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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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고시는 옛말, 이제는 4세 고시’라는 뉴스 헤드라인을 본 적이 있다. 네 살 아이에게 고등학교 수준의 영어 에세이를 쓰게 한다는 기사였다. 실제로 여섯 살 아이의 하루 일과를 보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유치원·학원·학습지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는 일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진단받은 아동·청소년이 각각 76%, 93%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학업 스트레스, 부모와의 갈등, 그리고 무관심에서 찾는다.
이처럼 경쟁에 지친 오늘날의 아이들의 모습은 100여 년 전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속 주인공 한스를 떠올리게 한다. 총명했지만 주변의 압박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린 소년, 한스. 그의 비극적인 삶은 오늘날 우리가 과연 교육의 본질을 지키고,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획일화된 목표 의식과 어른들의 무관심

20세기 초 빌헬름 2세 치하의 독일의 공교육은 가장 선구적이라 불렸지만, 이는 지배계급의 요구를 반영한 획일적이고 엄격한 규율이었다. 소설은 재능이 뛰어나지만 부모가 부유하지 않은 한스에게는 단 하나의 길만 존재했다. 주 시험에 합격해 신학교에 가고 졸업하면 목사가 되거나 대학의 강단에 서는 것이다. 이것이 당시 독일의 현실이자 한스를 비롯한 많은 아이들에게 강제된 목표였다. 이러한 구조는 매스컴이나 주변의 시선을 볼 때 의대에 가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특목고나 사교육 시장의 목표 또한 결국 의대 진학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한스처럼 자신의 재능이나 관심사는 접어두고 꽉 짜여진 일정표에 따라 하루 종일 움직인다.
슈바르츠발트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한스는 총명해 온 마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좋아하던 낚시와 토끼 기르는 것도 포기하고 공부에 매진한 결과, 유명 신학교인 마울브론 신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한다. 입학할 무렵부터 두통에 시달렸다. 이는 사회가 부여한 목표와 기대 속에서 한 아이가 느낀 압박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우리도 아이가 힘들어하면 “대학가면 괜찮아질 거다”라는 말로 넘기는 모습으로 별거 아닌 것 취급을 한다. 주위 어른들의 무관심이 한스를 병들게 했듯, 한국의 청소년들도 한스와 같이 병들어가고 있다.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한스가 하일너와 어울리며 성적이 떨어지자, 교장은 한스를 불러 수레 이야기를 했다. 한스에게는 교장의 말도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어른들의 시선 속에 현재를 사는 아이는 없다. 오직 미래를 위해 현실을 포기해야 하는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래, 너에게 제안 하나 할까 한다. 이번 방학에 미리 공부를 해두는 게 어떻겠니? 물론 지나쳐서는 안 되겠지! 넌 충분한 휴식을 즐길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으니까. 내 생각으로 하루에 한두 시간쯤은 그다지 무리가 안 될 거야.」

한스는 신학교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하고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전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앞으로 신학교에서 배울 내용들을 미리 예습했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어른들(목사와 교장들)말 뒤로, 처음엔 히브리어, 그 다음은 호메로스, 그리고 수학.예습이 이어졌다. 결국 한 시간이 두 시간이 되고 두 시간이 네 시간이 되어 한스는 다시 공부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방학인데 놀기만 하면 되겠니? 그 동안 부족했던 과목을 좀 더 보던가. 아니면 책을 읽어야지.”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들이었다. 다른 집도 매한가지일 거라 애써 위안을 삼지만 어느새 나도 교장과 목사가 되어 우리 집에 있는 한스를 나무라고 있었다. 한스가 느꼈던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우리 아이도 느꼈을까? 책을 읽으며 내 안의 교장과 목사를 마주하고 그동안의 행동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의 내 행동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주체성 상실과 '어른의 시선'에 대한 반성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이런 한스에게 자유분방한 하일너와 단짝 친구가 된다. 하일너는 수업을 빼먹고 몰래 시를 쓰거나 음악을 즐기며, 신학교 분위기에 반발했다.

「넌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잖니. 그저 선생님과 부모님이 두려운 거겠지. 아니, 1등을 하든 2등을 하든, 그게 도대체 너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니?」

하일너는 이러한 말로 한스를 흔들어 놓는다. 그 후 한스에게 말도 하지 않고 하일너가 신학교를 탈출한다. 남겨진 한스는 친구를 잃은 외로움과 신학교 교수들의 압박감 속에서 점점 고립되고, 성적도 떨어지며 우울증이 깊어진다.
책을 읽으며 한스가 답답했다. 어째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지 못했을까?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사람과 더불어 소박한 꿈을 꾸는 한스는 자신의 욕망을 모를까? 하일너가 부담스러울 때 말하지 못할까? 하일너가 자신의 노력과 꿈(학업 성적)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할 때 아무 말도 못했을까? 하일너가 떠난 후 교장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더 쉬겠다는 말을 못할까?
그 과정 속에서 한스 자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바람에 흔들릴 뿐, 자기 안의 목소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애당초 한스는 기계공이나 서기에 전혀 과심이 없었다. 그는 손으로 하는 힘든 육체노동을 약간 두려워하던 터였다. 이때, 지금은 기계공이 되어 있는 학교 친구 아우구스트가 불현 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스는 그에게 이 일에 대해 물어보리라고 마음먹었다.」

