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지의 부엌
니콜 모니스 지음, 최애리 옮김 / 푸른숲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작가와 표지, 그리고 작가의 말, 심지어는 책날개에 적힌 글마저도 꼼꼼히 보는 타입이다. 그런 사소함(?)이 표현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참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칸지의 부엌>의 작가인 니콜 모니스는 참 생소하였고 표지는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책보다 독특하고 예뻤다. 니콜 모니스의 이력은 생각보다 독특했다. 처음부터 작가로 데뷔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18년간 사업을 하면서 틈틈이 써둔 소설 <Lost in Translation>이 재닛 하이딩어 카프카 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하게 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시작한 책은 생각보다 더 설레어서 날씨만큼이나 기분을 살랑살랑하게 만들었다.

 

  이 글은 중국 황실 요리를 계승하려는 황실 숙수의 손자와 그를 취재하는 푸드 에디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미국인 여주인공과 중국계 미국인인 남자주인공이 등장한다. 또 오경재, 원매, 소동파 등 실존 인물과 중국 황실 요리에 대한 철저한 취재와 3대를 이어 온 요리 스승들과 제자 간의 끈끈한 정(情), 중국 전역에 생중계되는 요리 올림픽 등은 이 소설을 단순한 요리 허풍 소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요리에 대해 연구와 묘사를 하려고 노력했는지 보여주었으며 단조롭게 끝날 수 도 있는 스토리를 끝까지 부여잡고 풍성하게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추리소설이 아닌 이상 이렇게 풍요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는 그 부분을 성공해냈다.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매기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뜻밖의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중국에서 어떤 여성이 남편의 딸을 키우고 있다며 친자소송을 냈으니 그 부분을 확인하고 진실이라면 매기는 남편의 유산을 절반이상 떼어 내어 주게 생겼다. 그녀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날벼락 같은 전화를 받고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정리하던 중 잡지사에서 중국에 있는 한 천재 셰프를 취재할 것을 요청하고, 매기는 '친자 확인'과 '취재'를 위해 베이징으로 떠나게 된다.

 

  매기는 중국으로 가서 셰프를 만나게 되고 그 곳에서 지난날의 상처를 치료 받게 된다. 요리를 통해서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이 <칸지의 부엌>에서 핵심 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그 마음의 치유로 인해 두 주인공들이 잔잔하고 달달한 로맨스를 풍겨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요리로 인해 사람의 마음이 치유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으면 무엇보다도 먹는 일을 했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지갑을 들고나가 먹고 싶은 것을 닥치는데로 구매하고 생각 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사온 것을 주섬주섬 까먹는 일이다. 생각보다 요리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여 주인공인 매기가 맛보았던 음식들은 레토르트, 인스턴트와 같은 가공식품이 아닌 정성이 가득 담긴데다가 화려하고 섬세한 중국 황실의 요리이기까지 하다. 그 어떤 여자가 자신의 힘든 상황에 이런 요리를 받고서 위로가 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충분히 매기의 입장이 되어 눈으로 요리를 먹으며 마음의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동양에서는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찬사를 받은 책이다. 그도 그럴만한 생각이 든다. 동양을 소재로 담고 있지만 서양인의 시선에서 쓰인 책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들도 고려할 만한 부분으로 쓰여 있고 게다가 만국의 공통관심사인 ‘음식’이라는 키워드도 있으니 서양에서도 받아들이는데 자연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을 통해 은근히 묻어나는 동양의 매력은 서양에서 더욱 매력적이었을 것이고 서양인들의 시각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문화적 가치들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물론 동양인의 시선으로 본 <칸지의 부엌>은 더 없이 매력적이다. 오히려 동양권이지만 그 동안 잘 몰랐던 중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그들의 진짜 요리가 궁금해졌으니 말이다.

 

  나는 요리를 굉장히 못한다. 라면을 싫어하는 이유로 라면하나도 잘 못 끓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요리에 관련되어 이렇게 책이 나오면 무엇보다도 신기하다. 소설이라는 틀 안에 갇혀 가상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네 삶을 닮고 있는 글이니까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뭐랄까. 음식으로 이렇게 행복하게 웃고 울 수도 있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 내게 음식이라는 것은 배고픔을 채워주고 내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유일한 즐거움일 뿐인데 이 음식을 통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책 한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이 책을 다 읽고 난 첫 번째 소감이었다. 두 번째 소감은 니콜 모니스의 화려한 묘사풍 문체와 음식과 같이 달달하게 피어오르는 로맨스였다. 화려하고 묘사를 잔뜩 불어넣는 문체들이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중국요리를 소개하는 만큼 이 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칸지의 부엌>을 다 읽고 나니 배가 고파지고 봄에 맞게 달달해지는 분위기가 나를 감도는 것 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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