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경이 되었고 계절의 첫 안개가 내리고 있었다. 짙은 초콜릿 빛깔 장막이 하늘을 뒤덮으며 낮게 깔려 있었다. 바람이 끊임없이 휘몰아치며 포위된 운무를 공격하여 패주시키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차가 거리에서 거리로 낮은 포복으로 지날 때마다 어터슨은 어슴푸레한 빛이 다양한 모습과 색조로 시시각각 신비롭게 변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쪽에선 저녁이 깊어질 무렵과 같은 어두움이었다가, 저쪽에선 마치 큰 화재의 기이한 불빛처럼 선명하게 타오르는 갈색의 빛이 빛나기도 했다. 그러다 또 잠시 안개가 걷히고 가느다란한 줄기 아침 햇살이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를 뚫고 비치기도 했다. 어터슨은 이렇게 변화하는 희미한 빛 속에서 본 소호의 음침한 거리가 진창길과 그 위를 걷는 더럽고 단정치 못한 행인들, 그리고 한 번도 꺼진 일이 없고, 또한 이 음울한 어둠의 재침략에 맞서 새롭게 불을 밝힌 적도 없는 가로등으로 인해 무슨 악몽 속에 나오는 도시 같다고 생각했다. - P56
그 진실의 일부를 발견했기에 나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파멸로 치닫게 된 것이다. 그 진실이란, 인간은 진정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이다. 내가 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 지식이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선상에서 혹자는 나를 뒤따를 것이고, 혹자는 나를 앞질러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내가 감히 추측건대 인간은 결국 여러 개의 모순되면서도 각기독립적인 인자들이 모인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 P106
사악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 육체를 부여받은 나의 악한 자아는 내가 막 사라지게 한 선한 자아에 비해 확고하지 못했고 발달도 덜 된 상태였다. 다시 말하거니와 내 삶의 9할은 노력과 미덕, 절제의 생활이었기에 악은 선보다 훨씬 덜 행해지고 덜 규명되었던 것이다. 내 생각에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에드워드 하이드가 헨리 지킬에 비해 훨씬 작고 마른 젊은이로 나타난 것 같다. 한쪽 용모에서는 선함이 빛났다면, 다른 한쪽 얼굴에는 온통 악이라고 명백하고 노골적으로 쓰여 있었다. 게다가 악은 (나는 지금도 악이 인간의 파괴적인 면이라고 믿고 있다.) 그 육신에 기형과 타락의 모습을 새겨놓았다. - P110
약 자체에는 그걸 구별해 낼 수 있는 힘이 없다. 악마도 신성도 아니다. 약은 그저 내 성품이란 감옥의 문을 흔들었을 뿐인데 빌립보 감옥의 죄수들처럼 내 안에서 악인이 달려 나온 것이다. - P111
또 다른 내 모습으로의 변신이 최근 부쩍 많이 실행에 옮겨졌고 조장되었다. 그래서 에드워드 하이드의 육신은 근래 키가 자란 것처럼 보였고, (내가 그의 육체 속에 있을 때) 피가 더 왕성하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일이 더 오래 지속된다면 내 본성의 균형이 영원히 깨어져 자연 발생적인 변신 능력이 강화될 것이며 에드워드 하이드의 성품이 되돌릴 수 없이 내 것이 되고마는 위험이 있음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중략) 결국 모든 것의 결론은 이러했다. 즉, 나는 서서히 내 원래의 훌륭한 모습은 잃어가고, 두 번째 나타난 사악한 모습과 결합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17
나는 ‘그‘라고 부른다. 차마 ‘나‘ 라고는 말할 수없다. 그 악마의 자식에게 인간적인 면모라고는 없었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두려움과 증오뿐이었다. - P125
하이드는 교수대에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순간 자신을 놓아줄 용기를 찾을 것인가?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이제 내 진정한 죽음의 시간이다. 이 이후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아닌 하이드의 일이다. 이제 나는 펜을 내려놓고 내 고백을 봉할 것이다. 그리고 불행했던 헨리 지킬의 삶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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