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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ㅣ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한 마디로 압도당했다. 한 인간의 지성으로 인해 이렇게까지 내면이 흔들린 적은 정말 오래간만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대상은 바로 이 책의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 책은 굴드가 썼던 자연학 에세이에서 35편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낸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다소 에세이라는 장르가 주는 가벼움과, 과학이라는 장르가 주는 무거움이 상호 작용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지만, 굴드는 이 두 미묘한 관계를 적절한 글 솜씨로 풀어나가며 전개하고 있다.
일단 솔직하게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사실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것은 전반적으로, 그가 주장하는 과학 이론에 대한 무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인문 사회 철학 쪽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이런 자연학이나 과학 등이 쥐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저자가 주장하고 풀어 내고 있는 다양한 이론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부분적으로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그런 과학에 대한 무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주장하는 사실을 떠나, 과학적 이론을 떠나서, 글을 전개하는 방식에서 매력을 느꼈으며, 두 번째 이유는 그의 박학다식한 모습에서 큰 놀라움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이 쓴 글을 많이 보진 않더라도, 사실 여러 작품은 아니더라도 몇몇 유명한 작품들은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가령 <코스모스> 라던가 <이기적 유전자> 등등의 책들을 봤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다른 책들을 찾아봤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비전공자가 보기에는 장벽이 너무 컸었다. 그래서 사실 과학이라는 주제는 내 독서 생활에서 아킬레스건이었음을 솔직하게 밝힌다.
이따금 나는, 여러 인문 편향적인 독서가들의 글들을 봤는데, 항간에 논란이 된 고승덕을 비롯한, 홍정욱 등의 저명한 인사들이 쓴 글에서 '저도 과학이라는 주제에 대한 글을 피합니다.'라는 구절을 발견했었다. 그때의 안도감이란, 나만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안도감에 지금까지 과학을 외면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 책은 그런 나의 과학에 대한 무지에 반성을 들게 해 준 책이었으며, 그 옛날 어린 초등학교 시절, 과학 전집을 처음 받았을 때, 흥미롭게 봤던 그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 책이었었다. 통속적인 과학 저술들이 주는 어려움 속에서, 과학을 멀리하게 됐는데, 굴드는 이 책의 서문에서부터 대중 저술에 대한 긍정성을 이야기하며 책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설령 대다수가 형편없고 자기 잇속을 차리는 서적들이라 하더라도, 대중 저술이라는 장르 자체를 무효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싸구려 연애' 소설이 범람했어도, 위대한 소설가들이 다룬 사랑이라는 주제 자체가 배척된 적이 있었는가."
캬~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래, 지금까지 과학이 대중에게 어렵게 인식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너무 어려운 개념을 현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중 저술을 내세운 이 책은 쉬운 책일까 과연? 굴드의 이 책은 보통 독자들이 보기에 버겁지 않을까? 솔직히 이 책도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중의 무서운 책들에 비해 굴드의 글은 친절하다. 책을 읽으면서 과학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됐다.
굴드의 과학 에세이가 가장 돋보이는 것은 서술 방식에 있었다. 가령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작은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며 에세이는 시작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이 이야기를 하는 걸까 하는 관심과 함께 굴드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맨 처음 시작했던 작은 이야기는 잊히기 마련, 그런 찰나에 굴드는 중심적인 논제를 주장하면서 작은 이야기와 이어왔던 이야기들, 그리고 중심 논제에서 공통된 속성을 뽑아내며, 왜 이렇게 이야기를 진행했는가를 설명한다.
정말이지, 과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설명할 때, 보이는 그 딱딱함이 굴드의 글에는 없었다. 그래서 거부감 없이 몰입할 수 있었었다.