기계공 친구에게 기계공이란 직업에 대해 물어보러 간 날 아우구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기계공이 되기로 결정한다. 이 장면에서 저절로 한숨이 내어나왔다. 왜 직업조차 깊게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말에 따라 선택했을까? 어째서 주변에 그렇게 쉽게 끌려 다니는 걸까? 왜 단 한번도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마주하지 않는 걸까? 그의 선택에는 자기 객관화나 내면 성찰이 전혀 없었다. 언제나 주변의 말과 기대에만 끌려 다니는 모습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나도 정형화 된 어른의 시선으로 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14~15살 중학생 나이의 한스에게 너무나 어른스러움을 강요하고 예민하고 소심한 한스의 성향을 무시한 채, 무디게 반응하길 원했던 것이다. 결국 나 또한 목사나 교사, 한스 아버지처럼 내가 원하는 바로 움직이길 원했던 것이다. 깨닫고 나자 한스에게 미안해졌다. 어른들의 이상향 속에 자신이 원하는게 잘못된 것이라 느꼈을 것 같아 미안해졌다. 한스의 모든 걸 아는 나조차도 자신의 꿈과 속도를 인정해주지 못하는데, 어른들 사이에서 자신이 바를 말하지 못한다고 나무라기만 했으니 그간 외로움은 누구도 위로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한스도 자신을 채찍질했을지언정,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수레를 이끄는 삶

총명했지만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 한스는 신학교를 휴학하고 자신을 정비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결국 비극적으로 끝을 맞이한다. 원래 독일어 용어 “수레바퀴 밑으로 가다(unter die Räder iommen)"는 ”파멸하다“를 의미한다. 한스는 자신의 수레를 이기지 못하고 제목처럼 수레바퀴 아래로 깔려버린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수레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수레에 자신의 바람을 담는 사람도, 한스처럼 타인의 꿈과 기대가 실리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게 평탄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커다란 오르막과 가파른 내리막을 오가기 마련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삶에서 수레가 무거워 뒤집어지는 사람도 있는 반면, 너무 가벼워 빠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타인의 바람대로 산다면 수레의 무게를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자신의 바람대로 살지는 못한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은 타인의 바람이나 시선도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한스는 자신의 수레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파악하고, 타인의 기대와 자신의 바람을 구분한 뒤, 담을 것과 포기할 것을 정해야 했다. 수레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수레의 특성상, 모든 걸 담는다면 노력은 하지만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내면을 돌아보며 자신의 수레에 어디까지 담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땅에는 많은 한스들이 있다. 자신의 수레에 힘들어 하고, 채찍질 하며 지내는 많은 한스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 지 모르며 끌려 다닌다. 그들이 먼저 자신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바라는 건 무엇인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나’라는 존재를 먼저 파악했으면 좋겠다. 한스도 신학교에 들어가 자신과 먼저 친해지고 들여다보았다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수레는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운반체이지만, 그 안에 무엇을 싣고 살아갈지는 오직 ‘나’만이 결정할 수 있다. 나의 수레는 나만이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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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은 인간의 아이들이다. 나한테 매달려서 자기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제 아버지들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고 있지. 사내아이는 ‘무지‘ 이고 계집아이는 ‘궁핍‘이니라. 이 두 가지를 경계하도록 하라. 이와 유사한 모든 것들을 경계하도록 하라. 하지만 사내아이의 이마 위에 새겨진 글씨가 지워지지 않는 한 무엇보다도 사내아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 아이의 이마 위에 ‘파멸‘이라고 쓰인 것이 내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무지를 물리치도록 해라!"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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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주인공은 누구인지,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은 어디인지, 주인공에게 닥친 중요한 사건이 무엇인지, 그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과 결과는 어떠했는지 등 네 가지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이야기책을쉽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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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를 잘라낸 나무는 뿌리 근처에서 다시 새로운 싹이 움터 나온다. 이처럼 왕성한 시기에 병들어 상처입은 영혼 또한 꿈으로 가득 찬 봄날 같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마치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어 끊어진 생명의 끈을 다시금 이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뿌리에서 움튼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생명에 불과할 뿐, 결코 다시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 P187

엠마가 말했다. 「너무 무리하진 맙시다」 그러고는 한스에게 방금 마시고 남은, 과즙이 반쯤 담긴 잔을 건네주었다.
이 한 모금이 그에게는 앞서 마셨던 과즙보다 더 진하면서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한스는 잔에 든 과즙을 다 마시고 나서도 더 마시고 싶다는 듯이 빈 잔을 들여다보았다. 왜 심장의 고동이 심해지고, 호흡이 가빠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 P206

하지만 그의 쾌락은 참신한 사랑의 힘, 그리고 생동감이 넘치는 생명에 대한 최초의 예감을 의미했다. 그의 고통은 아침의 평화가 깨어지고, 자신의 영혼이 두 번 다시 찾지못할 어린 시절의 세계를 이미 떠나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난파를 간신히 벗어난 한스의 가벼운 조각배는 이제 새로운 폭풍과 입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는 심연, 그리고 극도로 위험한 암초에 점점 가까이 빠져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올바른 지도를 받아온 젊은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안내자의 도움 없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 여기서 벗어날 수있는 구원의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 P212

모든 것이 이상하게도 다르게 변해 있었다.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었다.  - P213

이제 한스가 작업장으로 들어가야 할 금요일이 다가왔다. 아버지는 한스에게 아마포(亞麻布)로 만든 푸른 작업복과 반모직(半)의 푸른 모자를 사주었다. 한스는 한 번 입어보았지만, 대장장이의 작업복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무척이나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학교며 교장 선생이나 수학 선생의 사택, 플라이크 아저씨의 일터, 혹은 목사관을 지날 때에 무척이나 비참한 느낌이 들 것만 같았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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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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