 중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책은 오늘 소개할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를 《군주론》의 저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주론》은 그의 초기작에 불과했다. 《군주론》 외에도 《로마사논고》라던가 《전술론》과 같은 다양한 저서를 저술했다. 《피렌체사》는 마키아벨리의 마지막 저서다.
어느 한 사상가를 평가할 때에는 그의 작품을 두루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마키아벨리와 같이 상반되는 내용을 저술한 사상가라면 그의 저서 전반을 더욱 철저하게 고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프레임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기서 조금 나아간다면 중기작인 《로마사 논고》를 토대로 공화주의자로 규정한다. 과연 그는 절대 권력을 옹호하는 군주정을 지지한 것일까? 아니면 시민과 의회가 중심이 된 공화정을 지지한 것일까?
해답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는 그의 말년작이자 죽기 직전에 저술한 《피렌체사》를 필수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피렌체사》의 번역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키아벨리를 다룬 평전이나 저작에서도 《피렌체사》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언젠가는' 번역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는데 기대가 가물가물해질 때쯤에서야 비로소 번역본을 볼 수 있었다. 서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피렌체사》의 번역이야말로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만큼 이 책의 출간은 나에게 있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피렌체사》는 마키아벨리가 조국이자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인 피렌체의 역사를 정리한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책을 열면 피렌체의 역사만을 다룬 저작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책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제국 중 하나인 로마의 몰락에서 시작한다.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이 나뉘는 것을 기점으로 여러 이민족들의 급습, 그리고 도시국가로 찢어지는 서로마 제국의 흐름을 명료하게 정리한다. 이탈리아가 찢기는 과정에서 이민족의 침입을 비롯하여 정치권력에 굶주린 교황, 그리고 외세를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려는 세력들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피렌체는 공화정으로 운영됐지만, 내부의 분열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로마의 공화정은 건전한 갈등과 상호 간의 존중을 바탕으로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왔지만 피렌체의 공화정은 서로를 파멸시키는 극단적인 모습만 되풀이됐다. 권력을 잡은 귀족들은 사치와 향락을 부렸고 이를 빼앗은 평민들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이를 마키아벨리의 개념을 빌려 표현해 보자면 "로마의 공화정은 비르투가 있고, 피렌체의 공화정은 비르투가 결여됐다."고 할 수 있다. 비르투란 남성적, 역량, 역동적, 실력, 적극적 등등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바람직한 군주는 비르투를 갖춰야 한다며 적극 강조했다.
공화정의 어수선함은 메디치가의 집권으로 일단락된다. 피렌체에서 권력을 장악한 메디치가는 코시모 데 메디치를 기점으로 하여 로렌초 데 메디치 시절에 절정을 이룬다. 이 시기 피렌체의 정치제도는 사실상 메디치에 의한 군주정으로 바뀌게 됐다. 책은 로렌초 데 메디치의 죽음과 더불어 다가올 혼란에 대한 예고로 끝맺는다.
책을 읽으면서 마키아벨리에 대한 의문증을 풀 수 있었다. 마지막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피렌체사》를 완독하고 나서야 그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미약하나마 알 수 있었다. 주관적인 생각을 피력해 보자면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정체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하다. 물론 그가 공화정에 기울어져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공화정보다 훨씬 우위에 둔 가치는 '조국 피렌체의 번영'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보다 조국을 사랑한 애국자였다. 그럼 구체적으로 '조국의 번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이를 《피렌체사》 1권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제국 로마의 부흥을 꿈꿨다. 그렇기에 《피렌체사》의 시작을 로마제국의 몰락에서 시작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가 로마시대를 동경했다는 사실은 중기작인 《로마사 논고》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군주론》을 포함한 여러 저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풀어보자면 조국인 피렌체사 주축이 되어 로마제국의 모태인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또 다른 제국으로 발돋음하길 간절하게 바란 것으로 보인다.