또 한 가지는, 아까 말했듯 그의 글에서 통용되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다양하다. 자신의 전공인 과학(진화론)을 비롯한 문학, 신학, 스포츠, 사회현상, 교육, 음악, 예술, 그리고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언어학에 대한 지식. 과학자라는 직업은 편견상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몰두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굴드는 그런 과학자라는 모습을 여김 없이 깨버린다. 다양하고 박식한 지식, 내가 알고 있는 개념들, 인문학 지식들을 이용해 논의를 전개해갈 때, 그의 글을 읽어나가며 정말이지 지적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신기한 생물들의 이야기,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이야기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동물 이야기였다. 특히 20번째 에세이 - 어쩌지, 잘 못 해낼 것 같아 - 의 주인공, 새끼를 위 안에서 키우는 개구리, 이야기에서 그 옛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곤충이 변태 되는 과정을 담은 그림책을 보던 동심의 어린아이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굴드가 스스로 가장 잘 썼다는, 21번째 에세이도 흥미로웠다.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부분, 두 부분을 상징하는 과학자들의 엇갈린 운명이 흥미진진하게 서술됐다. 비전공자가 봐도 이해하기 되도록 쉽게 쓰려고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어렵긴 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첫 번째 에세이가 재미있었다. 내가 아는 역사적 지식을 통해, 진화론에 대한 설명, 그리고 나아가 우연이라는 요소의 중요성으로 확장하는 그의 글쓰기에서, 박학다식함과 매력적인 전개에 그야말로 감동했었다. 일전 <정약용 평전>을 리뷰하면서 때론 역사가 배출하는 인간 중에서 필요 이상으로 다방면에 박식한 사람을 낸다고 했고, 그런 사람이 정약용이라고 했는데, 굴드 역시도 그런 사람임을!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제목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역시 공룡의 명칭에 대한 논쟁적인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로, 공룡을 좋아했던 나(아마도 모든 사람이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역시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그다음 에세이인 공룡 광풍을 보면서 굴드는 공룡 광풍에 빗대어 미국의 과학 교육 과정에 대해 통렬히 비판한다. 놀라운 점은, 그는 이상적인 과학 교육에 대한 나라로 한국을 예로 든다.
'한국은 교육, 특히 수학과 물리과학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뉴욕타임즈>>는 한국의 과학 교육을 다룬 기사에서 9세 소녀를 인터뷰하면서 그녀의 개인적인 영웅이 누구냐고 물었다.'
등등 한국의 과학 교육에 대해 굉장한 칭찬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온 시기는 1991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2014 년이다. 그 사이 과연 우리의 과학 교육은 발전했는가? 나는 이런 의문에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저주의 (나는 이렇게 명명하고 싶다.) 7차 교육과정의 시작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종례의 6차 교육과정에서는 수능 시험에 계열을 불문하고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모두 시험을 봤었다. 국사와 공통과학은 필수 영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7차 교육과정에 오면서, 문과 학생들은 사회 탐구만 시험을 보고, 이과 학생들은 과학만을 시험에 본다. 즉 전문화를 이루겠다는 국가의 방침인데, 이런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은 대학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7차 이래로 우리나라의 학구열을 나날이 높아지지만 우리는 그만큼 더 무식해졌다. 자연계는 국사 공부를 하지 않아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무지하게 됐고, 인문계 학생들은 과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다. 나 역시 이런 7차 교육과정 이후 세대라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내 개인적인 관점이긴 하지만, 고등학교까지는 그래도 기초적인 지식에 대해 균형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분화와 전문화가 이뤄지는 것은 대학에서 추구를 해야 할 일이지, 그 결과로 국민은 더더욱 무식해진 게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 수능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서, 이과 학생들도 사회탐구를 시험 봐야 하고, 문과 학생들 역시도 과학탐구를 시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렇게 글 쓰면 지금 수능 준비하는 엄청난 학생들에게 몰매를 맞겠지만...)
굴드가 과연 지금의 우리나라 과학 교육을 보고도, 저런 칭찬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 같다. 아무튼 에세이를 보면서 이런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에 대한 생각도 해 봤었다. 하긴 중고등학교 시절에, 과학 시험 성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과학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게 된 건지... 그게 교육과정 탓만 있는 건 아니겠지, 나 자신에게도 문제는 있겠지
어쨌든 이 책은 나에게 있어, 반성의 마음을 들게 한 책이다. 편향된 독서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말로만 항상 다짐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과학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앞으로 편독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진화론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어서, 글을 읽어나가며, 스마트폰을 검색해가며 읽어서 뭐라 말은 못 하겠다. 어느 정도 과학 지식이 생긴다면, 다시 한 번 비판적 독서를 해 보고 싶은 책이다.
아무튼 다소 버거운 책이고 무려 800여 쪽에 가까운 과학 책이지만, 과학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스티븐 제이 굴드라는 인물의 박식함을 유감 없이 경험한 기분 좋은 독서였었다. 이런 친절한 과학의 안내자를 만나다니!! 책을 다 읽고, 굴드의 다른 자연학 에세이들도 검색해서 위시리스트에 올려놨다. (그의 자연학 에세이를 모두 구매할 예정이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역시도, 매일 밤 자기 전 다시 에세이들을 차근차근 재독해봐야겠다. 저자의 말로는 자기는 글을 쓰면 쓸수록 필력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하니 (이 책은 지금까지 써 온 글들 중 건방지게 보이겠지만, 가장 잘 쓴 글들만 추렸다고 한다.) 이 책 이후의 에세이들도 꼭 봐야겠다. 글에서 풍기는 마성 같은 매력. 정말 추천하는 책이고,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지적인 쾌감을 유감 없이 느꼈던 독서, 더불어 나의 좁은 세계관의 시야가 좀 더 넓어졌음을, 느꼈던 독서였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