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놀란 그 새들은 어디 있을까. - P23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 흔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세상에서 만나자는 말따윈 의미없는 거였어. - P47
어스름이 내리자 새들이 울음을 그쳤어. 낮에 울던 풀벌레들보다 가냘픈 소리를 내는 밤의 풀벌레들이 날개를 떨기 시작했어. 완전히 어두워지자, 간밤에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에 닿아왔어. 어른어른 서로의 언저리를 어루만지다 우리는흩어졌어. 어쩌면 우린 낮 동안 뙤약볕 아래 꼼짝 않고 머무르며비슷한 생각에 골몰해 있었던 것 같았어. 밤이 되어서야 몸의 자력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져나올 힘을 얻은 것 같았어. 그들이 다시 오기 직전까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어루만졌고, 서로를 알고 싶어했고,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 - P52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 P69
그녀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순간을 견디지 못했다. 살점 위에 피와 육즙이 고이면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있는 생선을 구울 때는 눈을 감았다. 프라이팬이달궈지며 얼었던 눈동자에 물기가 맺히고, 벌어진 입에서 희끗한진물이 흘러나오는 순간, 그 죽은 물고기가 뭔가를 말하려 하는 것같은 순간을 외면했다. - P72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지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도는 것.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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