몰락한 제국의 부활을 꿈꾸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두 가지 통치론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군주론》으로 군주제를 현실적으로 제시했다. 또 하나는 《로마사 논고》로 바람직한 공화정에 대한 모습을 담았다. 물론 그는 군주정보다 공화정을 '개인적으로' 지지했지만, 지독히 현실주의자인 그에게 있어 바람직한 군주정이 들어선다면 차선의 선택으로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현실주의자의 관점으로 볼 때 정치란 최선의 선택이 베스트지만 최악을 모면하고 차선의 선택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말년작인 《피렌체사》에는 어떤 정체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제3의 시각을 유지하면서 피렌체의 공화정과 군주정의 장점과 문제점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피렌체사》를 읽으면서 떠오른 책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리비우스 로마사》고 두 번째는 《로마제국 쇠망사》다. 이 중 서술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리비우스 로마사》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부분은 《로마제국 쇠망사》와 비슷하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신생 도시국가인 로마가 바람직한 공화정을 통하여 세계 최대 제국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담은 고전이다. 로마와 피렌체는 변방의 소도시로 시작하여 공화정이 들어섰고 내부적으로 권력 다툼이 있었다는 점은 비슷하다. 그러나 한쪽은 갈등이 발전의 촉매가 되었으나 한쪽은 파멸로 몰아갔다. 한쪽의 귀족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면 다른 한쪽의 귀족은 탐욕만이 가득했다. 한쪽의 평민은 공동체의 미덕을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면 다른 한쪽의 평민은 무질서했고 분열만을 내세웠다. 그렇기에 로마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뒤 뻗어나가 제국으로 변모했고, 피렌체는 도시국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리비우스 로마사》와 《피렌체사》는 서술 방식도 비슷하다. 리비우스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책을 저술했지만 주요 인물들의 발언이나 선동에 대해는 자신만의 수사학적 기교와 상상력을 더하여 생동감 있게 포장했다.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 또한 《피렌체사》의 역사적인 인물들의 언변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신념, 이념을 자연스럽게 흘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서술적 유사함은 사마광의 《자치통감》이 공자의 《춘추》의 춘추필법을 모방하고, 반고의 《한서》가 사마천의 《사기》의 기전체 형식을 모방한 것을 연상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나라와 세력, 그리고 인물들이 나온다. 처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는 수많은 집단의 등장에 혼란스러울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러 세력들의 이합집산 합종연횡의 복잡한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부담과 피로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역사도 기억 못하고 있는데 하물며 이탈리아의 중세 시대 소도시의 역사라니... 마키아벨리가 쓴 책이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을 보는 독자는 두 부류일 것이다. 첫 번째는 이쪽 관련된 전공자일 것이고, 두 번째는 관심이 있는 일반인일 것이다. 전공자야 알아서 잘 읽을 것이 뻔하니 논외로 치고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이 책은 수험서가 아니다. 국사 교과서처럼 달달 암기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핵심적인 키워드나 흐름을 중심으로 독서할 것을 추천한다. 그럼 이 책의 핵심적인 키워드나 흐름은 무엇일까? 바로 '분열'이다.
책은 철저하게 분열을 다루고 있다. 제국의 분열, 이민족의 침입 이후 이탈리아반도의 분열로 인한 도시국가들의 세력화, 교황을 따르는 귀족과 황제를 따르는 귀족의 분열, 귀족과 평민의 분열, 평민과 평민의 분열, 평민과 하층민의 분열 등등... 이런 과정에서 나오는 수많은 집단과 세력들을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다. 큰 틀에서 피렌체의 역사는 분열을 거듭했고, 그랬기에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다는 점을 중심으로 읽는다면 한결 수월할 것이다. 피렌체의 분열을 보면서, 로마의 분열과 비교하게 되고, 나아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분열도 생각하게 됐다. 공동체의 발전보다 탐욕과 광기, 포퓰리즘으로 일관하는 오늘날 정치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갈등과 분열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갈등과 분열이 있기에 다양한 시각이 생기고 특정 권력의 독재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법론이 아닐까. 갈등과 분열을 하더라도, 대의는 잊지 말아야 한다. 공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감정과 반감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앞서 생각해야 한다. 상대가 나보다 더 나은 대안을 가지고 있다면 싸울 것이 아니라 양보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최소한의 미덕이 있어야 갈등과 분열이 사회에서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결국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비르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주정이니 공화정이나 결국은 올바른 비르투를 가진 집단이 집권을 해야 공동체가 번영한다. 피렌체의 공화정에는 비르투가 없었고, 로마의 공화정에는 비르투가 있었다. 운명을 상징하는 포르투나는 인간의 영역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고 그것은 비르투를 키우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렇기에 마키아벨리는 헌정한 《군주론》을 통하여 메디치의 집권자가 비르투를 갖춘 지도자가 되길 희망했고, 《로마사 논고》를 통하여 루첼라이 모임을 주도하는 미래의 씨앗들에게 비르투를 바탕으로 한 공화정 체제를 강조했다. 그리고 《피렌체사》를 통해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분열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비르투가 없는 집단은 어떤 정체(설령 그것이 군주정이든 공화정이든)를 가지더라도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역자와 출판사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다. 추천사의 김상근 교수가 우려한 것처럼, 이 책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중요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문화적인 장벽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애독할 것 같진 않다.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담은 책이지만 주석과 지도 삽화 등을 통하여 독자의 이해를 최대한 도우려고 한 부분도 눈에 들어왔다.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지만 상업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깊이 있는 책들은 기피하는 분위기 속에서 출간된 책이라 더욱 반갑다. 책을 번역하고 출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런 불씨가 조금씩 모여서 대한민국의 인문학 인프라를 폭넓고 깊이 있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무튼 이 자리를 빌려 번역하시느라 고생하신 역자, 그리고 이쁜 책을 만드느라 편집한 출판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부디 많은 독자분들이 이 책을 접하고 오늘날 공동체의 방향에 대해서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역자의 약력을 살펴보니 문학과 관련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차기작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출간할 예정이며 《로마사 논고》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에는 마키아벨리의 문학 작품들과 서간집 등등을 먼저 출간할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다. 시중에 마키아벨리의 정치서적은 많지만 문학 작품은 조명되지 않았고 번역도 되지 않았다. 문학과 가까운 역자이기에 마키아벨리의 문학 작품들의 번역에 있어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대악마 벨파코르》나 《만드라골라》 등등을 묶어서 나온다면 의미 있는 역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차후 서점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